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처럼 불안한 우연의 처연한 신비

사진마을 2018.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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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사진책/윤진영 <DECOMPOSER>

 
csr1.jpg 이집트의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에 함께 묻힌 <사자의 서>에는 ‘진실의 깃털’이라는 흥미로운 심판 이야기가 나온다. 자칼의 머리를 한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망자를 사후세계로 인도하면 타조의 깃털을 꽂은 진실과 심판의 신 마트가 깃털로 망자의 심장의 무게를 단다. 망자가 살아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미아트의 방’에서 심판한다. 만약에 망자의 심장이 깃털보다 무겁다면 그는 다음 사후 세계 여행길에 오를 수 없는 동시에, 바로 악어 머리에 하마의 하체를 가진 괴물 암미트에게 잡아먹힌다.
 이 법정에서 심판을 통과한 후에는 천막 아래 앉아 있는 농경의 신이기도 했던 오시리스를 만나게 된다. 그 후 망자는 사후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심장에 그 사람의 영혼과 가치가 담겨 있다고 믿어서 미라를 만들 때도 심장은 따로 항아리에 보관해두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깃털보다 가벼울 수 있다는 말인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 살아있는 이들의 거주지로,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기에 죽은 자들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해가 뜨고 지는 자연현상에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을 것이다.
 지난겨울 이집트에 다녀왔다. 수도인 카이로에서는 기자 피라미드지구를 비롯해 근교에 있는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들의 계곡, 고대수도인 룩소르(테베)의 카르 낙 신전까지…. 이집트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은 ‘죽음’에 대한 그들의 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여정이었다.
  ‘이미지의 삶과 죽음’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레지스 드브레는 “예술이 장례에서 태어나며, 죽음에 떠밀려 죽자마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무덤을 존중하는 태도는 여기저기에서 조형적 상상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작가 윤진영의 사진집 ‘DECOMPOSER’를 보고 있으면 마치 새로운 생명의 색이자 치유와 보호의 힘을 상징하는 녹색 얼굴을 한 이집트 신 ‘오시리스’를 떠올리게 된다. 윤진영은 그동안 ‘변형(metamorphosis)’(2006), 식재료(묵, 젓갈, 고추장, 검은 쌀)에 그로테스크의 속성을 드러낸 시리즈인‘먹을 수 있는 것들(The Edibles)’(2008), 닭발, 돼지껍질이라는 생명체의 파편을 찍은 ‘사후연상(Reminiscence after death)(2010)’, ‘남은 것(The Remains)’(2012), ‘우월의 역행(Reversal of Dominance)’(2015) 등을 통해 기묘한 생명력을 드러냈다.
 ‘DECOMPOSER’는 작가가 곰팡이를 직접 배양한 후(작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 결과물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낸 것으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아름답고도 처연한 죽음의 풍경’을 펼쳐보인다.  
 직접 배양한 곰팡이를 주재료로 삼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분해자’ 시리즈와 ‘곰팡이 아포토시스(Fungal Apoptosis’를 보면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마주치게 된다. 곰팡이는 생태계 안에서 분해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부패와 발효는 동일한 현상이지만 해로움과 유익함이라는 가치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잘린 동물의 머리에 피어오른 푸른 혹은 흰색, 노란빛, 분홍빛 등의 곰팡이는 마치 물감처럼 기능을 한다. 닭, 양, 개, 늑대, 사람의 두상 등을 연상시키는 동물의 머리는 실제 그 동물인지는 알 수 없다. 동물의 형상이긴 하지만 눈은 사람의 눈을 이식시킨 모습이라 더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이 동물의 잘린 머리 이미지인 ‘침입종(Invasive Species)’(2016)을 보고 있으면 우월하고도 초월적인 아주 기괴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곰팡이가 자라는 과정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지며 예측 불가능한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는 필연과 우연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집중하는 부분은 우연이다. 우연은 죽음처럼 불안한 것이고 인간의 인식 영역 밖에 있어서 신비롭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csr.JPG
 ‘경계(The Boundary)’(2016)는 두 종류의 곰팡이를 접종하여 배양했을 때 경계 부위에 나타나는 생물학적 힘에 관한 작업이다. 평면적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시리즈에서는 작가가 말한 ‘우연’의 힘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윤진영의 사진집 ‘DECOMPOSER’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대 이집트의 부조 속에 담긴 다양한 인간과 신화적 동물이 펼쳐내는 사후세계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원초적이고 불안정한 이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글 천수림(시각문화비평, 아트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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