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1> 동화구연 동호회 ‘아름다운 실버’
손 많이 움직여야 하니 좋고
아이들 기 받아서 좋고
애인 만나러 가는 날처럼 설레
교구 만들며 모여 앉아
가위질·바느질하고
수다도 떨며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요양원 찾아가
어른들 위한 동화 읽기도
청일점 할아버지
눈썰미 좋아 바느질도 선수
손주보다 며느리가 더 좋아해
» 11월 18일 금천노인종합복지관에 모인 '아름다운 실버'회원들
지난 11월 18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3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서 열리는 동화구연 현장을 찾아갔다. 이날은 관내 ‘꾸러기 어린이집’에서 온 25명의 꾸러기들을 위해 금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온 김현진(75)할머니가 강사 황영이(68)씨의 도움을 받아 ‘열매들의 가을축제’. ‘개집을 팝니다’ 두 가지 동화를 여러 가지 그림과 마술을 곁들여 10여 분간 진행했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다함께 율동으로 하는 것으로 이날의 동화구연은 끝이 났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지후(5살)는 “재미있었다”고 똑부러지게 말했으며 재훈(7살)이는 이날 김현진할머니가 들려준 ‘열매들의 가을이야기’중에서 “참깨가 1등을 한 것이 참 좋았다. 여러 채소들이 돌아가면서 1등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인어공주, 무지개물고기 등도 재밌었고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최고로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황영이씨를 따라 ‘청개구리 작은 도서관’을 나와 20여 분 거리에 있는 금천구 시흥대로길 금천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했다. 김현진할머니가 속해있는 동화구연 동호회인 ‘아름다운 실버’ 회원 20명이 동화구연을 배우는 날이다. ‘아름다운 실버’는 2011년에 결성이 된 모임으로 주 1회 복지관에 모여서 동화구연을 위한 교구제작, 교수법 익히기를 하고 있다. 희망자가 많아 먼저 배우기 시작한 A반과 조금 진도가 늦은 B반으로 나눈 ‘아름다운 실버’는 금천구 지역 내의 데이케어센터, 어린이 도서관,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동화구연 봉사활동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기량을 닦은 회원들은 최소 한 달에 한 차례씩 동화구연을 하러 간다.
이날은 동화 ‘무지개물고기’에 필요한 교구를 만들었다. 등장하는 주인공은 무지개물고기, 꼬마물고기, 친구물고기 등 물고기 세 마리, 문어 한 마리, 불가사리 한 마리 등이다. 황영이강사가 나눠준 도안을 보고 물고기 패턴을 오리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부직포에다 물고기 모양을 옮긴다. 동화제목이 ‘무지개물고기’이니 만큼 부직포도 여러 색깔 별로 필요했다. 문어할머니는 보라색, 불가사리는 빨간색. 무기재 물고기의 비늘은 무지개색이다. 황영이강사가 회원들에게 수시로 제작에 관한 조언을 준다.
“무지개 물고기 몸통엔 솜을 넣어야 해요. 바늘과 실 가져오시라고 카톡으로 보냈는데 보셨죠?” 한 회원이 “문자 안 왔어요”라고 휴대폰을 보여준다. 평균연령이 일흔이 넘는 회원들이지만 SNS 소통은 기본이다. “어머 할머니 카톡에 문제가 있나 봐요…. 어 정말 그 문자만 없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지역에 있을 때 단톡이 갔을까?” “다른 건 다 들어왔는데….” “그러게요” 가위질하랴, 문자 확인하랴, 물고기 패턴과 비교해보랴 분주하게 손과 눈길이 오고 가면서도 방안에선 수다와 대화가 끊임없이 돌고 돈다.
“어머…. 낙엽 떨어지는 거 봐봐!” 창 밖으로 은행잎이 바람결에 날려 떨어지자 창 가에 있던 할머니들이 바늘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시선만 창 밖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을 지른다. “낙엽 참 이쁘다. 그치 그치” 모두들 잠깐 여학생시절로 돌아갔다. 여학생시절로 갔다 오는 게 아니라 동화구연 교구를 만드는 두 시간 동안 이 할머니들은 그저 여학생모드다. 곁에 있는 동무들과 연방 수다를 떨면서 손놀림은 빈틈이 없다. 황영이강사가 가장 바쁘다.
