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모두 가리고 살아야 하나

사진마을 2018.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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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박하선의 사진전 ‘인간을 보다’가 사진 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23일까지.
 보도자료에 따라온 사진을 보다가 여러 작가의 사진이 떠올랐고 여러 생각이 났다. 우선 필립 퍼키스의 ‘인간의 슬픔’(원제: The Sadness of Men)이다. 그 사진집이 어떤 내용인지 구구절절 언급하는 것은 부질없다. 어떻게 글이나 말로 사진을 설명할 것인가? 어떤 사진평론가가 사진에 대해 가타부타 입길에 올릴 수 있겠는가?
 “검은색 계통의 상의와 청바지를 입은 3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다. 그 뒤로는 부녀가 앉아있고 유모차 남자의 앞쪽(그러니까 카메라 쪽)엔 흰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셀피는 아니다. 휴대폰을 따라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돌로 된 조형물의 일부가 찍혀있다. 거북이 머리의 형상이니 귀부라고 부르고 그 중에 귀두가 보인다. 그 외에도 이 사진에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많이 있다. 천장이 높은 건물이다. 아주 큰 건물이다. 배경에 해당하는 쪽에 겹겹이 다른 공간이 보인다. 석조물 앞에는 20센티에서 30센티 높이로 추정되는 낮은 울타리가 있다. 접근하지 말라는 뜻의 울타리인데 높이가 낮은 것을 보면 형식적이거나 상징적인 장치일 것 같다. 실제로 저 울타리를 넘어가 조형물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자. 위의 설명을 듣고 해당 사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 사진은 내가 찍었다. 찍은 사람은 최소한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국립중앙박물관 1층의 홀이다. 유모차 남자나 뒤의 부녀나 사진을 찍는 아이는 누군지 알 수 없다. 내가 이 사진을 찍고 그들의 신원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럴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왼쪽에 있는 귀부는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의 일부다. 이것은 그 탑비 앞에 유물을 설명하는 팻말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거의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저 사진에서 확실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사진을 찍은 나도 사진에서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탑비 하나였는데 그 또한 유물의 설명에 근거를 두었다.
  매체에 실리는 보도사진이라면 사진설명을 반드시 달아두니 그 설명에 근거를 두고 내용을 알 수 있다. 설명이 없고 독자가 모르는 장소, 사람, 상황이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보도사진이 아닌 사진은 아래에 설명을 달아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껏 제목 정도를 달거나 말거나 한다. 그럼 우리는 뭘 근거로 사진을 감상하거나 평가해야 하는가?


phs01.jpg » <1995년, 인간세상에서> 박하선

phs02.jpg » <2008 인간의 먹이> 박하선  phs03.jpg » <2009 알레포의 빨간 폭탄> 박하선

phs05.jpg » <별나라 이야기> 박하선

phs06.jpg » <인간 세상> 박하선

phs07.jpg » <인간의 먹이-3> 박하선

phs08.jpg » <인간의 먹이-4> 박하선

phs09.jpg » <제주 4.3항쟁의 섯알오름> 박하선



   사진가 박하선의 작품을 하나 예로 들어보자. <1995년, 인간세상에서>라는 제목이 달린 이 사진에서 최소 50대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웃통을 벗은 채 왼손엔 스푼, 오른손엔 포크를 들고 식사를 하고 있다. 뭘 먹는지는 알 수 없다. 스푼을 쥔 왼손엔 손목시계가 있다. 시장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왼쪽 뒤편은 열려있으니 사방이 막힌 공간은 아니다. 이 사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이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글이나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런 방식이 사진작품을 감상하는 법인가? 이 한 장으로 이번 전시 ‘인간을 보다’를 다 이해할 수 있는가? 어쨌든 이 사진을 우리가 그대로 다시 찍을 순 없다.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 23년 전이니 이 사람은 아직 살아있다면 나이가 들었을 것이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보자. 생선의 머리를 중심으로 찍힌 이 사진은 왼쪽에 생선에서 나온 피가 흥건하게 보인다. 이 사진은 비슷하게나마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물고기의 눈은 까맣게 됐고 입은 떡 벌려졌다. 끔찍한 장면이지만 고통스럽진 않다. 구이든 회든 우리는 생선을 먹는다. 어느 횟집에서 아직 숨이 붙어서 꼬리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그러나 몸통은 횟칼로 잘려서 더 이상 물고기의 형상이 아니라 회로 변한 광어를 본 적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이것은 그렇게 잔혹한 장면은 아니다. 어떻게든 많이 본 것 같다. 또 다른 사진은 깨진 수박을 찍은 것이다. 수박의 속이 생선의 피 마냥 빨갛다. 이 사진은 누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사진이 발명, 공표된 직후부터 사진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혹은 거의 유사하게 찍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진은 예술이 아닌 것으로 치부됐다.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와 미국의 법정에서 사진은 예술임을 인정받았으나 서글픈 일이다. 회화나 조각이나 무용이란 장르가 예술인지 아닌지 시비를 걸 일은 잘 없다. (조각은 좀 이상하긴 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원본이 9개라고 한다.) 사진이 전해주는 서사와 감동의 제한성을 뛰어 넘는 방법으로 연작 사진 혹은 여러 장 짜리 포트폴리오가 나왔다. 이번 박하선 작가의 사진전뿐만 아니라 모든 사진전은 여러 장으로 기능을 한다. 밥 먹는 남자, 피 흘리는 생선, 깨진 수박 사진을 한 공간, 혹은 한 권의 사진책 안에서 순서에 따라 보고 연결하여 감상하면 그 순간부터 그 사진전과 사진집은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예술로 승화된다.
 
