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문 개인전 ‘선탄부-여자 광부’가 5월 19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광부에 의해 막장에서 채탄된 탄을 갱구 밖으로 운반하고 거기서 불순물인 잡석이나 석탄이 아닌 이물질을 골라내는 부서를 선탄과라고 한다. 이 선탄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니 선탄부를 여자 광부라고 부른다.
그동안 박병문 작가는 2014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아버지는 광부였다’를 시작으로 광부를 테마로 개인전을 세 차례 열었고 이번이 네 번째다. 박병문 작가가 계획중인 전체 광부 시리즈 일곱 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이번이 네 번째에 해당한다. 전화통화에서 박병문 작가는 “이제 3가지 프로젝트가 남았는데 다섯 번째는 삼척 도계에 있는 경동탄광이다. 이곳은 마지막으로 남은 민간탄광이다. 지금 3년째 찍고 있다. 여섯 번째는 폐광으로 태백에 있는 한보탄광이며 마지막은 안산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진폐증환자에 대한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이렇게 긴 기간 동안 광부와 탄광의 안과 밖을 붙들고 있는 것을 보니 사진가로서의 진정성이 대단하다. 사진가에게 사진작업은 단순히 사진 이상의 것이며 이를 보는 독자나 관객들에게도 단순히 사진 이상의 그 무엇이란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병문 작가에게 물어보니 선탄부의 여자광부는 거의 광부의 부인이라고 한다. 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탄광에서 붕괴사고 등이 빈번했고 사고로 광부남편을 잃은 가정을 위해 부인들을 특채한 것이다. 선탄부가 일하는 선탄장은 지상에 있으나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작업이 고달픈 것은 매한가지라고 한다. 여성 선탄부 중에서도 진폐증 환자가 나왔다. 사진으로나마 작업장을 가득 메운 분진과 분탄 속에서 허리를 숙인 채 이물질을 골라내는 선탄부를 보니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 수 있다.
전시 개막에 맞춰 사진집 <선탄부>가 나오는데 사진가 김문호씨가 서문을 썼다. 박병문 작가의 이번 전시와 사진집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한 글이 없을 듯하여 전문을 옮긴다.
선탄부 - 서문
검은 땅에 탯줄을 묻고
사진가 박병문은 태백에서 태어나, 거기서 잔뼈가 굵었다. ‘태백’, 하면 떠오르는 검은 땅, 검은 산, 그리고 검은 광부. 그는 거기서 광부의 아들로 나고 자랐다. 그는 장성하여 성년이 되고 사진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피사체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 바로 아버지의 검은 얼굴이었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가 살아온 삶은 무엇이며,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반추하는 것을 통한 자기정체성의 확인, 그의 작업은 거기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여 그의 사진은 특이한 소재를 찾아 나선 ‘탐미적 호기심’의 결과물도 아니고, 뜨거운 휴머니즘으로 만들어낸 ‘사회학적 보고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선언문도 아니다. 또한 그는 탄광과 광부라는 특이한 소재에 관한 ‘탐험’을 하고 있는 것도, 사진을 매개로 한 낙낙한 예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지금 카메라를 들고 평생을 광부로 일해 온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내고, 거기서 자신의 현존의 뿌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 나의 탯줄이 묻히고 나를 길러낸 검은 땅, 그리고 그 땅에서 아버지와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 이번 작업에 앞서 지난 몇 해 동안 발표한 <아버지는 광부였다>, <검은 땅 우금에 서다>, <아버지 그늘>과 같은 일련의 사진들이 바로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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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를 넘어서
그렇게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시작된 그의 사진여정은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검은 땅, 검은 산하에서 함께 검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그의 사진은 확장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하는 여자 광부 <선탄부>가 바로 그 첫 결실이다. 인생막장으로 비유되는 그곳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광부들, 여성 선탄부(選炭夫). 그들의 노동과 삶이 얼마나 지난하리라는 건 구구하게 형언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사리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가사노동을 책임지며, 산업노동자로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막장에서 쏟아져 올라오는 흙더미,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눈에 불을 켜고 석탄과 잡석을 가려내는 사람들.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숨 가쁘게 흙더미에서 그들이 건져 올리고 있는 것,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은 어찌 석탄뿐이겠는가? 아마도 행복한 가정의 꿈, 아니 어쩌면 눈앞에 닥친 절박한 생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사진가 박병문이 그들의 삶에서 골라내고 건져 올리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이제 자신의 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찾아낸 바로 그곳, 자신의 인생의 그루터기가 되었던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일하는 터전, 그리고 이제는 소위 ‘산업합리화’ 정책에 떠밀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찾아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내보이고 있는 이번 사진들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바로 그 대목이다.
‘그들’이 아닌 ‘당신’
박병문의 사진은 2인칭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사진에는 저만치 있는, 사진가가 대상화시켜서 냉정한 시선으로 관망하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항상 나의 아버지와 나와 함께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낯익은 사람들, 바로 ‘당신’이다. 그로 하여금 사진기를 들도록 만들었던 그 모티브가 타인을 향한 시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박병문의 이번 작업을 통해서 달리는 볼 수 없었던 여자광부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만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그의 친밀한 시각 덕분일 것이다. 그의 이번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이어나갈 작업에서도 그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이는 그의 사진 문법이 그곳 검은 땅에서의 곡진한 생체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전제한다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을 좀 비틀어서 말하자면 자본과 노동, 열악한 환경의 탄광과 광부라는 첨예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사회경제적으로 민감한 대상을 다루면서도, 박병문의 사진에서는 분노나 절망, 저항과 같은 강렬하게 자극적인 앵글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바로 그만의 사진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의 삶의 흔적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왔던 박병문 사진가가 작업의 외연을 확장시켜서 타인의 언어가 아닌 2인칭 언어로 써가게 될 검은 땅의 기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보려 한다. <사진가 김문호>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제공/갤러리 브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