“꼬리엔 솜이 안 들어가요. 물고기 눈 크기가 작다고요? 더 큰 것은 수량이 안 맞아서 못 샀고요. 문방구에 고무줄 파는 줄 몰랐네요…. 하하. 자. 잠깐 손을 내려놓고 대본 연습을 해볼까요?”
소녀 같은 할머니들의 떼창이 시작되었다.
“... 산호초 뒤 기~픈 동굴에 계신 문어할머니를 찾아가 보렴. 문어할머니는 널 꼭 도와주실 거야….” “네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단다. 파도가 네 얘길 해주더구나! 너의 그 예쁜 무지개 비늘을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주어 보렴…. 그럼”
황영이 강사가 잠깐 낭독을 중단시켰다.
“문어할머니 목소리는 진짜 할머니 목소리가 나와야 해요. 다시 해 볼까요?”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진짜 할머니’처럼 소리를 내며 합창하듯 한다. » 강사 황영이씨
“네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단다…….”
금천복지관 ‘아름다운 실버’팀의 중심은 강사를 맡은 황영이(65)씨다. 황씨는 동일여중고에서 가정교사를 하다가 2000년에 명예퇴직했다. 5년간 같은 학교에서 강사로 일했고 그 후 5년간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색동회 출신 강사로부터 동화구연을 배웠고 동국대평생교육원에서 자격증을 취득, 대림대학교에서 동화구연 교구 만드는 것을 배웠다. 2010년에 금천노인복지관에 왔더니 할머니들이 동화구연을 배우고 있었는데 몇 달 하고 나면 뿔뿔이 흩어질 것 같아서 모임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게 ‘아름다운 실버’다. 황영이 강사에게 물었다.
-동화구연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입으로 연기를 하는 거다. 동화 속에 나오는 호랑이, 사자, 물고기 등의 캐릭터를 말로 재현해내는 것. 교구의 비중도 아주 높다. 시청각교재를 활용해야 아이들의 이해력, 집중력이 높아진다. 나는 교구 재료를 재활용하려고 애쓰는 편이라서 우유곽, 세탁소 옷걸이, 종이상자 등도 적극 활용한다. 시댁이 함경도 쪽인데 내 별명 중에 ‘함경도 짠순이’도 있다.”
-어디서 배울 수 있는가? 뭐가 중요한가? 나이가 많아도 상관이 없는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복지관을 찾아가라. 기초강의를 듣고 차근차근 시작한다. 4개월 정도 하면 3급 자격증이 나오는데 그 정도면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할머니들의 장점이 있다. 그저 아이들은 꼭꼭 안아주고 이야기 잘 들어주고 그러면 되는 거다. 동화구연을 처음 하다 보면 아이들 안아주다가 시간이 다 갈 수도 있다. 애들은 할머니를 잘 따른다. (내가) 딸이 둘인데 미국에 사는 큰딸 보러 한 번 갔었다. 현지에서 손주가 다니는 유치원에 가서 동화구연을 한번 해봤다. ‘두더지 신붓감’이란 것을 한국어로 했는데 놀랍게도 미국 아이들에게도 통하더라. 역시 그림으로 된 교구가 있으니 이해가 되는 것이지.”
-배우고 나서 어린이집이나 방과 후 교실 같은 곳의 실제 현장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복지관 차원에서 동화구연할 곳을 찾아 나서서 연결해주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하고 싶다면 가까운데서 시작해라. 나도 손녀 데리고 놀이터 가서 아이들 한둘 데리고 즉석에서 이야길 들려주며 시작했다. 손녀 다니는 유치원부터 가서 실습도 할 겸 즉흥 공연도 해보고. 장소 불문하고 주변에서 해보면 되는 거다. 연습하면 실전으로 연결된다. 동네 놀이터에서 한 두 명 데리고 할 수도 있지. 그나저나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거 없으면 안 된다.”
-동화구연을 배우는 과정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있나?
