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걸어가는 사람

사진마을 2018. 01. 10
조회수 3984 추천수 1


한국 최초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

딱 하나 뿐 <걸어가는 사람>원본 포함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파고든 예술혼


gia04.JPG » 뒤에서 바라본 <걸어가는 사람> 석고 원본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4월 15일까지.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02 532 4407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이며 조각, 회화, 판화, 드로잉, 사진, 자코메티의 유품 등 총 120여 점이 소개되고 있는데 특히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걸어가는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원본 석고조각이 아시아 최초로 들어왔다. 조각작품은 판화처럼 여러 개의 에디션으로 만들어진다. <걸어가는 사람>은 6개의 청동조각상이 있고 4개의 작가소장용(Artist Proof)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자코메티가 직접 손으로 빚어낸 석고 원본은 하나 밖에 있을 수 없는데 그것이 전시장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전시를 주관하는 코바나컨텐츠 쪽에 따르면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포항 지진 등의 뉴스가 전해져 자코메티 재단에서 유일본을 보내는데 주저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전시장에서 열렸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전을 소개할 때 전시가 사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썼다. 건축가의 작품은 건축물인데 그걸 통째로 들고 와서 전시를 할 수가 없으니 건축물을 찍은 사진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건축물의 모형이나 도면도 몇 점이 같이 전시되어 원 건축물의 모양이나 규모를 짐작할 순 있었지만 주로 사진에 의존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자코메티 특별전’은 조각가의 전시이니 조각 작품이 직접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 역시 사진기록에 꽤 의지하고 있다. 특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기념비적인 사진 작품 속에서 자코메티는 비를 맞으며 그의 조각 작품처럼 걷고 있다. 브레송이 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해도 자코메티는 존재했겠지만 사진의 위력 덕분에 자코메티의 이미지 형성이 더 고유해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gia01.JPG » 전시장 내부 gia02.JPG » 전시장 내부 gia03.JPG » 마지막 모델이었던 로타르 좌상과 작업 장면을 담은 사진. gia05.jpg »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있는 자코메티, 1950 ©자코메티 재단 gia06.JPG » 브레송이 찍은 자코메티 gia07.jpg » 두상 (자크 뒤팽의 책,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그 에디션, 1962의 표지를 위한 프로젝트), 1960-1962년경 © 자코메티 재단 gia08.jpg » 작업실에서 야나이하라 흉상을 작업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1960 © 자코메티 재단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코메티의 석고 조각 15점, 청동 조각 26점, 페인팅 11점, 드로잉 24점, 판화 19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는 자코메티가 빚거나 그리거나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사진은 22점이 전시되는데 이는 자코메티가 찍은 것이 아니라 찍혀있는 사진이다. 작업실 안에서 작업하는 사진이 꽤 많아서 생생하게 그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자코메티는 주로 자신의 지인들을 모델로 조각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거기엔 동생, 부인, 애인, 친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모델이었던 엘리 로타르(Eli lotar)의 좌상을 만드는 장면을 담은 사진은 의미심장했다. 전시장에서 보니 앞에 로타르의 좌상과 흉상이 놓여있고 배경으로 사진이 크게 전시되어 있다. 그 사진의 내용은 자코메티가 로타르와 마주보고 앉아 점토로 로타르의 조각을 만드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 실재 인물이 있고 실재 인물을 보고 만드는 조각이 있다. 그리고 사진 바깥세상인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 그 조각상의 실물이 전시되어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내 카메라가 찍은 사진 속에 등장한다. 아득해졌다.
 로타르 좌상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며 자코메티가 점토로만 만들어놓고 세상을 뜨자 자코메티의 동생 디에고가 급히 주조로 떠서 형의 무덤에 놓았다.
 전시장 곳곳에는 자코메티가 남긴 어록과 에피소드가 여러 형태로 적혀있다. 전시 관람과 자코메티의 인생 음미에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이렇다. “미술가라면 사물을 타인들이 보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보는 대로 표현해야 한다” 그가 16살 중등학교 때 교실에서 말한 내용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학교의 가르침에 반항하다가 결국 중퇴하고 말았다. 천재를 교실에 묶어둘 수 없었던 것이다.
 뭐니 뭐니해도 <걸어가는 사람>이 이 전시의 백미다. 전시장의 맨 안쪽에 커튼으로 막을 쳐놓은 방이 있다. <침묵과 묵상, 기도의 방>으로 이름이 붙은 이 방에 들어서면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 원본이 버티고 서있다. 앉아서 시간을 갖고 감상하라는 뜻에서 방석이 놓여있고 주관사에선 <걸어가는 사람> 주변을 서서히 걸어서 돌며 명상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어느 순간 홀로 조각 앞에 서있으니 멍해지면서 우주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왜 걷는가? 걸어야만 하는가? 어디로 걷는가? 이런 의문이 끝없이 밀려왔다. 그동안 봤던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의 청동 원본 6개 중 두 번째 에디션이 2010년 소더비경매에서 1억 4백만 달러(한국돈으로 환산하면 1천억 원을 넘는다)에 팔렸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될 정도다. 전시장을 나와서도 자코메티가 남긴 어록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코바나컨텐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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