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균 1주기 유고 사진집과 사진전 '노마드'
고 권태균(1955-2015) 사진가의 첫 사진집이 1주기를 맞아 유작 사진집으로 나왔다. 제목은 권태균이 평생 가져가겠다고 했던 주제 <노마드>. 때를 맞춰 서울 강남역 1번 출구 옆에 있는 하늘 아래 첫 갤러리 사진 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 22’에서 같은 이름의 사진전도 시작되었다. 2월 20일까지.
이 사진집은 눈빛출판사에서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가로세로 29센티미터의 정방형 크기에 248쪽에 달하며 모두 110점의 사진이 들어있다. 양장본으로 사진집 가격이 7만 원이다.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에서 할인 판매한다.
1980년대 한국, 특히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촬영했는데 대부분 사람이 들어있는 풍경이다. 거리사진이 많고 간혹 다방이나 대폿집 같은 곳도 있는 것으로 봐서 쉼 없이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찍었고 지친 다리를 잠시 쉬게 할 목적으로 들렀던 다방 같은 곳에서도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리사진(Street Photography)의 전형적인 방식이 걷다가 찍고 또 걷는 것인데 그동안 사진마을에 소개했던 거리사진들을 쭉 소환해보기로 한다. 1980년대라면 얼마 전에 나온 눈빛사진가선 20번째 ‘기억의 풍경(김정일사진집)’이 있는데 이는 주로 서울의 풍경 중심이었다. 박신흥의 ‘예스터데이’(사진 읽다가 지붕 위로 올라간 우리)는 1970년대의 거리풍경인데 꼬박꼬박 사람이 들어 있었다. 더 올라가면 한영수의 ‘꿈결 같은 시절’로 이어진다. 1950년~60년대의 거리풍경이다.
훌쩍 건너뛰어 현재로 돌아오면 제주도에 이어 강원도에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임재천으로 이어진다. 21세기 한국의 거리풍경에도 사람이 있고 배경 혹은 전경으로 풍경이 있다.
권태균의 <노마드>를 보고 또 보면서 “눈빛출판사 이규상 사장이 엄청나게 공을 많이 들였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두 번째로는 “권태균은 어떤 사진가였고 어떤 사진을 찍었는가…….”로 귀결되었다. 사진계의 모임에 잘 끼지 않다 보니 권태균을 만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2014년 대구사진비엔날레 개막 뒤풀이에서 이 자리 저자리 옮겨가면서 술잔을 넘기다가 조우했다. 평이 좋았던지라 예를 갖춰 인사를 했고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사람이었다. 고리타분하게도 나는 ‘신언서판’의 기준을 아직 고집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 본 적은 없으나 누구든 사람을 새로 만나면 외모와 말씀과 글과 판단력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본다. 외모란 것은 미모와 다른 뜻이다. 옛 말씀에서 나온 ‘신언서판’도 단순한 미모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키가 크든 작든 덩치가 있든 없든 이런 것보다는 걸음걸이나 몸 매무새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언’은 말 그대로 말이긴 하나 이 역시 언변이 좋거나 나쁘거나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가 좋든 나쁘든 그 사람의 언행 전반을 보는 것이다. 굳이 내 관점에서 따진다면 말이 많은지, 적은지를 본다. 자기 말을 하는지 남의 말을 하는지 본다. 좋은 말을 하는지 나쁜 말을 하는지 본다. 어제의 말을 하는지 내일의 말을 하는지 본다. 나의 결론은 말이 많고 자기 말이 많고 나쁜 말이 많고 어제의 말이 많은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다는 것이다. ‘서’는 과연 옛날 선비의 기준이니 글씨나 글의 내용, 지금으로 치면 필력, 문장력 등에 해당할 것이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서’가 통할 수 있으나 ‘사(寫)’로 대치하는 것이 더 낫겠다. 사진도 글과 같아서 글씨체가 반듯한 것처럼 사진의 외적인 형태도 반듯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더 중요한 것은 사진의 내용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보면서 판단한다. ‘판’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가장 중요하려니 생각한다. 판은 판단인데 세상에 대한 판단이며 본인에 대한 판단이다. 본인과 남과 세상사의 무게를 얼마나 정확히 재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겉이 번지르르하고 언변이 좋고 사진을 잘 찍어도 세상일의 경중을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른다면 헛똑똑이다.