“교구의 중요성을 잊어선 안 되니 그거부터 말하자. 오리기를 해야 하니 가위질은 기본이다. 부직포나 종이에 그려야 하니 재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홈질, 블랭킷스티치, 박음질 등 여러 가지 바느질도 해야 한다. 다음 과정은 본드나 글루건으로 붙이는 작업. 구슬 달기도 포함되어있다. 종이접기도 필수적인 준비 과정이지. 이렇게 교구를 만들고 나면 본격적인 구연 연습이 필요하다. 대본을 외워야 한다. 아이들 앞이지만 긴장하면 늘 실수할 수 있다. 달달 외운다. 손에 교구를 들고 동작을 하는 것을 ‘손유희’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핵심과정이다. 10분 안쪽이지만 잠깐의 방심 없이 손유희로 아이들 시선을 잡기 위해선 대사를 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손이 움직여야 한다. 노래실력도 좋을수록 좋다. 시작과 마무리는 항상 손유희와 함께한다. 춤도 춰야 한다. 잠깐이라도 아이들이 산만해지는 순간이 오면 다 같이 할 수 있는 율동 동작이 필요하다. 즉석에서 전체가 벌떡 일어나 노래하면서 율동 하면 금세 집중하게 된다. 그 외에도 본인들의 특기를 동화구연에 녹여낼 수 있다. 우리 동호회의 허추자(75)할머니는 우크렐라연주를 잘하시고 김현진(75)할머니는 마술을 배워 동화구연할 때 곁들인다. 아이들이 빠져들게 하는데 그만이더라. 그 외 동화의 내용을 위한 공부도 필요하다. 나만 해도 옛날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 이항복, 권율장군 같은 역사 속 인물에 대해 다시 찾아보곤 한다. 남편이 보더니 ‘학교 때(교사생활)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농반진반을 하더라.”
회원들 중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정헌순(80)씨는 “손을 많이 움직여야하니 좋고 (동화구연할 때) 아이들의 기를 받아서 좋아요. 아이들 앞에서 구연을 하는 날이면 애인 만나러 가는 날처럼 단장을 하고 나선다니까요. 즐거워요”라고 뺨에 홍조를 띠었다.
20여 명 할머니들 사이에서 유일한 할아버지 회원 이강택(75)씨가 바느질에 정신이 없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생태텃밭 강사로도 일하는 이씨는 “동화구연을 한 것은 5년 정도 되었다. 언제부터 했느냐고? 하게 된 계기? 하하하…. 내가 공직생활만 쭉 했다. 서울시청에서 35년 정도 행정직으로 근무했는데 퇴직하고 나서 시골로 가고 싶었다. 귀농하고 싶었던거지. 그런데 집사람이 반대하는 바람에 못 가게 되었다. 집사람도 시골 출신이라 다시 시골로 가는 게 싫었던 게지…. 그래 싫다는데 어쩌겠어. 궁리하다가 도시에서 농업 하는 길을 찾게 되었고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배우게 되었다. 텃밭강사로 일하다 보니 아이들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동화를 같이 배워 접목시키면 좋겠더군. 그래서 둘 다 하게 되었어. 유치원에서 상자텃밭에다 채소 심고 거름 주고 시기별로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에게 텃밭을 가르칠 때 동화가 굉장히 유용하거든. ‘씨앗들의 친구’ 같은 동화는 지렁이가 있어야 고구마가 잘 자란다는 내용이야. 게다가 텃밭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강강술래’ 같은 놀이를 하면 아이들이 좋아해”
-할아버지 회원은 혼자이신데……. 친구분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다른 남자들이) 이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어. 나 같은 할아버지들에게 딱 좋은 일이야. 시간 보내기도 좋고…. 동화 외우다 보면 머리가 좋아져요. 다른 책은 몇 십번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이건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하니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면 두 세 번 만에 외우게 되더라고 치매 예방에 정말 좋지. 친구들이 나보고 특이하다라곤 하지. 처음에 남자들이 너덧 명 같이 시작했었어. 그런데 다 떨어져 나가고 나 혼자 남은 거야. (다른 할아버지들이) 선망의 눈으로 봐요. 대견하다고 해. 동화구연……. 아무나 하는 것 같지만 공을 많이 들여야 해.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으니….”
