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비평, 친절한 불친절함

사진마을 2018.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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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사진책-수지 린필드 <무정한 빛>


my08.jpg  “…남편은 검은 밴드가 달린 흰 밀짚모자를 썼다. 양복 단추는 꼭꼭 잠겼고 타이는 어디 한군데 비뚤어진 곳 없이 똑바로 매여 있다. 왼팔을 구부린 남편은 위로 향한 손바닥에 빵 한 덩이를 마치 귀중한 보석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단히 들고 있다….” 저자는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이미지는 파시즘과 전쟁이라는 모멸의 순간을 거치고도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는 자부심 속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 세계에 대한, 우주 속 자기 위치에 대한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미지다.” 이런 해석도 덧붙인다. 당황스럽다. 사진 비평책에서 사진은 싣지 않은 채 글로 사진을 묘사한다. 아무리 읽어봐도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사진의 의미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이 책은 왜 이리도 불친절한가? 수지 린필드의 <무정한 빛>(바다출판사, 2017)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가난, 질병, 가족 해체, 알코올 중독, 싸움, 고독사, 노숙이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쪽방 사람들 사진을 8년째 찍고 있는 나에게 주위 사람들이 물어 온다. 쪽방촌을 왜 찍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왜 찍느냐는 질문이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던 질문이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사진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실천적 대답은 갖고 있다. 이론적 대답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진 비평서는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음증적 접근과 그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진 비평가들이 극도로 비참한 빈곤을 보여주는 것은 사회 포르노그래피라고 비판한다. 비참함을 담은 사진은 비참함의 역사나 원인은 한마디도 설명하지 못하고(수전 손택), 의식적인 무력감을 느끼게 하며(존 버거), 빈곤을 흥밋거리로 만들고 고통을 소비 대상으로 탈바꿈시킨다(발터 베냐민)고 비판한다. 쪽방 사진가로서 나는 이 비판에 동조하지 않는다. 물론 이 비판을 받아 마땅한 사진가나 사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무정한 빛>을 읽은 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저자인 수지 린필드는 찍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대답한다. 하인리히 외스트는 유대인 게토에서 겁먹고 굶주리고 장티푸스로 고생하는 유대인을 찍어야 하고, 제임스 낙트웨이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굶어 죽어가는 벌거벗은 소말리아인을 찍어야 한다. 로버트 카파는 독일군과 싸우다 죽임을 당할 만큼은 컸지만 어린이용 관에 들어가기엔 조금 넘치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자갈투성이 농장과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를 찍어야 한다. 나는 질병과 가난과 외로움으로 아파하는 쪽방 사람들을 찍어야 한다. 그것이 수지 린필드의 대답이다.


 쪽방촌 사람들을 왜 찍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실천적 대답과 수지 린필드의 이론적 대답을 합해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에는 반드시 보아야 할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사진 속의 사람들이다. 사진 속의 가난한 사람들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과 분리된 차별적 존재가 아니다. 동일한 존재이다. 값싼 동정이나 일회성 동일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고통받는 노동자가 우리 시대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살가두는 자신의 피사체에 한없는 존경을 바치며, 패배자일지도 모르는 이들을 마치 유명인처럼 칭송한다. 살가두는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위주체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우한다. 쪽방촌 사람들과 나는 다를 것이 없다.
 두 번째는 사진 밖의 사람들이다. 사진 밖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사진 속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전쟁으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군인의 사진에서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의 사진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만든 사회의 책임을 보아야 한다. 위안부 사진에서 우리가 봐야 할 대상은 일제의 잔학함이다.
 세 번째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다. 가난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이것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my5.JPG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과 불합리에 대한 사회적 고발이며 공감의 요청이다.
 네 번째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폭력과 가난과 아픔으로부터 회피하고 도망하는 사람들이다. 쪽방촌 사진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그 사람들을 향한 도전이다. 그들을 향해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물이 사진이다. 사진은 인간의 잔학함을 보여주는 것에 탁월하다. 사진이 문학도 회화도 획득하지 못한 사실적이고 정확한 방식으로 신체적 고통의 리얼리티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수지 린필드는 <무정한 빛>에서 불친절하게도 사진을 보여주지 않은 채 글로 사진을 묘사한다. 쪽방촌의 실상을 설명하는 데에 긴 글보다 사진 한 장이 탁월하다는 것이 나의 상식임에도 저자는 굳이 그 방법을 택했다. 사진 없는 글을 선택한 저자의 의도적 불친절함은 아마도 글 없이 사진만 내미는 나의 불친절함에 대한 고도의 복수 전략일 것이다. 이 책이 내 인생의 사진책이 될 만한 이유이다.
김원(다큐멘터리 사진가, ‘사진마을’ 작가마당 연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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