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인 하나’로 나만의 목소리 읽게

곽윤섭 2010. 04. 29
조회수 4508 추천수 0
사진이 이야기 들려주는 포토스토리 문법
 
img_06.jpg

 
포토저널리즘의 역사에선 1936년 사진 화보 잡지 <라이프>가 창간된 이래 사진 중심 잡지들이 쏟아졌던 시기를 황금기라 부른다. 물론 <라이프>가 어느날 천지개벽하듯 탄생한 것은 아니다. 사진발명 초기부터 사진은 기록이란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미 19세기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최초의 종군사진가라고 부를 수 있는 매튜 브래디가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가장 보편적인 시각매체였던 회화는 기록이란 측면에서 사진과 경쟁이 되질 못했다.
 
 


 
 
현장 고발 등으로 황금기

 
이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동안 사진은 더욱 무대를 넓혀나갔다. 뉴욕 빈민가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집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사나>를 펴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빈민정책 변화에 기여한 제이콥 리스와 아동노동의 실태를 사진으로 알려 아동보호에 대한 법을 새로 제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 루이스 하인 등의 활약에서 보듯 사진은 ‘포토캠페인’의 임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진의 영향력에 눈을 뜬 대중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라이프>와 <루크>같은 잡지들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라이프>는 글이 아닌 사진을 중심으로 만든 화보잡지였던 만큼 사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사진의 게재 방식에도 획기적인 변화의 틀을 잡아나간 계기가 되었다. <라이프>의 창간과 더불어 보는 사진에서 읽는 사진의 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엮음사진에 의한 포토스토리(혹은 포토에세이)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스트들이 모두 <라이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라이프>를 들락거린 역대 사진가들 중에서도 특히 포토스토리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사진가는 유진 스미스(1918~1978)다. 그는 시골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시골의사>를 비롯해 <스페인 마을>, <슈바이처 박사> 등 불멸의 엮음사진을 개척해나가면서 포토스토리라는 장르를 굳혀나간 인물이다. 이후 1970년대에 텔레비전 시대가 오면서 화보잡지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포토저널리즘의 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게 되었다.
 
디지털시대로 부활
 
일부 소수만이 사진을 찍던 과거와는 다르게 디지털시대가 열리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1세기에 다시 사진이 사회문화현상 차원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넘쳐나고 있다. 카메라와 렌즈가 좋고 사진찍기 좋은 장소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대로 전파되고 있어서 누가 찍든 비슷해 보이는 사진이 속속 등장하게 되자 잘 찍은 사진, 좋은 사진에 대한 정의 자체가 흔들리는 지경에까지 온 것이다.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제한적이며 개인적 특성을 담아내기도 어려워진 것 또한 역설적으로 디지털시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시 포토스토리 같은 엮음사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포토스토리의 개념은 매우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단순한 접근법에 따르면 한 장이 아닌 여러 장의 사진을 모두 포토스토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한 장짜리 사진은 포토에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과거 <라이프> 시대에서 통용되던 엮음사진의 방식을 이 시대에서도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 뉴스에 사진을 공급하는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닌 생활사진가들에겐 일상생활과 주변을 기록하는 데 적절한 형식이 있어야 하겠다.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그의 딸 윤미가 태어날 때부터 시집가는 날까지를 기록한 가족사진집이지만 훌륭한 포토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엮음사진도 가지가지
 
엮음사진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화보:
예를 들자면 봄이 와서 들판에 핀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꽃들을 여러 장 모아서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린다면 화보라 부를 수 있다. 꽃 사진의 나열은 예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기엔 부족할 것이다. 포토스토리라고 볼 순 없다.


2. 시리즈 사진(photo sequence):
연속적인 상황에 대한 사진들. 예를 들자면 매일, 매주  혹은 정기적이든 부정기적이든 간격을 두고 하나의 상황이나 대상을 관찰해나가는 기록의 연속이다. 굳이 결말을 보여주지 않아도 좋고 진행형 자체로 완결지어도 좋다. 몇 달씩 한가지 사안에 매달리기 어려운 생활사진가들에겐 이런 방식도 유용하다.