단 한 번 만났지만 그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권태균과 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술자리 수다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반듯했고 온기 있는 대화를 했으며 그와 내가 있는 (뒤풀이) 자리의 무게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권태균 사진가의 사진을 많이 본 적이 없다가 오늘 <노마드>를 탐독하니 이제 그의 사진을 알게 되었다.
반듯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겠다. 1980년대 한국인들, 그것도 우리 곁에 있던 한국인들을 찍었다. 주로 남쪽 지역의 시골이 많으니 촌부, 촌노, 학생, 청년들이 주인공이다. 그 중엔 작은 형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졸업식장의 아버지도 있다. 권태균의 가족이나 친척도 있지만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들도 모두 누군가의 형이거나 아버지거나 아들이거나 동생이거나 최소한 우리 이웃이다. 어리거나 나이가 있거나 1980년대를 살았다면 권태균의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자화상이다.
» 서울 1982
» 경남 의령 1980
» 김해 명지 1982
» 경남 김해 1982
» 경북 상주 1983
» 밀양 수산 1982
» 경북 상주 1983
» 경남 의령 1983
» 서울 1983
사진가의 경우 신언서판 중에서 ‘사’가 가장 중요하니 이제 <노마드>를 제대로 뜯어보자.
어제 한영수 선생의 따님인 한선정대표(한영수문화재단)와 잠깐 커피를 마셨다. 1월 19일부터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리는 한영수사진전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다가 한영수선생의 사진스타일에 대해 한 마디 나왔다. 두 권의 사진집 ‘모던타임즈’와 ‘꿈결 같은 시절’에 나온 인물 중에서 사진가와 시선이 마주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을 주로 다룬 ‘꿈결 같은 시절’에 등장한 아이들은 카메라를 쳐다보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카메라에 대단한 관심을 표현한다. 그 외의 경우, 그러니까 어른들이라면 카메라를 보는 경우가 없다. 기록이나 관찰을 한다면 사진 속 인물이 카메라를 발견해선 곤란하다. 카메라란 물건을 보는 순간 어떤 식이든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불편할 수도 있고 어색할 수도 있고 반색할 수도 있다. 그 반응은 시대의 반응이 아니고 사진가의, 사진가를 위한, 사진가에 의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권태균 사진집 <노마드>의 표지부터 그러하다.
110장의 사진들을 여러 번 봤다. 연거푸 보고, 일정 시간 뒤에 다시 보고, 끊어서 보고 이어서 봤다. 덮었다가 문득 다시 펼쳐보고, 한 페이지에서 1분 이상 머물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전반적인 권태균의 사진세계를 읽을 순 있었는데 책의 구성이 난삽했다.
카메라를 째려보는 사진은 비록 권태균 사진가 본인이 “거부감이 그리 컸던 것 같지는 않다”라고 했지만 불편하다. 1980년대 한국인의 초상은 사진가를 위한 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한국인의 초상은 시대에 반응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상이어야 한다. 카메라에 대해 반응하는 표정과 시대에 대해 반응하는 표정은 다르다.
사진집을 전반적으로 보면 한영수처럼 박신흥처럼, 그리고 임재천이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의 스냅사진들이 더 많고 능숙하다. 굳이 카메라를 보는 사진들을 틈틈이 포함해 권태균의 스타일을 그리 만들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
권태균의 사진을 제대로 보게 된 <노마드> 사진집이 반갑다. 내가 이 정도였으면 일반 사진 독자들은 권태균의 사진을 얼마나 볼 수 있었겠는가? 1980년은 이미 브레송이 사진을 접은 다음이다. 사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브레송을 생각하면 그 후에 사진을 찍는 ‘우리’는 뭘, 왜 찍고 있는가.
그에 대해 답을 한다면 이렇다. 브레송은 20세기 초반부터 후반까지 그가 머물렀던 세상을 그의 눈으로 바라봤고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고. 한국에 이 정도 되는 사진가가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권태균은 그의 눈으로 바라본 1980년대를 이번 사진집과 사진전 <노마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중간에 눈빛출판사가 있고 도착점에 우리가 있고 출발점에 사진가가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