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인간문제 찾기

사진마을 2017. 07. 19
조회수 2614 추천수 0

[사진가의 삶과 사진]-김문호


신학대 나왔으나 목사 되긴 싫었다

번역책 삼사십 권 낸 번역가이기도

 

우연히 잡게 된 사진기로 

거리의 사람들 닥치는 대로 눌러

 

동생 요청으로 극단 사진 찍어주다

김민기와 스틸영화 작업도

 

우연히 최민식 선생 만나 충격

장일순 리영희 선생에게서도 ‘안목’

 

민주화엔 관심 있었지만 

운동 사진은 기자 몫이라고 여겨

 

30여년 사진인생에서 개인전 딱 5번

독서 등으로 길게 호흡하며 통찰

 

보는 사람이 교감할 수 있도록

삶의 스토리가 같이 엮여야



kmh002.jpg » <온 더 로드> 중에서, 2008년 서울 까치산역.

kmh003.jpg » <섀도> 중에서, 2011년 서울 낙원동


사진가 김문호(64)씨는 1980년대 초반에 처음 카메라를 잡고 집에 암실까지 두고 현상과 인화까지 하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그동안 ‘온 더 로드’, ‘섀도’, ‘웨이스트 랜드’, ‘인 더 시티’ 등의 사진작업을 해왔다. 그는 또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사진 관련 책의 번역일이 밀려들어와 사진 쪽 전문번역가처럼 되었지만 원래의 번역 분야는 칼린디의 <비노바 바베>,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 키스 윌리엄 휘틀럼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등  인문학 쪽이었다. 김문호 이름으로 나온 최초의 번역서는 1986년에 옮긴 구스타보 구띠에레즈의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로 해방신학의 고전으로 불린다. 그가 번역한 책은 오십여권에 이른다. 김문호씨는 30년을 훌쩍 넘긴 사진 인생에서 개인전을 5번밖에 하지 않았을 정도로 길게 호흡하는 사진가다. 지난 14일 ‘사진가의 인생과 사진’ 첫 순서로 김문호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김문호씨가 처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 작은 출판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할 때인 1981~82년 무렵이었다. 같은 사무실의 친구 중에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 영향을 받은 셈인데 김씨는 처음부터 풍경이나 꽃 같은 것은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 다니면서 도시락 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다녔는데 거리의 사람들, 예를 들어 김장하는 사람도 찍고 길 가는 사람도 찍고 그랬다고 한다.
  
