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 사진가인 매커리 사진전어설프게 손댄 사진으로 발칵“스튜디오 기술자의 실수뭔가 더하거나 빼면 안돼” 해명해명에도 논란 이어지자“나는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니라비주얼 스토리텔러심미·구성적으로 뭔가 하고 싶었다후보정은 최소한으로 줄이겠다”국내 사진계도 필수로 여기지만지우거나 만들어 넣는 건 동의 안해
» 스티브 매커리가 2014년에 쿠바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보면 원래 왼쪽에 있던 남자와 교통표지판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면서 교통표지판 기둥의 아랫부분이 미처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보인다. ‘파올로 비글리오네’ 블로그 캡처



페이스북과 이메일로 의견을 보내주신 분들의 원문을 옮긴다. (원문이라고 해서 있는 그대로는 아니다. 약간의 비문을 바로 잡고 약간의 맞춤법 교정을 했으며 동어반복은 정리하고 문장순서를 바꿨음을 밝힌다)
사진가 임재천은 “차제에 전업이나 아마추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전범이 마련되길 바란다”면서 의견을 보내왔다. 그는 “저는 (후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필름이든 디지털이건 간에 촬영 이후 보정 프로그램을 이용한 보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이라 믿는다. 후 보정이란 말에서 보정이란 ‘모자란 것을 보충하고 잘못을 바로잡음’에 그 의미가 있다.
필름의 경우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모두 스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디지털 이미지화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색을 비롯해 명도와 채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또한, 필름상의 먼지들이 이미지에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 보정 도구로 이러한 문제들을 ‘보충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사진가가 의도했던 사진과 상이한 결과물을 얻게 된다.
또한 디지털의 경우도 필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저처럼 카메라 이미지 파일 포멧을 로(RAW)로 설정해서 사용하는 사람에겐 더군다나 후 보정은 필수적 요소이다.
날 것이란 뜻을 지닌 로(RAW)는 손실 압축을 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파일 포맷으로 촬영된 모든 정보를 무조건 저장하는 형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떤 이는 로(RAW)파일을 디지털 카메라의 필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로(RAW) 이미지 파일을 채널당 8비트 이미지로 변환하는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을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스캔을 거친 필름 사진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로(RAW) 파일로 촬영한 사진은 카메라 자체에 내장된 보정기능이 최소화되므로 명도, 채도, 컨트라스트, 샤픈 등을 사진가가 직접 포토샵 등의 보정 도구를 이용해 적절히(촬영 당시 눈으로 본 수준에 근접하는) 보정해줘야 한다.
단순히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는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용량 적고 호환성 좋은 제이피지(JPEG)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제이피지(JPEG)는 손실 압축 방식이기 때문에 무손실 사진을 원하는 사용자, 특히 찍은 사진을 자신의 관점으로 보정하려는 사용자나 전문가에게는 제이피지(JPEG)파일이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파일의 호환성이 떨어지고 용량이 커지더라도 이미지 센서로부터 얻은 정보 모두를 일단 저장하고 보는 것이 이들에게는 중요한데 그 저장 결과물이 로(RAW)이기 때문에 저는 제이피지(JPEG) 포멧을 사용치 않는다.