   필립 퍼키스가 ‘인간의 슬픔’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 이번 박하선의 ‘인간을 보다’가 전달하려고 하는 것, 그 밖에도 수도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에 관한 접근이다. 각자 다르게.
 
   이 8장을 보면 한 장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읽을 수 있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 전체를 보면 훨씬 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이스22는 강남역 1번 출구 바로 바깥에 있다.
 


  박하선
 1954년 광주에서 출생. 1980년 ‘대양’전을 시작으로 ‘실크로드’(1990), ‘티벳’(1991), ‘문명의 저편’(2000), ‘천명’ 등 17차례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졌으며, ‘광복 60년, 사진 60년-시대와 사람들’(2005), ‘2006 대구 국제사진비엔날레’ 주제전, ‘한국현대사진 60년’(2008)을 비롯한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현재 자유사진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매체에 기고중이며, 여행집단 ‘문명의 저편’ 단장을 맡고 있고, 세계 오지 및 분쟁지역, 그리고 한민족 상고사 영상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대하역사다큐멘터리’ 출판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품집으로「삶의 중간보고서」(1999),「天葬」(2002),「문명 저편의 아이들」(2005),「천불천탑」(2007),「생명의갯벌」(2009),「오래된 침묵-고인돌(Ancient Silence)」(2011),「발해의 한」(2012), 「태왕의 증언」(2017)이 있다. 티베트의 장례의식을 담은 사진 ‘天葬’은 ‘2001 World Press Photo’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서문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푸쉬킨이 말했다. 이 말은 결국 세상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세상이란 또 무엇인가. 인간들이 득실대는 세상이다. 그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한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작은 별인 이 ‘지구’의 주인인 양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살아가는 무리가 우리 인간이다.
 
 그럼 우리 인간은 왜 서로를 속이면서 살아가는 걸까. 여기서 속인다는 것은 결국 다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희로애락이 있다지만 어찌 보면 슬픔과 괴로움의 진흙탕 속에서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게 피어나는 것이 기쁨이요, 즐거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고달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우리 인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옛 성인들의 말씀에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 있지만 나는 <사람(人)의 性은 惡이다. 그 善한 것은 僞이다.>라고 주장한 성악설에 무게를 둔다. 물론 이 세상에는 착하게 살면서 아름다운 얘기를 전하는 무리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그러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월등하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그 본성을 살펴본다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그는 우리 인간 그 자체에 관한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있으랴. 그도 인간인 것을. 그리고 좋든 싫든 간에 세상에 묻혀 함께 살아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우리 인간세상의 민낯을 들추어 보면서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면서 작가는 전시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 시각에도 인간세상은 시끄럽다. 국가 또는 개인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안달이고, 하늘을 빙자해 우리 힘없는 인간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옛날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두려운 물길을 건너면서 차라리 두 눈을 감아버리니 무서움이 사라졌다!’라고. 그래, 세상이 이렇다면 두 눈 바짝 뜨고 살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한쪽 눈도 아니고 두 눈을 모두 가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지만, 인간의 본성이 버티고 있는 한 누구를 원망하며 탓하겠는가.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지만, 인간인 것이 결코 자랑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를 싣고 있는 푸른 별 이 지구는 아는 양, 모르는 양, 오늘도 우주를 맴돌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스페이스2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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