오늘의 조각 어슬렁거려 어제 진실 포착

사진마을 2018.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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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사진책/강홍구의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2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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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언제나 과거를 소멸하는 방식으로 변모해왔다. “기억의 소멸이 미덕인 도시가 바로 서울”이라고 지적한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한국의 도시화는 마치 폐허 위에 폐허를 쌓듯이, 팽창과 압축을 반복하였다. 80, 90년대 대표적인 도시 키워드 ‘재개발’은 거주자 공간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무차별한 철거를 동반했으며, 거대한 거주단지는, 생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라질 운명을 뜻했다. 한곳에 머물러 산다는 ‘주거’라는 표현 대신에 ‘기거’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른다. 근거지를 버리고 이주하는 노마드적인 삶이야말로 현대 도시인의 태도가 된 지 오래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삭제된 도시에는 기억이 없다. 이방인에게는 화려하고 도회적인 풍경일지 모르겠으나, 정작 실체가 소멸한 도시는 우리에게 기억의, 기록도 되지 않은 ‘없어진 고향’일 뿐이다. 이전에 대한 흔적이 없다는 것은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완전히 사라졌기에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과거가 되어버린다. 이런 부제는 우리 마음 속에는 불온한 상태만을 남길 뿐이다.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도시 주변부를 배회하며 현재의 파편을 모아 과거의 진실을 맞추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고도성장에서 밀려나 방치된 소위 ‘변두리’의 소소한 사건이나 일상을 포착한다. 대체로 이러한 일련의 관찰과 기록 활동은 어슬렁거리며 주변 산책하기를 즐기는 유랑자들인데, 근거 없는 말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꽤 ‘낭만적’이고 ‘아무 곳도 아닌 곳’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연금술사들 같다. 조금 유식하게 말하자면 발터 벤야민의 현대판 도시 산책자(Fl?neur 플라뇌르)라고 해야 할까? kje1.jpg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 20년 후>는 도시의 사소한 영역을 관찰하고 기록한 사진 에세이집이다. 2001년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그 후로부터 십수 년 간에 저자 강홍구의 기억과 사진 기록들을 덧붙인 책이다. 에세이는 크게 4개로 구성되었으며 “스티커 사진과 인스타그램, 붕어빵과 컵 밥, 전신주의 스티커 광고와 전광판 모니터, 이발소 그림과 아트페어 그림 등…” 쓸모에 따라 유사한 소재를 중심으로 글쓰기를 재구성한 게 특징이다. 고작 몇 년의 세월이지만 글 속에 일상의 소재들은 동일한 대상이든 그렇지 않든 꽤 과거와 현재 간의 시간의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덧붙여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찍은 저자의 사진은 노련한 예술가의 솜씨라기보다 오히려 거칠고 서툴다. 나는 이런 허술함을 저자의 의도로 보는데 그의 밋밋한 사진들이 동시에 저자의 어투를 퍽 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단조롭고 느슨하지만 예리하고 날카롭다.
 
 얼마 전 예술과 경영을 빗대어 설명한 짧은 글귀에 매우 공감한 적이 있다. “미술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화가 파울 클레의 말을 빗대어 견(見)을 하지 말고 관(觀)을 하라는 소리였다.kje.jpg 사실 이 책이 그러하다. 무엇보다도 저자인 관찰자의 시선이 도시의 나머지 부분, 다시 말해서 거시적이고 기념비적인 중심의 기록에서 벗어나서 ‘가장 잊히기 쉬운 주변부의 사소한 것들’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만 찍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사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강홍구의 사진과 글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한국판 버전과 같다. 이 책의 부제인 “우리 시대 일상 속 시각 문화 읽기”가 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편에는 사실 온전히 사진에 관해서만 다루지도 않는다. 사진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록되지 않은 사사로움’을 ‘읽고, 쓰고, 보이게 하는’ 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오래도록 쓸모없는 것들을 관찰해서인지 이 책은 저자만의 독특한 사물의 본질과 차이를 드러난다. 이처럼 도시의 사소한 역사를 드러내는 한 명의 눈이 아니라 천 개의 눈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천 개의 마을에 대한 천 개의 기억을 가질 수 있었을 거다. 그래서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보여주는 사소한 도시의 역사는 이렇듯 사진과 글로 틈틈이 기록한 덕분에 결코 시시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김정은 (이안북스 발행인 및 더레퍼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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