이쯤에서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후 보정이 애초 촬영할 당시에 담기지 않았던 것을 따로 만들어 집어넣거나 있던 것을 지워내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스티브 매커리가 지탄을 받고 있는 까닭이 바로 자신의 눈 앞에 실재하지 않았던 것을 후 보정 도구를 이용해 추가하거나 삭제하여 이미지를 가공하고선 그것이 마치 촬영할 당시에 그러했던 것인 양 사람들을 호도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 지점에 있어 스티브의 행동은 후 보정의 범주를 이미 벗어난 것이며, 후 보정이 아니라 합성에 가까운 과 보정을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본질은 뭐니뭐니 해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사진 상의 먼지를 지우거나 모자라거나 과도한 색과 컨트라스트 등을 자신의 양심과 관점에 따라 보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것을 인위적으로 더하고 빼서 촬영할 당시 자신의 눈 앞에 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그때에 있어 사진이란 다큐멘터리가 아닌 저급한 합성 사진에 불과할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에 스티브 매커리 자신도 논란이 지속되자 스스로를 비쥬얼 스토리텔러라고 자칭한 것이라 생각한다. 거의 평생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추앙받았고 그에 따른 수많은 혜택을 받았던 사람의 변명치고는 너무나 치졸하고 뻔뻔하다는 것이 스티브 매커리를 향한 제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전시 기획자인 송수정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 과거 암실의 도징과 버닝에 해당하는 자연스러운 색보정 정도의 후보정까지만 선호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설득력만 있다면 그보다 더 강한 후보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를 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미 컬러를 흑백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논란이 되고 있는 스티브 매커리 사진의 경우에는 후보정이 아니라 프레임 속에 있던 것을 아예 없앴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질문이라고 보인다. 그것은 작가의 개성의 차원이 아니라 사실 왜곡이라는 진실성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허현주 교수 역시 다큐멘터리사진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나의 질문에 “필자는 유학 중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편집장을 역임한 로버트 길카로부터 사진 편집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로버트 길카 교수는 편집장이던 시절 표지에 낙타와 피라미드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피라미드를 조금 이동시킨 책임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떠났어야 했다. 만일 이번에 알려진 것처럼 스티브 매커리의 이미지들이 이렇게 조작되어진 것을 알았다면 그의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게재되지 못했을 것이다.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 조작이 사실이라면, 매커리는 후보정된, 조작된 이미지가 어느 것인지 정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포토저널리즘 교육자로서 몹시 아쉽다.
그리고 세계적 사진 거장이 자신을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아니라 비주얼 스토리텔러라고 말했다 한다. 하지만 조작된 사진을 이용해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했다면, 그를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며,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포함한 다큐멘터리 간행물 등에 그의 작품들이 게재되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의 스티브 매커리는 존재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고 후보정의 한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엄격한 잣대를 제시했다. 허 교수는 “아마추어든 프로페셔널 사진가든 촬영된 이미지의 사용 목적에 따라 다를 것이다. 만일 다큐멘터리로 사용할 목적이라면 포토샵을 이용한 이미지 후보정은 콘트라스트나 채도 정도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이상의 보정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보정 이유와 상황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포토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윤리 의식이다”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가 남인근은 “후보정이란 자체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단순히 보정을 두고 말한다면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이 과정은 방법의 차이일뿐 지속해왔던 것이고 다큐멘터리를 찍더라도 필름의 선택이나 필터의 선택이 다를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세팅된 픽쳐스타일이든 후작업의 포토샵이든 다 똑같은 보정이며 암실과 컴퓨터 앞이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라며 “이번에 스티븐 매커리의 사진이 이슈가 되었는데 해당 작가의 사진이 다큐멘터리 혹은 보도사진으로 볼수 있느냐 파인아트로 봐야 하느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잘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논란이 된) 매커리의 사진은 다큐멘타리와 보도사진의 기본을 지키진 않았다. 작가의 미적 감각에 의한 보정은 용인되나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후보정의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자신이 마음에 드느냐 안드느냐의 차이일 뿐. 정해진 보정의 방법도 스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제만 있을 뿐.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풍경 등의 순수사진과 파인아트(디지털아트)의 차이는 사진이 목적이냐 수단이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합성된 이미지를 사진이라고 하지는 않듯이. 작가의 스타일은 시선으로도 좌우되지만 색감(톤), 노출, 컨트라스트 등으로도 나타나기 한다. 맥커리의 사진은 관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듯한데 보도사진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 문제가 되지만 작가의 시점인 스토리텔러로 본다면 문제가 없겠다. 이것은 마치 뉴스와 드라마(영화)의 차이와 비슷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가 강신호는 아래와 같이 의견을 제시했다.