한 눈에 봐도 이강택씨의 바느질 솜씨는 할머니들 못지 않다. 주변에서 다른 할머니들도 “할아버지가 바느질 같은 것은 우리보다 더 잘해 손이 빠르고 눈썰미가 좋으니 우리가 못 따라가. 선수야 선수”라고 거들었다.
-집에서 식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요?
“처음에 집사람이 ‘뭐 그런데 시간을 보내는지….’ 하다가 이젠 이해하고 있어. 우리 같은 노인들이 이 시간에 다른 뭘 하겠어? 그런데 가만 보니 동화구연이 썩 괜찮거든. 명절 때 손주들 만나면 호랑이 모형, 물고기 모형 같은 것을 준비해서 동화구연을 해준다. 손주들이 좋아하냐고? 며느리들이 더 좋아해. ‘우리 시아버님 최고’라고. 하하하.”
-시골 가는 계획은 어떻게 되었나요?
“에이. 이제 됐어. 도시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만족하지. 시골 가는 꿈? 꿈이란 게 꿈을 꿀 수만 있어도 그걸로 좋아.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래도 몰라. 두고 봐야지. 하하”
가장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는 안경애(65)씨는 2013년과 2014년에 탑동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책엄마’를 했는데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동화구연, 전래놀이 등을 배우게 되었고 지금은 금천노인복지관에서 동화구연을 배우면서 ‘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한 달에 한 번 동화구연이나 전래놀이를 하고 있고 백상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2~3살 짜리 아이들과 전래놀이도 하고 있다. 안씨는 “동화구연을 준비하다가 여러 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집에 왜 왔니’ 같은 전래놀이를 곁들이면 활동성이 있어 좋고 아이들이 협동심을 배우는데도 제격이다. 이제 한 3~4주 배웠는데 딱히 까다로운 것은 없으나 가위질이 느려서 교구 만드는 것은 시간이 모자라면 집에 가져가 만들어오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 손자 손녀들 데리고 먼저 연습 삼아 해봤다. 동화구연……. 이거 옛날에 할머니들이 집에서 다 하던 거 아닌가. 물론 나는 우리 아들에겐 좀 다르게 했다. 집에 그냥 위인전집, 세계명작전집 꽂아놓고 ‘읽어’라고 했지…. (웃음) 어쨌든 지금 마흔두 살이 된 우리 아들은 그때부터 책 읽는 게 습관이 되어 요즘도 책을 끼고 한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읽기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병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를 한다. 노인들이니 내 또래도 있지만 더 연세 드신 분도 있지. 몸과 마음이 불편하신 분들이야. 처음엔 거북하다고 하시지 ‘내가 뭐 애들도 아닌데 동화책을….’ 그러다가 막상 읽어주기 시작하면 좋아라 하신다. 최근에 읽어준 것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이 인기있었다. 병아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장닭으로 자랐다. 그리고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수탉이 되어서 자랑하고 다녔다. 어느날 더 힘이 센 수탉이 나타났고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풀이 꺾인 수탉은 ‘동네에서 술을 가장 잘 마시는 수탉’이 되었다. 암탉이 수탉을 데리고 다니면서 손자 손녀 병아리들을 보여주며 ‘당신이 그동안 아이들을 잘 키웠으니 여전히 힘이 세고 행복한 수탉이다…….’ 그리고 환갑잔치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우리 인생과 같은 이야기다. 이 동화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어른들도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라고 이야기 했다.
» 지난 18일 서울 금천구 독산3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 모인 ‘꾸러기 어린이집’ 원아들이 동화구연을 지켜보던 중 손동작으로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떠들썩하게 대본 연습을 하고 난 할머니들은 다시 교구 제작에 몰입했다. 여기저기서 다시 작업과 관련된 조언과 수다가 조화를 이루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각선으로 자르면 재료를 최대한 절약해야죠.
푸른색이 없어...
이건 누구거지?
그러니까 없어? 거기 있는거 주면 되지 하하?
물고기눈 나눠 드립니다. 이거 반짝이도 나눠 드립니다….
