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서 손금을 읽다

사진마을 2018.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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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동진씨의 개인전 <A Landscape-SEOUL>이 서울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4월 29일까지.
이 작업에 대해 사진평론가이자 독립큐레이터인 최연하씨가 친절하고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코멘트 없이 최연하씨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서울의 눈(眼) - 도시가 우리를 바라본다

 글 : 최연하(사진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사람처럼 도시도 무의식이 있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밝은 현실과 어두운 심리 사이에서 분열을 겪듯이 도시도 깔끔하게 마감된 것처럼 보이지만, 무의식적 욕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렇기에 도시를 사진으로 찍는 일은 도시의 그림자를 잡아내(촬영撮影)고 숨겨진 텍스트를 가시화하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한 점으로 수렴하는 원리인 일점 원근법을 완벽하게 구현한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는 ‘그 모든 것’을 찍어내기 위한 강박에 사로잡혔다.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하고 변해왔듯 카메라의 셔터도 무섭게 빨라지며 매순간 스쳐가는 세상의 이미지들을 고정시키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가 이미지화되어 가는 것에 대해 ‘이탈로 칼비노’는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압도하는 강력한 매체들은 세계를 이미지로 변화시키고 거울놀이의 환등상을 통해 세계를 배가시키는 것만을 행할 뿐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언술을 제시했다. 새로운 기술 매체와 결합된 도시의 이미지가 시뮬레이션 상태로 전환할수록 도시의 무의식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늪이 돼간다. 도시가 이미지화 돼가는 현상에 대해 칼비노는 냉소적 비판을 하면서도 도시의 ‘가능성 있는 의미로 가득한 내적 필연성’에 주목했다. 칼비노가 언급한 도시의 ‘내적 필연성’은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 여러 해가 흐르고 변화를 거듭해도 욕망에 자신들의 형태를 부여하기를 계속하는 도시와, 욕망에 지워져 버리거나 욕망을 지워버리는 도시,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누는 편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옮김,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2016, p18, p48)
 
 그리고 칼비노는 도시도 ‘무엇인가를 머릿속에 각인하기 위해 스스로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기억을 차곡차곡 퇴적시키고 시간의 선분을 손금처럼 새기며 최초의 꿈을 잊지 않으려는 도시의 욕망은 사람과 닮았다. 그러므로 도시를 촬영하는 일은 도시의 꿈과 무의식, 욕망을 알아채는 일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욕망은 카메라의 하나의 눈으로 수렴되거나 객관화가 될 수 없기에 계속 보고, 깊이 보고, 다시 보면서 내밀한 대화를 걸어오는 자에게 겨우 제자리를 노출시킨다.
 
 김동진은 <A Landscape-SEOUL>에서 서울의 경관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10여 년 전의 북악, 인왕, 북한산과 남산 언저리의 마을이 등장한다. 공통적으로 산(山)이 화면의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화분의 화초처럼 심어져 있다.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은 정제된 컬러는 대체로 미들 톤(middle tone)에 가깝다. 작가의 시선은 대도시의 댄디한 산책자처럼 무심한 듯 예리해서, 스냅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풍경의 세부를 낱낱이 드러내기 위해 애쓴 흔적도 보인다. 정교한 프레이밍 같으나 나뭇가지와 전선, 간판들이 롤라이 플렉스의 정사각형 포맷에 가볍게 들어앉아 있다. 때론 수평과 수직이 어그러져 있기도 하다. 대개 미들 톤의 풍경사진이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수식어구와 함께 풍경을 대상화하려고 했다면, 김동진의 시각은 산책길에서 만난 서울의 소소한 풍경을 다만 심심하게 보여준다. 나로서는 이 점이 김동진의 사진에 매혹을 더하는 김동진만의 고유한 촬영미학이라 생각된다. 풍경을 받아들이는 시선 속에 풍경이 들어와 자신을 드러내는 것, 사진가-주체가 풍경-객체를 인식하려는 행위와 함께 자신을 객체에 내주는 행위를 김동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단면이 김동진의 사진에서는 ‘내가 사는 동네’처럼 익숙하고, 빼곡하고 복잡하게 산으로 기어올라가는 집들을 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안쓰러움과 불안감도 든다. 익숙함과 불안함,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한 현실인, 지속을 꿈꾸지만 파괴될 수밖에 없는 이 도시의 이미지는 파편적이고 분열적이다. 김동진이 도시의 보이지 않는 텍스트들을 제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산책자에 위치시키고 급변하는 서울의 조각들을 사진으로 수집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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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은 이미 그의 <토층도(A historical layer of land)>(1996~2002)시리즈에서 이 도시의 ‘속’을 고고학적으로 발굴해냈다. <토층도>는 흙과 자갈과 이름 모를 풀들이 어지럽게 자라난 시원(始原)의 땅을 보여준다. 작가는 <토층도>를 통해 도시의 숨은 꿈을 현상했고, 곧 그 위에 인화될(세워질) 새로운 도시 이미지들을 예견한 듯하다. 즉 <A Landscape-SEOUL>의 무의식에 <토층도>가 있고, 그 위에 도로가 생기고 집이 올라오고, 사람이 살며 도시는 퇴적과 풍화, 사라짐과 살림을 무수히 반복했을 것이다. 그의 긴 호흡으로 이뤄진 셔터는 도시를 바라봄과 동시에 도시가 그 안으로 들어오는 상호 교차의 열림이었다. 주체의 시각으로 대상-풍경을 수렴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규정할 수 없고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도시의 숨은 텍스트들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지화된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다시 도시에 의해 살아지는 현대인의 ‘도시화된 몸’에서 이 도시가 꿈꾸었던 꿈의 행간을 읽어내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머릿속에 각인하기 위해 도시도 스스로를 반복하고 있’듯이 작가는 사진으로 도시를 새기며 도시의 손금과 사진의 지문을 계속 헤아리고 있다.  
 
 도시의 무의식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도시를 보듯이 도시도 사람들을 본다는 것이고, 이미지화된 도시 속에서 현대인은 스스로 이미지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칼비노가 언급한 도시의 ‘가능성 있는 의미로 가득한 내적 필연성’은 이미지 너머의 새로운 이미지를 발굴하거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불가능성을 안고 볼 때 개시될 수 있을까. 김동진이 촬영한 가까운 옛날의 서울은 사진 속에만 존재하고 지금은 부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 곳이 어디일지는 사진의 곳곳에 드러난 산의 형세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사라져야 살아나고, 부재로써 현존하는 사진의 본질처럼 도시는 무수한 도시들을 땅에 매장시키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진은 도시를 찍었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 속에 새겨진 것이다.      사진/갤러리브레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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