3. 포토스토리:
포토스토리는 테마가 있고 이야기 전개가 있으며 갈등구조, 문제 해결과 결말이 모두 사진으로 표현될 수 있는 여러 장 짜리 사진을 말한다.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의 구조와 같다. 사람이든 무생물이든 주인공을 두고 풀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 포토에세이:
 에세이는 수필이다. 소설과 달리 수필은 특정한 결말이 없어도 좋다. 딱히 갈등이나 위기가 없이 주절주절 이어나간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풀어나간다는 점에선 포토에세이도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며 스토리와 유사하다. 
 
어떤 방식을 따르든 사진가의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사진을 생산한다는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진가는 여러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고유한 목소리를 보여줘야 한다. 사진에서 목소리는 앵글, 관점, 접근방법 등으로 구현된다. 엮음사진에선 낱낱의 사진이 독자적으로 기능해서는 안된다. 물론 한 장씩의 사진이 모두 완성도가 높다면 더 좋긴 하겠지만 하나만 떼어 놓고 볼 때 멋진 사진이 아니어도 좋다. 순서에 맞춰 여러 장을 늘어놓았을 때 유기적으로 흐름을 타야 하며 사진을 읽을 수 있게 구성해야 한다. 잘 찍은 사진 열 장의 나열과 포토스토리는 다르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중요하며 사진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취재

‘여럿인 하나’로 나만의 목소리 읽게

  • 곽윤섭
  • | 2010.04.29

사진이 이야기 들려주는 포토스토리 문법 포토저널리즘의 역사에선 1936년 사진 화보 잡지 <라이프>가 창간된 이래 사진 중심 잡지들이 쏟아졌던 시...

취재

렌즈와 마음, 씨줄과 날줄로 짜 ‘찰칵’

  • 곽윤섭
  • | 2010.04.29

[하니포토워크숍] 최우수작 류정호 씨, 우수작 박언형 이강훈 씨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제 2기 ‘사진가 등용 하니포토워크숍’이 지난 3월18~...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또하나의 입

  • 곽윤섭
  • | 2010.04.22

<제9강> 손 손뼉, 손가락질, 종주먹, 손깍지, 손길… 어윗의 ‘Handbook’, 손 쓰임새 ‘백과사전’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는 것...

취재

신문에선 볼 수 없는 ‘눈시린’ 인생의 길

  • 곽윤섭
  • | 2010.04.20

‘취만부동’ 현역기자 4명 사진전 30일까지 경력을 합하면 100년에 달하는 신문사 현역 사진기자 네 명이 함께 사진전시를 연다. 80년대에 언론 현...

강의실

마음의 눈썰미로 ‘발견 그 너머’를 보다

  • 곽윤섭
  • | 2010.04.16

[5~8강 클리닉] ▣ 5강 문을 찍어라 의미까지 읽을 수 있는 사진 많아 5강은 문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문만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문의 의미...

취재

미네르바 부엉이처럼 어둠이 사진 지혜 비결

  • 곽윤섭
  • | 2010.04.13

스티브 매커리 사진전 ‘진실의 순간’ 풍경엔 사람 꼭 넣어 환경과 인간 공존 메시지  대비·암시·생략 등 극대화 ‘생활사진가 교과서’   S...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명랑·원만하며 희망적인 동그라미 두 개

  • 곽윤섭
  • | 2010.04.09

<제8강> 자전거 실용과 생활, 때론 여유와 낭만으로 느릿느릿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빠졌더라면 밋밋 아름다운 가로수가 양쪽으로 쭉 이어...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꿈, 희망, 미래, 도전…, 위로 더 위로

  • 곽윤섭
  • | 2010.04.02

<제7강> 오름 에스컬레이트도 아파트도 풍선도 욕망도 쑥쑥 오르면 내려 오는 게 인생…눈 낮추면 더 도약 백화점이나 호텔 같은 건물의 외벽엔 바...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세상 모든 것의 또 하나의 이름 ‘꼴’

  • 곽윤섭
  • | 2010.03.25

<제6강> 얼굴 사람도 동물도 차도 제각각…세월 따라 변모 잘 드러나지 않는 뒷태에 되레 ‘생얼’ 없을까 사람의 머릿부분에서 앞면을 얼굴이라고 ...