 느닷없이 ‘민중사진전’이라고 소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엔 풍경을 찍는 것 같은데 특이하다. 사람을 찍게 된 연유라도 있을까?
 “대대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서 이래저래 신학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졸업은 겨우 했으나 목사가 되는 게 싫었다. 목사가 되려면 어떤 도그마에 갇혀야 하는데 나는 성격이 불기하여 그걸 못하겠더라.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은 신학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사진을 처음 하면서 닥치는 대로 찍고 있다가 1986년 <동아일보>의 사진전 소식을 하나 보고 찾아가게 되었다. 최민식 선생이 프랑스 문화원에서 ‘인간’ 사진전을 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최 선생이 계셨다. 사진이 충격적이랄까, 느낌이 강했다. ‘부산에 한번 놀러 와라’라고 해서 그동안 내가 찍은 사진을 들고 찾아갔다. 이것저것 여쭤보고 싶었으나 최 선생은 질문을 받는 분이 아니었다.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쫙 하시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몇 번을 찾아가서 많은 말씀을 들었다.”
 -첫 개인전은 1989년에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주변 반응은 어땠나?
 “1985년 무렵 동생이 한 극단의 단원으로 잠깐 있었는데 ‘오빠, 우리 극단에 사진 찍는 사람이 필요해’라고 해서 찍어주게 되었다. 그게 연우무대였고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같은 작품을 공연하던 때다. 문성근, 강신일씨 등이 배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김민기 형도 만나게 되었다. 김민기 형하고는 같이 <애국가>라고, 스틸영화 작업도 함께했다. 왜 그 당시 극장에서 영화 상영할 때 애국가가 나왔고 사람들이 기립하여 대통령 얼굴이나 부채춤 같은 장면을 봐야 하던 시절인데 우리는 독립운동 시절의 태극기, 광주학살 같은 사진들을 수집하여 스틸영화로 만들어 연극 공연에 앞서 틀어주곤 했었다. 탈춤운동 1세대 격인 채희완 선생이 글을 쓰고 내가 사진을 찍kmh.jpg » 김문호 작가어 <탈춤>이란 책이 나왔다. 어찌 되었든 주변에 미술, 음악, 연극 등 문화계 인사들이 많았는데 1989년에 이들이 권유하여 ‘그림마당 민’이란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민들, 노동자들, 애들 이런 사진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에 단신으로 기사가 나갔는데 느닷없이 ‘민중사진전’이라고 소개되었다. 신문을 보고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왜 민중사진이라면서 통일문제나 노동문제는 없는 거냐’고 지적하더라. 그냥 소이부답할 수밖에.”
 -치열했던 80년대이니 주변의 기대가 그랬을 것도 같다. 민주화운동도 찍었을 것 같은데?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민주화에 왜 관심이 없었겠는가? 나는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사진에는 관심이 없었다. 청파동에 사무실이 있었으니 숙대생들의 데모도 찍은 적이 있긴 있지만 나의 사진 테마는 아니었다. 민주화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이 별로 없었다. 그런 사진은 기자들이 찍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관심사는 인간 자체에 있었다. 일상에서 인간의 문제를 찾고 싶었으니 거리나 시장 같은 곳을 찍었지. 그 무렵에 최민식 선생의 제안으로 ‘사진집단 사실’이란 게 만들어졌고 나도 거기에서 같이 활동했다. 1990년에 창립전시를 열었고 사진을 냈는데 나는 여전히 일상적인 사진을 걸었다. 다른 회원들은 노동운동 사진을 걸고 그랬다. 93년과 96년에 사진집단 사실 그룹전을 한 번씩 더 열었고 회원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녀라고 맨날 물속에만 있나
 -그렇다면 본인의 사진철학과 사진의 주된 테마인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길 해보라.
 “나는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고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다. 묘사(디스크립션)가 아니라 표현(익스프레션)이다. 최민식 선생이 유진 스미스, 도러시아 랭 같은 사진가의 이야기를 자주 해서 영어 원서로 외국사진 공부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당시엔 유학파가 아니면 몰랐을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The Americans)을 만났다. 이 <미국인들>을 연구한 책을 수시로 보고 있는데 ‘아이코닉 이미지스 오브 아워 에이지스, 아워 컬처’(Iconic images of our ages, our culture)란 표현이 있다. 이 시대를 전형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어야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모든 사진은 어떤 소재를 찍는 것이다. 다들 특수한 소재를 선호할 것이다. 그게 해녀든 광부든 분단이든. 그런데 특수한 소재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의 발원을 찾아내야 한다. 쿠델카의 사진 중에서 밀가루 반죽, 누더기 같은 탁자 위의 꽃… 이런 것에서도 그런 느낌이 났다. 지난번 하지권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갔는데 여럿 중에서도 딱 하나 90살이 넘어 보이는 노승이 아무 표정 없이 바라보는 사진이 있었다. ‘아 이게 인간이구나’ 싶었다. 결국 뭐냐 하면 어떤 사진이 인간을,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란 뜻이다. 일상성이 함께 드러나야 한다. 해녀라고 맨날 물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도 키울 수 있고 마실도 다닐 수 있다. 삶의 스토리가 같이 엮였으면 좋겠다. 인간적인 깊이,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만화경 같은 사진이 아닌 것이다. ‘와 신기하다, 와 예쁘다, 와 어떻게 찍었지?’가 아니다. ‘나도 이렇게 어려운 적이 있었지, 나도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지’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진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사는 이곳 군포시의 별칭이 ‘책나라 군포’, ‘책 읽는 도시 군포’ 아닌가. 군포 시민의 80%가 도서관 회원이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이든 시든 희곡이든 천재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새로운 감성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찍는 대상에 대한 통찰이 풍부해야 한다. 그 통찰이 철학이고 인간관이며 거기서 세계관이 나올 수 있다. 이 시대 사진가들이 들여다봐야 할 것은 ‘헬조선’ 이런 거 아니겠는가. 혼자서 하기 어려울 것이니 사진가들의 그룹을 만들 수 있다면 청소년, 노인 이런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모이면 그런 이야길 하면 좋겠다. 쉽지 않다. 어렵다. 그래서 사진가들이 그런 거 안 하고 빨리 승부할 수 있는 것만 찍으려고 든다. 자랑은 아니지만 1989년 전시 이후 2009년에 두 번째 개인전 ‘온 더 로드’를 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kmh004.jpg » <인 더 시티> 중에서, 2013년 안산
  
