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실마리 찾아 사진 속으로

사진마을 2018. 01. 15
조회수 2702 추천수 1


20년차 역사 교사 표학렬씨

'한 컷 한국현대사' 펴내


"학생들이 졸지 않는 수업" 위해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phr02.jpg » 독립운동가들이 1938년 3월 1일 3·1절 기념공연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책 72쪽.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표학렬씨가 쓴 ‘한 컷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1만 6천 원)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다. 1919년 3월 시흥보통공립학교의 졸업식 사진부터 시작해 1970년대 공장에서 텔레비전을 조립하는 여공들의 사진까지 모두 33장의 흑백사진이 하나씩 등장하여 한국 현대사를 들려주고 있다. 지난 11일 표씨가 재직중인 한양대학교사대부고 근처의 카페에서 표씨를 만났다.
 

역사에 대한 표씨의 관심은 어렸을 때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마침 집에는 표씨의 아버지가 사다 놓은 ‘국사대사전’(이홍직 외)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안국동 아씨>를 보고 나면 막내아들인 표씨가 ‘국사대사전’에서 실제 역사 속 혜경궁 홍씨를 찾아서 읽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식구들 모두가 신통하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국사와 세계사를 잘했고 역사 선생님들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대학입시에서 사학과를 택한 것도 자연스phr001.jpg » 지난 12일 <한 컷 한국 현대사>의 저자 표학렬씨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책 속에 든 인물과 서대문형무소의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러운 선택이었다. 표씨가 이번에 낸 ‘한 컷 한국 현대사’는 그의  8번째 책이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역설적이다. 1998년에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국사는 필수 과목이었다. 성적이 잘 안 나오니 학생들이 아우성을 치고 수업시간엔 모두 엎드려 자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무조건 잠에서 깨게 하는 것이 첫 목표였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으로 대사를 만들어서 웅얼거리며 외웠다. 연극무대에 선 배우처럼 수업을 했다”라고 표씨가 말했다. 그러다 7차 교육과정 때 국사가 필수에서 제외되었다. 표씨는 “선택과목이 되니까 국사를 하려는 아이들만 상대하게 되었고 그게 더 좋았다. 그래도 자는 아이들을 깨워야 하니 재미있게 수업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의정부 서사제와 육조 직계제는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하면 아이들이 다 잔다. 깨우기 위해서는 왜 만들어졌는지, 태종은 어떻게 왕이 되었고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에 대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설명했다. 그 내용들을 모아서 ‘에피소드 한국사-(근현대 편,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등의 책을 내기 시작했다. 2016년 고3들부터 다시 국사가 필수과목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시험이 어렵지 않아 재미있는 수업 방식을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암기과목이 되면 곤란하다. 역사는 깨닫는 것이지 외우는 것 아니다”라고 했다.


