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인공이다

사진마을 2018. 01. 04
조회수 3668 추천수 0

박영숙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2월 17일까지



박영숙씨의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가 서울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월 17일까지 열린다. 박씨는 1966년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박영숙 사진 개인전’을 열었던 것을 필두로 굵직한 개인전을 이어오고 있다.
  나이 든 여성들의 세월 속에 숨겨둔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박영숙씨의 신작 프로젝트인 ‘여성 서사 여성 사물’의 첫 전시다. 첫 전시라고 했으니 앞으로도 몇 년 동안 꾸준히 후속 작업들이 나올 것이다. 3일 모처럼 한미사진미술관에 사진을 보러 갔다. 강남역 1번 출구 코앞에 있는 스페이스 22만큼은 아니지만 한미사진미술관도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 출구에서 아주 가깝다. 19층 전시장에 들어서서 차분하게 사진과 동선을 살폈다. 이 전시에는 80대와 90대의 여성 7명이 등장한다. 편의상 공간을 7개의 방으로 나눠 한 명이 한 방씩을 차지하게 하였으나 인위적으로 담장을 쌓진 않았다. 대신 방의 들머리에 약식의 커튼을 달아 방을 구분했는데 커튼의 색깔이 모두 달랐다. 주최 쪽에 따르면 사진을 찍은 박영숙 작가가 각각의 여성들에게서 풍겨나온 분위기와 걸맞은 색을 찾아냈다고 한다.


hanmi06.jpg » 이상주, 안동할매청국장 운영 ⓒ박영숙

hanmi05.jpg » 이병복, 극단 자유 대표 ⓒ박영숙

hanmi08.jpg » 최승희, 명창 ⓒ박영숙

hanmi07.jpg » 이은주, 서호미술관 대표 ⓒ박영숙

hanmi02.jpg » 김비함, 서양화가 ⓒ박영숙

hanmi04.jpg » 박경애, 배영환 회장의 아내 ⓒ박영숙

hanmi03.jpg » 김현경, 故 김수영 시인의 아내 ⓒ박영숙



  입구에서 보자면 첫 방은 이상주(1937~ )씨가 차지하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10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고 성북동에서 20년째 ‘안동할매청국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박영숙 작가가 진행한 인터뷰 동영상을 보니 이상주씨의 음식점 안에서도 인터뷰가 진행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시장에 걸린 사진 중에서도 음식점 안의 장면이 있다. 옆 자리에선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고 주인장인 이상주씨가 너무나 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많은 이야기를 사진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 옆에는 고 이병복(1927~2017)씨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이씨는 전시가 시작되고 난 다음인 지난해 12월 29일에 세상을 떴다. 인터뷰 동영상을 봤다. 이병복씨는 1966년에 연출가 김정옥씨와 함께 극단 ‘자유’를 만들었고 이후 40년간 극단의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동영상에서 ‘내가 이병복이다’를 단호한 톤으로 말했다. 일곱 명을 모두 둘러보고 난 다음에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 이 한 마디 ‘내가 이병복이다’가 이번 전시를 꿰뚫는 주제어처럼 들렸다. 다른 방의 사진 속 인물들도 각자 ‘내가 주인공이다’라고 선언하는듯하다. 일본강점기, 한국전쟁, 4·19, 5·16 등 격동의 한국사를 여성,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의 신분으로 살아왔으며 동시에 자신의 분야도 지켜낸 여성들이다. 전시장 동선에 따라 일단 빠져나와 안쪽으로 향했다. 순서를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명창 최승희(1937~ )씨가 등장했고 서호미술관 대표 이은주(1934~ )씨로 이어졌다. 서양화를 전공했고 1960년대부터 고객들을 위한 최고급 옷을 제작하는 유명 디자이너로도 이름을 떨친  서양화가 김비함씨, 배영환 회장의 아내 박경애(1934~ )씨가 차례로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고 맨 마지막은 고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1927~ )씨가 장식했다. 한미사진미술관 19층을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전시장의 마지막 벽이 꽤 울림이 있는 공간이다. 그 벽에는 김현경씨의 얼굴이 아니라 저고리와 치마를 만들다 남은, 혹은 만들려고 준비한 옷감 재료들이 흩어져있었다. 김수영 시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김현경씨가 한복집을 하여 살림을 꾸렸다고 한다.
   19층에서 나왔다. 박영숙씨는 그동안 여러 작업들을 해왔으나 오랫동안 진행해왔던 ‘미친년 프로젝트’가 대단히 강렬하다 보니 다른 것들이 잘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결이 달라 보인다. 선언적, 도전적 페미니즘 사진이 아니라 전시장을 찾는 젊은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미술관 관계자가 말했다. 실제로도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이 여성들이 세월을 안고 살아온 흔적은 전혀 퇴색되지 않고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20층에도 박영숙씨의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내용은 다르다. 그가 1979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휘청거렸을 때, 그리고 수술을 받고 회복하면서 지인들을 찍기 시작했다. 작가노트에서 박영숙씨는 이렇게 썼다. “1979년 나는 인물사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기록은 기억을 위한 것도, 추억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 기록들은 나 자신을 돕기 위한 것이었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작업으로 1981년 박영숙은 ‘36인의 포트레이트’ 전시를 열었다. 그 36인 중에서 이번에 20명의 사진을 20층에 걸었다. 농구선수 박신자, 가수 한영애, 시인 신달자 등이 나타났다. 거의 40년 전 모습들이니 생생하고 씩씩하다.


hanmi01.JPG » 수요일 오후마다 개방되는 사진집의 보고, 전화예약 필수
   20층은 큰 창문이 있는 휴게실이 있다. 창을 통해 올림픽공원이 내려다 보인다. 한쪽 벽엔 사진집이 상설로 열람가능하게 전시되고 있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구하기 힘든 사진집을 볼 것을 권한다. 이번 전시에 맞춰 여성 사진가들의 사진집이 잔뜩 준비되어 있다. 신디 셔먼, 낸 골딘, 이시우치 미야코 등의 사진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장까지 갔다가 이 사진집들을 안보고 돌아오면 크게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더 훌륭한 제도가 있음을 소개한다. 한미사진미술관 19층엔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이름을 단 방이 있고 이 방은 리서치 자료실로도 쓰인다. 들어가 보니 사진집이 대략 천 권 이상 책꽂이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술관 쪽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이 방을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으니 앉아서 사진집을 볼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장치다. 다만 당일에 불쑥 나타나는 것은 곤란하니 최소 2, 3일 전에 예약전화를 줄 것을 주문한다. (02-418-1315) 최대 5명까지 앉을 수 있다. 내 생각에 이 정도로 많은 사진집을 모아 놓고 개방하는 공간은 아마 한국엔 유일무이할 것 같다.
   또 하나의 안내가 있다. 1월 6일 오후 2시부터 전시장에서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박영숙 사진가가 관객과 만날 것이다.
   안내가 하나 더 남았다. 한미사진미술관 멤버십 프로그램 ‘라운지 토크’다. 연 10회에 걸쳐 사진비평가 및 작가 등과 직접 만나 문화 전반에 대해 나눠보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회원이 되면 10회의 토크에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연회비는 3만 원, 현장가입도 가능하고 전화 접수도 가능하다. 선착순 마감. 회원의 혜택은 전시관람료 50% 할인, 라운지 토크 당일 아메리카노 1잔 제공, 전시 초대권 2매 증정.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한미사진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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