1. 디지털 카메라에서의 후보정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본인의 의도한 내용에 맞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보정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연예인이 화장 안하고 방송에 나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필름사용의 경우, 필름의 종류에 따라 특징이 다 다르다. 흑/백, 네가/슬라이드, 코닥, 벨비아, 후지, 아그파 등의 선택은 작가가 표출해 내려는 색과 느낌에 따라 선정되어 사용되며, 필름 현상 시에도 온도, 현상액등의 여러 차이로 인하여 색감 등에 변형이 가해지고 있고, 필름을 인화지에 인화하면서 부분 도지, 변형 등을 유발하여 최종 결과물을 얻는다. 물론 현상액의 경우도 농도와 시간과 온도를 가지고 콘트라스트도 조정하여 얻은 최종 결과물이 본인의 느낌과 맞지 않을 경우는 이 과정들을 수도 없이 반복해 왔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광학적, 화학적 성질의 특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사진이듯이, 사진이 우리 눈으로 보는것과 똑같이 재현시키는 실지로 어렵다. 사실에 가깝게 표현을 해야 하는데 렌즈의 특성별로 사뭇 다르기에 사실에 가깝게 표현해 내기 위한 과정들이 수동적 보완을 하여 최종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생각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정의 하신 부분에 대하여:
작가라면 대부분의 의도와 메시지등을 담고 있다. 그것이 풍경과 비구상 등의 회화적 성격을 담고 있더라도 작가의 의지와 메시지를 담는다면 그 또한 다큐멘터리의 범주에 속하는 것 아닌가?
다만, 저널리즘 사진의 경우에는 사실성에 기반하다 보니 현격한 차이를 유발시켜, 객관성을 훼손한다면 문제가 되겠다. 저널리즘 사진의 경우에는 팩트가 중심에 서야 되고 그 팩트에 변이가 생기거나 증폭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요인을 추가적으로 인입시키면 그것은 연출이지 팩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저널리즘의 사진에서는 후보정을 하는 범위가 국소적, 최소의 범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며, 이와는 달리 다큐멘터리(파인아트 포함)에는 작가의 의도를 표시할 수 있는 후보정은 필수 불가결이라는 생각이다.
2. (나의 경우) 사진을 찍고 난 다음에 후보정은 거의 다 하고 있다. (사진촬영시 Raw파일로 담고있습니다) 어도비사의 라이트룸이나 페이즈원의 캡쳐원을 사용한다. 라이트룸이라는 말이 암실인 다크룸에서 나온 브랜드임을 감안할 때 필름 작업시 암실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던 방법들이다.
노출 보정, 암부수정, 하이라이트부분 수정, 닷징, 콘트라스트 조정및 트리밍 등을 사용한다.
가끔은 왜곡된 면과 선을 맞추기 위하여 ‘회전’ 등을 사용한다.
어도비사의 포토샵의 경우에는 광고, 게시물, 유인물용등에 사용할 출력물을 보정할 때 사용한다. 광고, 게시물, 유인물 등에는 보다 임팩트 있게 사용하려면, 레이어 등을 사용하여 표현하고자 (혹은 제시하고자 하는 오브제) 하는 것을 집중화를 위하여 필터 등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레이어 및 필터 등을 사용해야 하는 항목에서는 포토샵을 사용한다.
3. ‘뽀샵질, 뽀샵’ 등이라 하면서 후보정을 부도덕화 혹은 저질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후보정은 아나로그든 디지털이든 거쳐야 하는 필수적 과정이며 작가의 의도 등을 반영해낼 수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암실에서 하는 과정은 당연시하면서 디지털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하는 작업을 저평가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
디지털프로그램으로 후보정하는 것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과거의 필름작업을 하던 분들이 디지털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모르는 (배워도 잘 이해를 못해 습득이 안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최종 산출물인 ‘사진’을 가지고 평가되어야지 과정이 평가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여기에서 저널리즘의 사진의 경우에는 예외라고 생각한다)
경향신문 사진기자 강윤중은 후보정에 대해 “사진 욕심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과한 후보정은 사진이 아니라 그래픽이다. 앵글을 방해하고 눈에 거슬리더라도 참을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한 것. 기술이 발달해 눈을 만족시키는 사진이 널려 있다보니 강박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수록 사진가 혹은 사진기자는 기다림과 발품에 더 큰 의미를 둬야하지 않을까, 하는 모범답안 같은 말씀을 드린다”라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길 원한 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후보정에 대해 “하고 싶은 데까지 한다. 하고 싶은 게 많지도 크지도 않다. 전혀 하지 않은 후보정 역시 제가 하고 싶은 데까지 한 후보정이다. ‘하고 싶은 데까지’가, ‘과도할 때까지’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금기를 교란하는 건 흥미롭지만, 과도함의 추구로 교란되는 금기란 재미없을 것 같다. 사람이건 사진이건 과도한 건 별로이다. 과한 것은 부족함보다 못할 때가 많다.”라고 했다.
