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나를 이끌었다

사진마을 2018.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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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m03.jpg » 155쪽, "나는 바람을 등지고 잠시 당신께 경배한다"



<한겨레> 사회2부 수도권팀 박경만(56·사진) 선임기자가 여행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사진 에세이 <바람의 애드리브>를 펴냈다. 30년 경력의 기자인 그는 10년 전부터 사진동호회 활동을 해왔고 이번 책에는 여행 중 촬영한 사진 160여 점과 여행 단상이 담겼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가 중의 한 명인 스티브 매커리의 홈페이지에는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란 테마가 있었다. (최근에 확인해보니 변경이 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 테마를 클릭하니 이런저런 사진이 이어져서 나왔는데 “이게 왜 파수꾼 혹은 보초라는거지?”라는 의문이 줄줄 이어졌다. 어떤 사진이 있었을길래? 낚시하는 소년, 낮잠 자는 사람, 책 읽는 사람, 길을 가는 사람, 앙코르와트에서 누군가는 마당을 쓸고 있고 그 옆에선 개와 쭉쭉이를 하는 장면 등의 사진이기 때문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가만 생각해보니 조금 이해가 될 법도 했다. 그때 기억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지금 홈페이지에선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홈페이지에선 우아함(Grace)이라는 제목을 단 테마가 보이니 이걸 열어보면 내가 왜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란 제목에서 당황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아함’ 폴더 안에는 책을 읽는 여성, 암벽 등반하는 남성, 공을 차는 소녀들, 대화 중인 수녀들…. 뭐 이런 사진들이 이어진다.


pgm01.jpg » 26쪽 미국 조지아  

pgm001.jpg » 89쪽, 한국 해남

pgm04.jpg » 193쪽 체코

pgm05.JPG » 101쪽 네팔 무스탕


 박경만의 사진에세이집 <바람의 애드리브>를 보면서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 것은 이 책에 ‘우아함’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좋겠고 ‘지구 사랑’이란 제목을 붙여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스티브 매커리 생각에 낚시하고 일하고 낮잠 자고 책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몫을 한다는 것이며 공을 차거나 산을 오르거나 대화를 하는 일, 즉 일상을 영위하는 것에서 우아함이 묻어나고 발산한다는 것이다. 박경만의 사진들에는 네팔에서 찍은 몇 장을 예외로 치고 나머지 대부분엔 하늘이 들어있다. ‘바람의 애드리브’라고 했으니 바람이 불려면 하늘이 보여야 했을 것이다. 101쪽의 네팔 무스탕이나 155쪽의 캐나다, 그리고 89쪽의 한국 해남의 풍경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이 외국이든 한국이든 큰 풍경이든 작은 풍경이든 모두 지구별의 우아함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진과 이에 따라붙는 글이 대단히 간략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좋았다. 26쪽의 미국 조지아 사진 옆에는 이런 글이 있다.
 “물을 만나면 나는 두껍게 굳은 얼굴을 잠시 벗고 옹이 지고 외로운 마음을 씻었다.”
 책 뒤표지엔 소설가, 자전거레이서 김훈의 짧은 서평이 있다. 김훈은 193쪽의 사진을 인용하며 이렇게 묘사했다. “이 사진은 사진가가 찍었다기보다는 대상이 스스로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 자리 잡은 것 같다. 이 자리 잡기가 바로 삶이다”
  에세이집에 실린 사진 35점을 선보이는 전시회도 경기 고양시 한양문고 주엽점 ‘갤러리카페 한’에서 4일까지 열린다. 주엽역 8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열어보니 일문일답식의 인터뷰가 들어있었다. 읽어보니 책과 책의 사진, 그리고 박경만 본인의 생각을 만날 수 있는 알찬 내용이어서 전문 소개한다.
 

박경만 기자 일문일답


 -책의 내용을 소개해달라.
 =위기의 중년 남자가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자아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종의 구도여행서다. 남들보다 많은 곳을 여행했거나 남들이 못 가본 신비한 곳을 경험한 이야기를 담거나 내세운 것은 아니다. 평범한 여정 속에서 자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삶에 지쳐 피폐해져가는 나(중년 남자)의 삶이 변화하고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진과 글을 통해 담아내려 했다. 그동안 많은 여행가나 작가들이 펴낸 여행에세이와 다른 점은 현지 에피소드나 정보 등은 생략하고 여백으로 남겨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다. 독자가 자신의 감정을 실어 시처럼 읽어줬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게 된 배경
 =10여 년 전 한겨레신문 편집부에 근무하면서 사진부 탁기형 선배가 이끄는 사진동호회에 들어 2년 정도 매주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사진을 배웠다. 사진기자들이 쓰다 사용 연한이 지나 버린 무거운 카메라(캐논 1D)와 렌즈를 싸게 분양받아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바뀐 공덕동 달동네나 초등학교 운동장, 효창공원, 명동 등을 거의 매주 쏘다녔다. 셔터 떨어지는 느낌은 좋았지만 너무 무거워 얼마 안 가서 큰 카메라는 처분했다. 이후 카메라 크기가 3~4년 주기로 계속 작아져 지금은 산행할 때는 똑딱이 카메라와 휴대폰을 자주 사용한다.
 pgm0001.jpg
 -여행을 통해 느낀 점
 =2005년 언론비평서인 <조작의 폭력>(개마고원)을 펴낸 뒤 백두대간을 비롯해 전국의 산을 쏘다니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가들은 보통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하지만, 나의 경우 주로 홀로 여행을 다녔고 카메라는 여행에 동행한 파트너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카메라의 앵글로 자연과 사람을 바라봤고, 사물을 대하는 나만의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미국 애팔래치아와 캐나다 록키, 네팔 히말라야, 제주 올레길 등을 걸으며 삶이란 게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진 전시회 소감
 =전 국민이 사진가인 시대에 작품이랍시고 사진을 내놓기가 망설여졌다.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톡톡 터치해 찍은 사진이 DSLR카메라로 찍은 내 사진보다 실제로 좋은 경우도 많다. 이 같은 환경 변화가 직업적인 사진 예술가에게는 잔혹한 것이겠지만, 누구나 문화예술을 두루 향유할 수 있고 소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찍어봐야 안목이 생기고 안목 있는 아마추어가 많아야 예술가의 작품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볼품없는 사진이지만 전시를 통해 지난 10여 년간 여행하면서 물처럼 바람처럼 살려고 애썼던 발자취와 느낌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
     pgm0002.JPG
 -추구하는 작품세계가 있다면
 =내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예쁘고 멋진 사진이 아니라 뭔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야기를 건네는 사진이다.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느낌을 받는 의미가 풍성하고 살아있는 느낌의 사진을 좋아한다. 바람소리를 찍을 수는 없겠으나 바람의 몸짓, 바람이 전하려는 말은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전시회의 제목인 <바람의 애드리브>도 그런 뜻을 담은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남북관계가 좋아져 북녘 백두대간과 개마고원 트레킹이 허용되면 가장 먼저 도전해보고 싶다. 또 네팔 히말라야도 몇 차례 더 가고 싶고, 기회가 되면 중국 시안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보고 싶다.
 직장 다닌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시간내기다. 다행히 한겨레신문사는 안식휴가 제도와 무급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 몇 차례 장기여행이 가능했다. 짧은 국내외 여행은 지금처럼 주말과 연월차 휴가를 이용해 계속 할 계획이다. 떠남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기회가 되는대로 떠나기 위해 지금도 지도 위를 서성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파라북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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