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말을 걸다

사진마을 2018. 05. 08
조회수 3191 추천수 0

디뮤지엄, 대형 기획전시 개막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4G영화처럼

마틴 파, 올리비아 비, 예브게니아 아부게바 등

26명의 아티스트 작품, 모두 170여 점 전시


dm01.jpg » 전시 포스터, ©마리아 스바르보바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가 개막됐다. 10월 2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29길에 있는 디뮤지엄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7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전시장을 찾아갔더니 한남동이었다. 주한 몽골대사관, 이집트대사관, 아랍에미리트대사관, 말레이시아대사관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맛집이 많다는 것 또한 잘 알 것이다. 

 날씨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26명의 예술가들이 모두 1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예술가라고 칭한 것은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작업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사진이 가장 많고 그 사이 사이에 영상, 사운드, 설치 작품이 포진했다. 둘러보니 제대로 관람하려면 두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이런 것을 두고 짜임새라고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게 구성이 되었다.
  모두 세 개의 챕터로 엮어졌으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햇살, 눈비, 어둠, 파랑, 안개, 빗소리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작은 테마가 들어있다.
   본격적인 소개에 앞서 알려둘 것이 있다. 이 전시장에선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된다. 다만 플래시와 삼각대 사용은 금지. 물론 스마트폰의 셔터소리도 다른 사람의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예의를 갖추는 것은 기본.


dm09.JPG » © 마크 보스윅

dm10.jpg » © 올리비아 비

dm11.jpg » © 마틴 파

dm12.jpg » ©요시노리 미즈타니
 
   첫 번째 챕터에선 “날씨가 말을 걸다.”
 며칠 전 서울에 우박이 떨어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선 난리들이 났다. 자주 겪는 현상이 아니다 보니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는 등 날씨는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린 시절 1년에 한 번 가는 소풍날 아침 비가 내려 동심이 멍들었던 경험이 누군가에겐 있을 것이다. 날씨는 수시로 말을 건다. 첫 작품을 지나지 않으면 전시 구경을 시작할 수 없다. 크리스 프레이저의 <회전문>(Revolving Doors)은 말 그대로 손을 대어 밀면 빙그르르 돌아가며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회전문이다. 자동이 아니기 때문에 손을 대야만 한다. 빛이 대단히 예뻐서 첫 순간부터 흡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두 개의 회전문(작품)을 지나면 마크 보스윅의 사진이 처음 보인다. 나른한 햇살이 인상적이다. 전시장에 주렁주렁 뭔가 적혀있는 종이들이 걸려있으니 이걸 몽땅 읽어보기보다는 그냥 눈에 먼저 들어오는 한두 개만 보는 게 좋겠다. 다음으론 올리비아 비의 사진들이 보인다. 그는 올해 24살인데 11살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플리커에 사진을 올렸는데 신발회사 컨버스에서 그에게 광고사진 작업을 의뢰했다. 올리비아 비는 처음엔 스팸인줄 알고 무시했는데 재차 연락이 와서 장난이 아닌 것을 깨닫고 실제 광고사진 작업을 했으며 이게 14살 때였다. 그 후로 아디다스나 나이키 등의 상업광고를 찍었고 한편으로 본인의 작품세계도 병행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을 찍었으니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 사랑, 파티 등을 담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자유분방함이 넘쳐나는데 한국 청소년들의 답답한 삶과 비교되기도 했다. 어떤 인터뷰에서 올리비아 비는 라이언 맥긴리, 애니 레보비츠, 낸 골딘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구나!
  다음으론 마틴 파의 사진들이 쭉 시선을 끌게 된다. 날씨를 주제로 전시를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사진가 중의 한 명이 마틴 파다. 그는 1982년에 사진집 <나쁜 날씨>를 펴냈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다고 할 정도 변덕스런 날씨에 강박을 갖고 있는 영국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장엔 나쁜 날씨 사진이 아니라 해수욕장의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햇살’ 테마에 어울리는 마틴 파의 해학이 즐겁다.
 