글이 길어졌는데 마무리를 해야겠다.
2014년에 스티브 매커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의 판문점, 서울 동대문디지털플라자 촬영에 동행했었다. 그리고 그가 뭔가를 찍을 때 나는 같은 방향으로는 앵글을 잡지 않았다. 몇 십년 찍어온 매커리가 제 아무리 뛰어나도 바로 옆에 서있는 나와 다른 사진을 찍긴 힘든 일이다. 렌즈의 화각이 비슷한데다 같은 위치이며 스포츠의 현장처럼 순식간에 뭐가 튀어나오는 현장이 아니니 나의 말은 과장이나 허세가 아니다. 그 점을 아는 나로서는 사진가의 일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면서 매커리가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이 기사를 쓸 때는 스티브 매커리의 과도한 후보정에 경종을 울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사진계의 반응을 듣고 사진가들의 후보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종합하니 방향이 다소 바뀌었다.
1.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나의 기준으로는) 대단히 깊은 수준으로 후보정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도 후보정 좀 해야겠다. 평생 먼지 지우고 수평 잡고 (현장에서 내가 본 노출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했을 때에만) 레벨이나 커브를 만져서 노출을 잡아주는 것 외엔 뭘 건드려본 적이 없었다. 채도를 잡아서 색을 진하게 하거나 부드럽게 하거나 거칠게 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이제 실상을 알게 되었으니 후보정 함 해볼까한다. 물론 저널리즘 사진에 이런 기준을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 지우거나 없는 것 따붙이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2. 클론 스탬프 툴로 따서 붙이거나 이동시키거나 지우는 것에 대해선 (저널리즘이라면) 모두가 일치단결한 것처럼 하지 않는다고, 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하는 색온도, 채도, 노출 보정, 암부수정, 하이라이트부분 수정 등에 대해선 “해야 한다. 필수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색온도는 되고 노출보정은 안되고, 하이라이트를 부분으로 수정하는 것은 안되고 암부 수정은 되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세부규정을 할 순 없다. 그런데 색깔을 진하게 하는 것이 된다면, 부분 조정도 당연히 용인된다면 그게 클론 스탬프 툴과 대단히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색을 진하게 하면 디테일을 안보이게 할 수 있다. 물론 클론 스탬프로 사람을 지우는 것과 색을 진하게 해서 사람을 지우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결과물만 보면 뭐가 그리 다를 것인가? 저 어두운 숲 속에 표범 한 마리가 눈을 뜨고 있는데 명도를 내리면 (굳이 지우지 않아도) 그늘이라서 안보일 수도 있고 명도를 확 올리면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저널리즘 사진에 이런 기준을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3. 다큐멘터리사진의 정의에 대해서, 그리고 다큐멘터리사진과 저널리즘사진의 차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다음 기회에 이런 구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지을 수 있는 논의가 있어야겠다.