phr01.jpg » 한인애국단 이봉창 의사가 임무를 위해 임시정부를 떠나기 직전 찍은 기념사진. 책 62쪽.
 현대사는 사진이 있다. 표씨는 사건을 집약할 수 있는 사진으로 시대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책 62쪽에는 이봉창 의사가 화려한 ‘투 버튼 양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 있다. 표씨는 “거사에 앞서 폭탄을 양손에 든 사진이 아니라 ‘투 버튼’을 골랐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 덴노(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분이지만 애초엔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식민지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식민지 현실을 잊어버리고 술 마시고 여자 사귀면서 쾌락적으로 살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일본인보다 승진도 안 되고 월급도 적어서 일제 체제와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봉창을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만든 사건이 생긴다. 일본옷을 입고 살았던 이봉창은 ‘덴노의 용안을 한 번은 봐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고 어렵사리 일본까지 갔는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당하게 되었다. 열흘 뒤 풀려나고 보니 일반인들이 덴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열흘짜리 행사가 막 끝난 다음이었다. 이 일을 겪고 ‘뛰어봤자 조선인이구나. 한 번 엎어버리자’라고 무작정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선생과 여러 번 대화를 했다. 처음엔 김구 선생도 일본옷 입고 일본말 쓰는 이봉창을 의심했으나 이봉창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누릴 만큼 누렸다. 이제 영원한 쾌락을 위해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한다’라고 하는 말에 진의를 파악하고 덴노의 안전에 폭탄을 던지는 거사에 이봉창을 투입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phr03.jpg » 텔레비전을 조립하는 여공들의 모습. 책 288쪽
  표씨가 한국사 수업을 하거나 역사이야기로 책을 쓸 때 강조하는 점이 있다. 영웅이 아니라 사람이란 것이다. 현실에 눈만 뜨고 있으면 누구나 의사나 투사가 될 수 있다. 역사적  위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세종은 형과 싸운 세종으로, 이순신 장군은 독선적인 고집으로 조정과 불화를 빚게 되는 장면 등을 풀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끝내 업적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여성이다. 책 72쪽 ‘우리, 독립을 노래하노라’ 편에는 1938년 3월 1일 독립운동가들이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이 실려있다. 이 중에 여성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독립운동도 남성들은 전선에서 싸우고 여성들은 후방에서 싸운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씨는 “사진에 등장한 여성들의 행적을 찾아보니 전선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비밀공작 업무를 받아 국내에 잠입한 사람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성들이 뒤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성들은 앞뒤에서 다 싸워야 했으니 더 힘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편에서 1970년대와 80년대까지 수출의 역군은 여성들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당시 통계치에 따르면 남녀 노동자의 성비가 거의 1:1이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김윤진’은 간호사를 하다가 집에 들어앉아 살림을 하거나 여동생 ‘김슬기’는 허영에 차서 황정민을 베트남까지 가도록 만드는 이야기 구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표씨는 “실제로는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여공이 되거나 하녀가 되는 것이 그 시대 여성들의 아픔이었다.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끼친 여성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남녀평등이 나와야 하phr0001.jpg는데 지금처럼 남성위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광복군에서부터 동일방직(책 294쪽)까지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고 책에 나온 에피소드를 설명했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어떤 장점이 있는지 물어봤다. 표씨는 “책에 사진이 들어있으면 그 역사 속 에피소드들이 이미지화가 된다. 그러면 독자들에게 훨씬 가깝게 와닿는다. 사진 없이 이야길 하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지만 사진이 있으면 설득력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표씨의 책 ‘한 컷 한국 현대사’는 1996년에 우리말로 번역된 ‘광기와 우연의 역사 2’(자작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독일 저널리스트 귀도 크노프가 지은 것으로 한 시대를 움직인 대단한 사진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 후를 쫓아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네이팜탄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알몸의 베트남 소녀, 2차 대전이 끝난 승리의 날에 거리에서 키스하는 수병과 간호사,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꽂는 미국 해병대원들, 멕시코 올림픽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이 들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들 등 세계사에 널리 알려진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장의 사진에서 실마리를 잡아냈다.
  표씨는 사진만 구할 수 있다면 더 쓸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때 기생 출신으로 사회주의운동가가 된 정칠성의 경우도 그렇다. 다음 책에선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뒤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도 쓰고 싶은데 예를 들자면 항일운동부터 시작해 광복 후에 김구 선생을 돕기도 하고 그 후 박정희 정권 때는 반독재 운동에 힘썼고 이후 재야 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진 계훈제 선생을 다루고 싶었으나 계 선생의 상징인 고무신 사진도 못 구했다고 털어놓았다. 표씨는 “80년대는 5월 28일 이후 광주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해 다루고 싶고 사북사태, 85년 중국 민항기 도착 사건도 언급하고 싶다. 87년 민주화 투쟁은 당시 넥타이 부대들이 두 줄로 서서 돌을 날라주는 장면의 사진으로 이야길 풀고 싶은데 역시 사진을 구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5공화국까지는 다루고 싶다.”라고 했다.  표씨가 원하는 사진을 모두 구하길 희망하며 다음번 저작을 기대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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