  공간을 옮겨 ‘눈, 비’ 섹션을 만난다. 요시노리 미즈타니의 <유쓰리카>시리즈가 보인다. 유쓰리카는 모기처럼 보이는 작은 곤충인데 물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이 날벌레가 도심의 이곳저곳에서 날아다니는데 플래시에 반사가 되었는지 눈처럼, 요정처럼 허공을 맴도는 사진들이 매력적이며 환상적이다. 예브게니아 아부게바는 러시아의 북극권 태생이고 이번에도 그가 다시 찾은 고향마을의 소녀 타냐를 찍은 동화 같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처음 보면 의상 입혀서 세팅한 다음 찍은 연출사진 같은 느낌이 온다. 다른 사람도 같은 기분이 들었던 모양이다. 한 인터뷰에서 얼마나 연출이 된 사진이냐는 질문을 받고 아부게바는 “그렇게 굳이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사진 속의 타냐는 13살이 될 무렵인데 ‘내일이면 (나이가 더 들어서) 이 옷을 입을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이거 입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자신이 옷을 고르고 엄마에게 머리를 아이처럼 만져달라고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작별하는 날을 기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소녀를 찍었고 그 사진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그 사진을 찾아보면 동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는 소녀가 보일 것이다. 아부게바는 전통적인 포토스토리의 작법을 따른 작품도 여럿 선보이는 사진가다. 전시장엔 북극 마을 시리즈 외에 <웨더맨>포토스토리도 걸려있다.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러시아 북부의 외딴 기상관측소에서 13년 이상을 홀로 근무한 기상학자를 담담하게 기록한 작업이다. 마치 홀로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떠오르는 웨더맨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관심 있는 관객은 꼭 보기 바란다.
 

dm13.jpg » © 제임스 니잠

dm14.jpg » © 마리아 스바르보바

dm15.jpg » © 김강희

dm16.jpg » © 알렉스 웹

dm001.jpg » © 예브게니아 아부게바


  두 번째 챕터에서는 “날씨와 대화하다.”
 시각, 청각, 촉각을 다 동원하여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비슷한 표현을 찾는다면 4D영화관에 온 것 같다고나 할까? 계단을 따라 오르면서 노동식의 설치 작업 <광망>이 둥실 떠있다. 다 올라가면 이은선의 설치 작품 <콜렉티브 블루>를 만나게 된다. 그냥 색깔 있는 유리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1년 넘게 찍은 하늘 사진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하늘의 색이 이토록 다양하구나. 이 공간도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기념사진의 명소였다.
  무스타파 압둘라지즈의 프로젝트 <워터>중 몇 작품이 전시장에 걸려있다. 인류와 환경,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과 물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압둘라지즈가 지난 2011년부터 시작한 <워터>는 2027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대하시리즈가 될 것이다. 
  안개를 체험하는 방도 있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걸어가게 만든 공간도 이색적이다. 이것은 사운드 디렉터 홍초선과 라온 레코드가 채집한 빗소리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 중 하나를 장식한 사진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시리즈다. 한참을 쳐다봐도, 잠깐 보고 스쳐 지나가도 같은 감흥이 나는 묘한 체험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챕터에선 “날씨를 기억하다.”
 야리 실로마키의 <나의 날씨 일기>(My Weather Diary)가 그저 흥미롭다. 매일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작가의 짧은 손글씨가 더해져 있다. 몇 개 읽어봤다. 그냥 일기도 있고 국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과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혹은 약간의 논평을 가해 적어뒀다. 하기야 일기에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니 뭘 적어도 상관은 없다. 회화를 전공한 김강희의 사진이 환상적이다. 대체로 회화를 전공한 작가들은 ‘만드는 사진’에 대해 그저 자유롭다. 여러 장을 겹쳐 만들고 콜라주를 했으니 현실이 초현실처럼 변한다. 알렉스 웹과 레베카 노리스 웹의 사진이 몇 장 있다. 막 친근해 보인다. 저 사진들이 들어있는 알렉스 웹의 사진집이 있기 때문이다.
 
 몇 작가들의 이름을 놓쳤다. 세 곳에 이행갑, 최윤정씨가 이끌고 있는 갑웍스(GABWORKS)가 설치해둔 작업이 있다. 동영상도 있고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를 작업도 있는데 지켜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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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으로 보면 무슨 테마파크나 마술의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와 파인아트가 사이좋게 섞여 있다. 섞이다 보니 어느쪽이 다큐인지 파인아트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아서 편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어느 날은 비도 오고 우박도 떨어진다. 이번 전시는 날씨를 주제로 했으니 이런 날, 저런 날이 다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눈살을 찌푸릴 사진이 없었다. 오히려 즐겁고 재미있는 날씨 사진만 모았다.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 -존 러스킨
 전시장 곳곳에 문필가나 시인들의 글귀를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붙여두었는데 그 중 하나다. 이번 전시의 주 개념을 반영하는 듯하다.  존 러스킨도 영국인이다.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금,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추석 연휴 휴관. 키즈워크룹 ‘마음날씨연구소’, 틴랩 ‘My Weather Diary‘, 디뮤지엄 필드트립처럼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미술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예약할 수 있다.  www.daelimmuseum.org/dmuseum
 
 *디뮤지엄 관람이 끝나면 이곳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구슬모아당구장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이곳에도 또 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입장료 무료. 5월 13일까지는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의 전시 <티보의 작업실>이 열린다.



글· 전시장 내부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전시작품사진/디뮤지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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