취재

양심 버리는 곳

  • 곽윤섭
  • | 2010.03.24

점심을 먹고 서부지원 뒷길을 걸어나오다가 담장에 꽃을 걸어둔 것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꽃도 한 송이가 아니라 화환처럼 장식을 ...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들이거나 내치는 소통 여닫이로 ‘안-밖 두 얼굴’

  • 곽윤섭
  • | 2010.03.18

<제5강> 문 닫힌 문-열린 문, 나오거나 들어가는 장면 달라 문 넘어 문, 또 넘어 문, 문…, 생의 마지막 문은? 199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로마에...

취재

대자연의 예술 ‘렌즈구름’ 순간포착, 마치 UFO

  • 곽윤섭
  • | 2010.03.12

기상사진공모전 기기묘묘한 찰나의 선물…상상력의 원천 ‘합성한 것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 ▲ 최우수상, 양필호 <하늘의 전령사>. 2010년 ...

강의실

애정과 섬세한 관찰력이 관건

  • 곽윤섭
  • | 2010.03.11

[1~4강 클리닉] ▣ 1강 길을 찍어라 그림자가 만드는 길, 그리고 인생의 길 최옥선님과 김옥희님의 사진을 선정합니다. 두 분 다 길의 중의적 ...

강의실

경계하는 앙칼진 몸짓, 애정을 담아 다가간다

  • 곽윤섭
  • | 2010.03.04

<4강> 고양이 눈동자서 풍기는 ‘묘한’ 매력, 쉽게 안잡히는 애인같아  골목, 자동차 밑… 마음 다친 길냥이들 누가 만져 줄까 어떤 테마를 정해...

취재

깐깐한 사진가들과 안동 갑시다

  • 곽윤섭
  • | 2010.03.03

하니포토워크숍 2기 18일부터 안동에서 열려 이갑철 신미식 임종진 등 강사진 ‘거물’ 한겨레가 주최하는 하니포토워크숍 2기가 오는 3월 18일부터 ...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장소·지위·마음 따라 일과 쉼이 머물고 떠나고

  • 곽윤섭
  • | 2010.02.26

<제3강> 의자 임자 따로 있기도 하고, 앉으면 주인이기도 하고 나무토막·깡통이면 어떻고 맨바닥이면 어떠한가 지난해 연말 아도비사에서 주최한 포토...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 끊고 막는 담은 필요 악일까 악의 필요일까

  • 곽윤섭
  • | 2010.02.18

<제1강> 벽 옛 돌담은 꼬불꼬불, 지금의 콘크리트는 일직선 우리 삶에 금 그은 모습, 또 그 안과 밖은 어떨까 영화 ‘거룩한 계보’를 보면 운동...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세월은 가도 풍경은 남아 삶이 흐른다

  • 곽윤섭
  • | 2010.02.11

<제1강> 길 가야할 길, 가지 말아야할 길, 가지 않은 길… 선 따라, 형태 따라 느적느적…정이 따라온다 지난해 11월 말에 사진강의실 시즌1을 끝...

강의실

사진강의 개설 안내

  • 곽윤섭
  • | 2010.02.09

다음주 토요일 2월 20일부터 새로운 강의를 시작합니다. 기존에 해왔던 사진클리닉 수업은 지난 1월 말에 17기를 졸업시켰고 잠시 휴지기를 가집니...

취재

사진의 주인은 '찍힌 사람들'

  • 곽윤섭
  • | 2010.02.03

주영욱 인도에서 찍은 사진을 되돌려주러가는 주영욱씨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주영욱(49·한국마크로밀코리아 대표)씨는 4일 인도 바라나시로 사진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