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자료실

사진마을 2018.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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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자료실 모으고 모아 역사로

 

[아키비스트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매주 금요일이면 쇼핑백 들고

인사동 등 돌며 전시 팸플릿 수집

 

중학생 때부터 껌종이 우표 등 모으다

신문과 잡지 그림 관련 기사 오려

시대·유파별 서양미술 스크랩북 10권 

 

국립현대미술관·가나아트 전문직 거쳐

2001년 본인 이름의 연구소 차려

 

도록 없어 제목만 있던 국전 작품이나

미공개 유명 화가 그림 사진집 실려

“다큐멘터리 성격의 사진이 가진 힘”

 

해방공간 창간 국제보도·사진문화

김구 특집 등 희귀 자료 많아


 dj02.jpg » 김달진 관장이 박물관에서 소장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김달진 관장은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편집인이며 김달진미술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하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를 수집해온 그에 대한 수식어가 다양하다. ‘금요일의 사나이’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 등. 80년대에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근무할 때 매주 금요일마다 큼직한 쇼핑백을 들고 인사동과 동숭동 등의 갤러리를 순회하면서 미술 전시 팸플릿을 모으다가 붙은 이름들이다.
 2013년에는 중학교 도덕교과서(금성출판사)에 그의 이야기가 실렸다. <직업 속 가치탐구>라는 코너에서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만들다-김달진’이라는 제목을 달고 아키비스트 김달진이 소개되었다. 교과서에서 아키비스트는 “작품 및 작가에 대한 기록이나 전시, 미술품에 대한 기록을 관리·감독하는 사람”으로 풀이되었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에 있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방문해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자료 아키비스트인 김달진 관장을 만나 박물관의 방대한 자료 중에서도 사진과 관련된 희귀자료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했고 5일 전화로 보충 취재를 했다. 현재 김달진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어린이 놀이와 관련된 최초의 보급판 서적으로 알려진 ‘조선아동화담’ 1891년 초판 등 희귀한 책을 포함하여 단행본과 작가 화집 1만여권, 정기간행물 300여종 1만여권, 미술학회지 57종 1500여권, 1910년대부터 나온 미술교과서 300여권, 인쇄매체에 나온 기사스크랩을 모은 ’D폴더 작가파일’ 360명분 등의 자료가 있다.
 
1910년대 이후 미술교과서 300여권도 
 지난해 2월에 열렸던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전시도 그랬고 올해 3월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도 전시품목 중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다. 건축가였던 르 코르뷔지에의 경우 건축물을 찍은 사진이 많이 사용될 수밖에 없고 조각가인 자코메티 전시에도 그가 작업하는 사진들이 아주 많이 전시장에 걸려서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김 관장도 사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아카이브형 전시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박수근이다, 이중섭이다 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그분들의 작품에만 열광했는데 더 깊이 들어가려면 그분들을 둘러싼 자료, 하다못해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된 물감까지 밝혀져야 한다. 이중섭이 일본인 부인과 자식들에게 보낸 애틋한 편지 같은 것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런 점에서 사진은 대단히 유용하다. 지금은 예술적 사진도 많이 등장하지만 본질적으로 사진은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은 글로 설명하기보다는 사진이 증언하는 것이다. 사진 한 컷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겠고 또 사진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관장에 따르면 초기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선 도록을 만들지 않았다. 심사위원이나 초대작가 등의 작품이 제목으로만 전해지고 있다가 김 관장이 수집한 ‘국제보도’와 ‘한국화보’라는 잡지에 국전 기사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작품 이미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최초의 자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1954년에 나온 ‘한국화보’엔 천경자의 그림 도판 중에서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보리(영문 작품 제목 Barley)>가 실렸다. 이 작품을 실물사진으로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모두 사진의 도움이자 사진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어린 학생이 이런 일을" 토닥토닥 
 김 관장의 수집가 이력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형을 따라 대전으로 와서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성적이었던 김 관장은 뭘 모으는 게 좋았다. 처음엔 껌종이, 담뱃갑, 우표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신문과 잡지에서 그림 관련 기사가 나면 오렸다.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 초현실주의까지 시대별로 유파별로 나눠서 10권짜리 서양미술 전집 스크랩북이 완성되었다.
 미술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만나달라고 했으나 모두에게 거절당하다가 이경성(당시 홍익대 교수)씨가 한번 만나자고 했다. 김 관장은 보자기로 스크랩북 10권을 싸서 들고 찾아가 대뜸 큰절하고 보여드렸다. 이경성 교수가 “어린 학생이 이런 일을 다 했다.”라면서 토닥거려주었는데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72년 고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이었다. 서양미술만 스크랩해오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궁금증이 생겼다. 김환기, 박수근 등 이런 사람들 자료는 찾기가 쉬웠는데 그 당시 초대작가나 심사위원처럼 유명한 인물들의 자료가 거의 전무한 것이었다. 놀랍고도 이상했다. 그날부터 김 관장은 한국 근현대미술자료 수집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모으던 김 관장은 1978년 ‘월간 전시계’에서 미술 쪽 일을 시작해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쳐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까지 거쳤고 2001년에 본인의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dj01.jpg » 김달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관련 희귀 자료

