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예·박태희의 <사막의 꽃>
글과 사진의 만남, 그러나 하나는 먼저 세상을 뜨고
쓸쓸함이 베어있지만 “두 영혼의 합일”이 웃고 있다
13년 전 둘은 미국에서 처음 만났다. 한 명은 글을 쓰고 한 명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둘은 2002년 10월에 향후 포토에세이집을 내기로 의기투합했고 책 내용에 대한 구상도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알 수가 없는 것. 글을 맡았던 조현예가 두 달 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렸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맡은 박태희는 홀로 남아 8년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현실과 추상 넘나들면서도 경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조현예의 글 53편과 박태희의 사진 66장이 어우러진 포토에세이집 <사막의 꽃>은 그런 사연 속에 나온 책이다. 17년간 사진을 찍어온 박태희에겐 어떤 형태든 자신의 사진집을 낼 만도 했는데 이 번이 첫 사진집이다. 자신의 책보다는 먼저 세상을 뜬 조현예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박태희는 이렇게 썼다.
“오래도록 바라만 보던 그녀의 글과 나의 사진을 엮어 책을 만들고 있다. 개인적인 고백과 상황을 넘고, 시간과 장소를 넘어, 각자의 본질을 잃지 않고서 두 영혼의 합일을 이루어내는 작업이다. 살아있는 현실이며 동시에 추상이기도 한 그 무엇,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사진, 그래서 나조차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었던 그 내용들이 그녀의 글에 의해 존재를 증명받고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한 편의 글이 나오고 다음 쪽엔 사진 한 장이 실리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편집도 있다. 글이 두 편 연속해서 나오기도 하며 사진만 두 장 연이어 배치되기도 한다. 어떤 쪽에선 글이 있어야 할 왼쪽은 빈 채 오른쪽에 사진만 덩그렇게 실려있다. 모든 글쓰기와 사진찍기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작업이란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의 편집, 제작 과정은 더 고독했을 것이다.
조현예가 살아남아 둘이 같이 글과 사진의 배치를 의논했다면 한결 편했으리라. 가끔 둘 간에 의견이 갈리기도 했겠지만 그런 장면이 박태희에겐 더 그리웠을 것이다. 사진과 글은 모두 쓸쓸함을 바탕으로 내달리고 있다. 사진이 쓸쓸해 보이는 이유는 이렇다. 거의 다 흑백이고 간단한 구성을 자주 구사하며 정면에서 마주보지 않는다. 대체로 먼 곳에서 건너다 보듯 하고 현실과 추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경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이 쓸쓸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몇몇 글과 사진을 소개하니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 같다.
엉화 학도와 사진 학도가 만났을 때
72쪽: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했어
평화와 고요가 무너졌어
말을 아낄 필요가 있어
내 자신에게 할 말이 줄어드니까
108쪽:
어쩌면 이제 마지막이야 서로를 놓아주는 마지막 사랑
울지 않는 헤어짐 연습과도 같던 시간들
하얀 재, 건조한 작은 바람에도 흩어져갈 낱낱의 작은 점들
아마도 기억조차 못할 것 너무나 먼 얘기들
아마도 몇 천년 전 그림 같은 짧은 단상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거야
우리 이제 인사할 때
덤덤한 짧은 인사
안녕
글을 쓴 조현예는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뉴스쿨에서 영화 공부했다.
사진을 찍은 박태희는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프랫에서 사진 공부했다. 필립 퍼키스의 명저 <사진강의노트>를 번역하는 등 여러 책을 엮고 옮겼다.
<사막의 꽃> 38,000원/안목 www.anmoc.com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