형님 이거……. 비늘도 하고 우선 불가사리부터 하세요.
이 빨간 거는…. 필요한 만큼 하세요.
이렇게 자른 거거든 형님! 이렇게 잘랐더니 물고기가 됐어. 허허허 » 빠른 손유희를 보여주는 김현진씨 (셔터속도 1/6초, 플래시 촬영)
아니 아니! 만든 다음에 비늘 붙여야. 나중에……. 먼저 물고기가 완성된 다음에.
다 나눠 드렸어요…. 가니까 배추가 너무 싸더라고.
하하 원시야 근시야?? 백내장 수술할 때…. 하하하 들켰다…. 이거 누구 눈이야. 큰 거 주세요.
그렇게 두들겨 주시고, 빨주노초파남보. 이것도 반씩? 그건 1인당 하나야. 언니야…. 이거야 아냐 이거야.”
그런 와중에 김순덕(68)할머니가 잠깐 시범을 보이겠다며 손동작과 함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가~자 가자 동화나라로, 나랑 너랑 웃으며... 이게 다 손유희다. 말하면서 손유희를 동시에 해야 한다. 손유희가 큰 동화는, 비교적 큰 동작, 예를 들어 ‘예쁘다’ 할 때 이렇게 크게……. 손유희는 언어와 몸이 따라가는 것, 마무리할 때도 들어가야해. 손유희도 언어라고 할 수 있어. 엄지야 엄지야 이리와 우리 같이 놀자. 뱅글뱅글...”
황영이 강사가 곁에 있던 허추자 할머니에게 시범을 보이라고 하자 벌떡 일어서서 나왔다.
“다들 실전에 강해, 지금 바빠 죽겠는데…. 하하 우리 선생님 잘 만났어. 개구리 한 마리 해볼까?”라고 하자 주위에서 “해봐요. 해봐. 야단났네!”라며 열띤 호응이 쏟아졌다.
“주목!! 개구리 한 마리 장독 위에서 폴짝 폴짝 뛰다가…. 머리를 다쳐서 잉잉 울다가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 장독 위에서...
이제 조심하거라……. 네 해야지.”
모든 회원들이 일제히 “네…. ” 하고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게 보기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허추자 할머니는 사진 찍는 기자를 쳐다보더니 할머니 목소리로 쫙 깔면서 동화구연을 하듯 말했다.
“누구야~ 기자라고? 왜 왔어 오늘?”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국에서 동화구연의 기원은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과 방정환이 1923년 만든 색동회에서 찾을 수 있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색동회 회원 모두가 동화구연가들이었고 그중에서도 방정환은 제1인자였다. 소파는 1922년 이래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화구연회를 열었다.
1976년 ‘제1회 어머니 동화구연대회’가 열리고 1978년에는 ‘제1회 어린이 동화구연대회’ 등이 개최되었다. 이전에는 젊은 어머니들이 자녀를 위해 동화구연을 배우고자 했다. 이제는 임신부들이 뱃속 아이의 태교를 위해, 노년들은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동화구연을 배우고 있다. 아버지, 시니어, 학부모, 교육자 등 취미부터 전문가 수준까지 스펙트럼도 넓다. 노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년에 접어든 세대들에게 동화구연의 인기가 한층 높아졌다.
핵가족시대가 되면서 조부모나 부모가 들려주는 정감 어린 옛날이야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10여 년 전부터 공공기관에서 은퇴한 어르신들이 일정 기간 동화구연 교육을 수료한 뒤 어린이 교육기관이나 복지관에서 동화구연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색동회에서는 동화구연 대회 본선에서 입상하고 2년간의 봉사기간을 거치면 동화구연가 등단 증서를 준다. 또 ‘동화구연 지도자’ 검증제도의 하나인 자격검정시험이 2011년 6월1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3급·2급·1급의 동화구연 지도자(민간자격증)와 동화구연가들은 동화구연을 교육하고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동화구연의 기초 과정부터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은 색동회 아카데미, 대학 부설 평생교육기관 또는 지역 주민센터, 민간 평생교육기관(문화센터), 공공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받을 수 있다.
유애순/색동회 동화구연가·유애순말글표현연구소장
글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