콩나물시루 물 빠져도 콩나물 자라
 -‘온 더 로드’ 이후엔 무슨 사진을 했나?
 “2009년에 전시를 하고 나니 내 사진이 보기 싫어졌다. 20년간 거리에서 볼 만큼 보고 다녔으니 그런 사진을 또 해야 하나 싶었다. 회의가 느껴졌다. 다른 차원을 모색했다. 진공상태가 온 것 같았다. 그때 책을 읽었다. 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봤고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 빠져서 천착해 공부했다. 사회와 대도시의 현실 인식에 관해 들여다봤다. 오토 딕스, 에드바르 뭉크도 조금 봤고 책을 읽었다. 그 무렵 내 안에서 뭐가 꿈틀거리고 있었던 게지. 어느 날 지하도에서 뭔가 누르고 보니 사람인데 검은 덩어리가 막 걸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충격이 왔다. 사람도 건물도 자동차도 모두 흔들리고 무너지고…. 그런데 내가 설명을 할 수 없는 거다. 2009년 말부터 2013년까지 수만 컷을 찍고 고르고 골라 2013년에 ‘섀도’ 전시를 열었고 책도 나왔다. 내 사진은 사회에 대한 낙관적이지 않은 그림들이다. 그런 것이 뭉치고 뭉쳐서 ‘온 더 로드’에선 디테일하고 소설 같이 나왔다면kmh01.jpg » 자택앞에서 김문호 작가. ‘섀도’에선 뭉뚱그려 나왔는데 칼로 자른 듯이 나온 게 아니라 둔기로 한 대 때린 것이다. 하고 보니 내가 내 안에 있는 덩어리를 많이 토해냈다. 1989년 전시 때 어떤 기자가 내 사진을 보고 ‘인간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엔 무슨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보니 조금 비슷한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구원은 되었나보다.”
 -요즘은 뭘 찍는가? 사진 외에 다른 것은 뭘 배웠는가?
 “‘섀도’ 이후엔 컬러를 하고 싶었는데 조금 해보니 도저히 내 사진 같지 않았다. 막 천해 보여. 싸구려 같아. 시대나 문명에 대한 풍경화 작업을 해서 ‘웨이스트 랜드’를 했고 ‘인 더 시티’도 했다. 디테일도 찍고 흔들린 것도 찍는다. 사진 외에 다른 거? 1980년대 후반엔 김민기 형 따라 원주에 가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자주 뵀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이 동네로 이사를 왔더니 리영희 선생이 여기 사시는데 두 분이 친하시더라. 역시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 1990년대 들어서 한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민예총에서 한시 강좌를 개설했는데 강사가 노촌 이구영 선생이었다. 이분이 1958년에 감옥 가서 1980년에 출소한 장기수 아닌가. 뛰어난 한학자였다. 이문학회를 만들어서 한문을 가르쳤다. 민예총 강좌 끝나고도 정기적으로 한시를 배우러 다녔다. 한 20년 배웠는데 남는 게 없다. 한번 가면 1시간30분 공부하는데 끝나면 5시간 술을 마시니….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바로 쏵 빠져버린다. 그래도 콩나물은 자란다. 그러니 내 안에도 뭐가 남긴 남았을까? 하하하.”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김문호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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