 

 김 관장이 오래된 사진 관련 자료들을 수장고에서 꺼내왔다. 처음 접하는 것이 많았다. 1952년에 만든 사협 창립 제1회전 팸플릿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45년 박영진과 이해선이 주도하여 대한사진예술연구회가 창립되었고 이후 1952년에 임응식이 주도하여 한국사진작가협회(초대 회장 현일영)가 발족하였는데 그 창립전 팸플릿을 김 관장이 입수한 것이다. 박정희 군사정부의 해산령에 이은 통폐합으로 대부분의 사진단체가 문을 닫았고 1962년에 한국사진협회(제1대 이사장 정희섭)가 발족하는데 이 단체가 1977년에 한국사진작가협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름을 바꿀 당시 일부에선 1952년 임응식이 만든 단체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사진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57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린 <인간가족>전이다. 김 관장은 2012년에 <외국미술 국내전시 60년>전시를 할 때 <인간가족>전 자료를 구하지 못해 기사로만 처리하고 말았는데 그 후에 1955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이 만든 <인간가족> 도록과 1957년 한국 전시의 팸플릿도 입수하게 되어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 관련 자료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제보도’와 ‘한국화보’, ‘사진문화’ 같은 잡지다. ‘국제보도’는 1945년에 창간되었는데 “우리가 우리 글,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한국 최초의 사진화보라고 할 수 있는데 창간 다음 해인 1946년 4호를 포함 6권이 있고 ‘사진문화’는 1948년부터 발간되어 총 18권이 나왔는데 그 중 7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경민(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씨는 ‘국제보도’라는 잡지는 해방공간의 대표적인 시사 화보잡지였다고 했다. 그는 “이 잡지는 미군정에서 이승만정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국의 발전상을 외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관변 잡지의 성격을 띠었으며 정치, 사회, 체육, 문화 등 모든 방면의 소식을 두루 전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의 라이프 잡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단행본으로 <픽토리알 코리아(Pictorial Korea)>라는 영문판과 일어판도 만들었고 가끔 불어판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잡지인 ‘사진문화’는 1948년에 창간되었고 1956년에 발행인이 바뀌면서 재창간되었는데 시사뉴스를 화보중심으로 풀었던 ‘국제보도’와는 달리 사진종합지의 성격이 분명하였고 사진에 대한 연구, 촬영 기행, 사진계 소식 등을 망라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제보도’와 ‘사진문화’는 그런 면에서 한국 사진사에서 대단히 소중하고 동시에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소장한 자료가 방대하다 보니 잡지 내용의 전모를 아직 분석하지 못한 것이 더 많다고 한다. 5일 김달진박물관에서 학예사들이 ‘사진문화’에서 새로 찾아낸 내용을 보내왔다. 재창간된 ‘사진문화’의 창간호와 제6호에, 인간가족전에 대한 두 번의 좌담회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해선, 정해창, 임응식 등은 좌담회에서 뉴욕에서 열린 전시를 일찍 알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하고 인간가족전에 국내 작가의 작품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좌담회 내용 전문 바로가기


"개인 아닌 문화 자산 정책 지원 필요"
 ‘국제보도’를 살펴보니 1947년엔 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특집 및 상해 임시정부 요인 환국 특집화보가 있었다. 1949년 책엔 김구 특집기사가 실렸고 피격당한 현장, 영결식 장면 등 보기 힘든 사진이 많이 있었다. 1954년 책엔 이순신 추모식 사진 6점도 들어있다. 2003년 한국사진학회지에 실린 최인진의 논문 ‘해방 초기의 사진잡지 연구’를 제외하면 아직 ‘국제보도’에 실린 사진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없다시피 하다.
 
 김달진 관장은 “1947년부터 1959년까지 ‘국제보도’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원로 사진가 김한용 선생이 돌아가시기 한 해 전인 2015년에 우리 박물관에 오셔서 ‘국제보도’를 열람하셨다. ‘자신에게도 없는 이 잡지들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어서 너무 반갑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회고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 사진계에서도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많이 대두될 것이다. 자료를 모아놓기만 해선 가치가 제대로 빛나지 않는다. 일반인이든 사진계 인사들이든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많이 활용하여 아카이브형 전시도 하고 연구도 계속 되길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관장은 “올해가 우리 박물관 개관 10주년이다. 그동안 ‘한국미술 해외진출 60년’, ‘한국미술단체 100년’ 등 굵직한 전시를 꾸몄고 단행본도 출간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해온 일보다는 앞으로 할 일이 더 걱정이다. 아카이브를 쌓아두기에 물리적으로 공간이 부족하다. 데이터베이스화를 거쳐 폭넓은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비록 김달진박물관은 한 개인이 시작했지만 우리 미술계의 문화적 자산이니만큼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자료 제공/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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