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송이 우러러 본 케르테츠

사진마을 2017. 07. 27
조회수 3279 추천수 2

ker01.jpg » 수영하는 사람, 헝가리 에스테르곰, 1917


 성곡미술관의 여름 특별전 ‘앙드레 케르테츠’전이 9월 3일까지 열린다. 흑백 및 컬러사진 총 189점이 걸리며 이 밖에 <왜곡>시리즈의 슬라이드 사진 15점과 인터뷰 영상 2편도 같이 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Tel. 02-737-7650 

  존 버저와 장 모르의 공저인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부분이 특이하다. 이 책은 사진집이기도 하고 사진을 엮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2부에 해당하는 ‘모습들’은 40쪽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데 존 버저의 사진론에 해당한다. 2부에서 존 버저가 몇 사진들을 인용하여 사진이론을 전개해나가는데 후반부에 연거푸 넉 장의 사진이 실제적으로 인용이 되는데 이 넉 장이 모두 앙드레 케르테츠의 것이다. 존 버저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에서 케르테츠의 말도 인용했다. “카메라는 나의 무기다. 그걸 가지고 나는 내 주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헝가리 사진가다. 이번 성곡미술관은 전관을 모두 케르테츠에게 할애하였는데 시기별로 셋으로 나누고 <왜곡>시리즈를 따로 뗐다. 처음은 헝가리 시기(1912~1925)다. 존 버저의 책에서 인용한 넉 장과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인용한 한 장이 모두 이 헝가리 시기의 사진이다. 1912년, 그러니까 케르테츠가 18살에 찍은 것으로 알려진 <잠자는 소년>에 대해 존 버저는 심오하게 해석하고 있다. <떠나가는 붉은 기병, 1919년>, <친구, 1917년>, <연인,1915년>등이 모두 탁월한 사진이론가 존 버저의 관심을 지대하게 끌고 있다. 흔히 앙드레 케르테츠를 언급할 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이 말했던 “우리가 해온 것들은 모두 케르테츠가 처음으로 했던 것”을 떠올린다. 케르테츠는 헝가리 시기의 활동에서 스냅으로 시간을 포착하는 것 외에 이미 밤 사진, 왜곡에 대한 실험 등 모든 시도를 다 해버렸으니 늦게 태어난 브레송이 사진을 하려고 보니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미 케르테츠가 훑고 가버렸음을 알고 황당했을 법도 하다.


ker02.jpg »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1926

ker03.jpg » 풍자극 무용수, 1926

ker04.jpg » 포크, 파리, 1928

ker05.jpg » 샹젤리제, 1929, 파리


   성곡의 전시장에서 방을 건너가면 시기별로 두 번째인 파리 시기(1925~1936)와 만나게 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몰려든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리에서 케르테츠는 몬드리안, 만 레이 등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 시기의 사진 중에는 어쩌면 케르테츠의 작품목록 중에서 가장 비싼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가 포함되어 있다. <포크>나 <샹젤리제>도 많이 알려진 이 시기의 사진이다. 헝가리 시기의 스냅들과 뚜렷하게 구분이 됨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케르테츠가 헝가리 시기 때 피하고 싶어했던 회화주의 쪽 사진으로 기울고 있다. 물론 여기서 회화주의는 오스카 레일랜더나 피치 로빈슨 등과 같은 “그림 같은” 회화주의가 아니라 “완벽한 구도와 질서”를 의미하는 살롱사진에 가까운 회화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특정한 주인공이 아니라면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어쨌든 조형미를 우선시하는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er07.jpg » 길 잃은 구름, 뉴욕, 1937
   방을 나와 2관의 1전시실로 가면 뉴욕 시기(1936~1985)로 들어서게 된다. 1936년에 케르테츠는 사진 대행사 키스톤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뉴욕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뉴욕의 삶은 순탄치가 않았고 그런 내력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의 15장 ‘의미하기’ 편 말미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진은 위험하다”라는 취지를 설명하며 케르테츠의 일화를 소개했다. 


 상업적 목적을 명분으로 하기 때문에 명백하고 분명한 의미를 지닌 광고사진의 세계를 우리가 인정한다면 이제 사진에서 기호학이라고 하는 것은 몇몇 뛰어난 인물사진에 국한될 뿐이다. 나머지, 좋다고 말해지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사진에 대해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사진 찍힌) 대상이 말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모호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좀 더 들어가자면 모호하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이 요인은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더 안전하다. 예를 들어 1937년에 케르테츠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라이프 잡지의 편집자들은 케르테츠의 사진을 거부했다. 편집자들은 케르테츠의 사진이 “너무 말을 많이 한다”라고 지적했다. 말이 많은 사진은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만들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보자면 사진은 겁을 주거나 겁박하거나 충격을 줄 때가 아니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할 때 체제전복적으로 된다.


<밝은 방>에서


 롤랑 바르트가 저렇게 인용한 것은 대부분의 사진은 우연히 찍혔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수 없다고 15장 머리에서 전제하고 들어갔음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목적이 분명한 광고사진, 사회적 마스크를 갖춘 몇 인물 사진가(리처드 아베든, 나다르, 잔더)의 사진만이 의미가 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덧붙여 케르테츠의 사진이 “말이 많아서, 심사숙고하게 만들고, 새로운 의미를 불러 와서”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대중적 독자를 상대하는 라이프 잡지의 편집자들은 케르테츠가 너무 어렵거나 대중적이지 않다고 봤거나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르테츠는 경제적 어려움도 겹치면서 20년 넘게 고전했다. 1937년에 찍은 ‘길 잃은 구름’을 보면 뉴욕 초기에 난관에 봉착한 케르테츠의 고민이 보인다. 그 외의 사진을 보면 또 한 번 작품세계가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탉, 화분 등 조형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헝가리 시기의 케르테츠로부터 많이 떨어져나왔다. 1964년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게 되었고 늦었지만 평가받기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추앙하는 케르테츠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1985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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