4. 스티브 매커리는 매체 소속의 사진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유명 매체에 사진이 많이 실렸다. 그 매체 중에는 뉴욕 타임즈 같은 전통적인 뉴스언론도 있지만 상업적 매체도 있다. 본인이 ‘비주얼 스토리텔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스티브 매커리를 ‘포토저널리스트’ 혹은 ‘다큐멘터리사진가’로 규정하고 떠밀어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토저널리스트이어야 하는 매커리는 아주 엄격한 후보정의 기준을 적용받아야하고 그렇지 않는 사진가인 ‘우리들’은 이것 저것 다 해도 되는 것 정도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후보정을 해야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5. 소설가 김훈씨는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일을 한 적이 있다. 2002년에 신문사 사회부의 말석에서 연필로 원고를 쓰고 있던 김훈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고 그가 썼던 기사도 기억이 난다. 검색해보다 재미있는 것을 찾았다. 2002년 11월에 한겨레 김훈 기자가 문화일보에서 평기자로 일하기로 결정된 도옥 김용옥을 인터뷰한 짧은 기사였다. 김훈 기자가 “어떤 기사를 구상하고 있는가?”라고 물었고 김용옥은 “나는 가장 소외받고 학대당하는 계층으로부터 이 세계의 권력을 장악한 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본질과 진실에 접근하려 한다”라고 답을 했다. 김훈 기자는 1년 가량 한겨레에서 일을 했고 김용옥 기자는 문화일보에서 1년을 채우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신문사에서 기사를 썼다. 원래 언론인 출신인 김훈 기자는 스트레이트 기사나 단신도 썼고 칼럼도 썼지만 어쨌든 언론의 문법에 맞는 기사를 썼다. 기자 경험이 없던 김용옥 기자의 글쓰기는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소설가이든 철학자이든 둘이 기사로 쓴 것은 어쨌든 기자적 글쓰기였다. 한국일보와 시사저널을 거쳐 한겨레신문사 기자를 끝으로 더 이상 김훈은 기자로 불리지 않는다. 아마 소설가 김훈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칼의 노래’가 역사적 사실을 허구적으로 구성했다고 김훈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현재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6. 이번 논란의 단초가 된 스티브 매커리의 이탈리아 사진전의 성격은 어땠는지가 꽤나 중요할 것 같다. 그런데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2012년에 한국에서 열렸던 매커리의 사진전 ‘빛과 어둠 사이’http://photovil.hani.co.kr/245652를 잘 기억하고 있으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임재천의 사진집 혹은 사진전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http://photovil.hani.co.kr/329063 강렬한 빛과 색채가 특징 중의 하나란 점에서 그렇다. 누가 더 뛰어난 사진가인가를 비교하자는 뜻 아니다.
7. 개인적인 경험 하나를 밝힌다. 5년 정도 전에 한 지역 시민문화단체의 요청을 받고 (후보정이 아닌) 사진강의를 한 적이 있다. 사진을 잘 찍는 법, 사진을 이해하는 법 등에 대해 두 시간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받았다. 왕왕 그렇듯 강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카메라나 렌즈와 관련된 질문에 아는 대로 답을 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어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데 참석자 중의 한 명이 포토숍을 이용한 후보정의 한 기법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기법이라 “잘 모르겠다. 나는 사진강의를 한 것이지 후보정 강의를 한게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참석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기법도 모르면서 무슨 사진강의를 한다고” 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후보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참석자는 후보정이 사진 실력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인데 나의 두 시간 강의중에서 후보정에 대해선 “먼지 지우고 수평 잡고, 노출을 실패했으면 현장에서 본 것처럼 살려 준다”라는 대목 빼곤 전무했으니 당신으로선 기가 막혔던 것이다. 이제 이해가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내가 아는 몇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포토숍을 할 줄 몰라서” 찍은 사진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일출, 일몰, 산 사진등을 보여준다. 물론 카메라에 보정 기능이 이미 탑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8. 진짜 결론: 그대가 포토저널리스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클론스탬프 툴 같은 것으로 없는 것을 붙이거나 있는 것을 지우는 기법만 아니라면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후보정하시라. 후보정하는 것이 필수이며 의무이며 예의이며 실력이다.
그대가 포토저널리스트라면, 역시 클론 스탬프 툴 같은 것으로 없는 것을 붙이거나 있는 것을 지우는 기법만 아니라면 재주껏 후보정을 해서 독자들의 미감을 만족시키도록 하라.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