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은 자는 신화가 되고 찍힌 자는 저주가 되다

곽윤섭 2014. 12. 15
조회수 25172 추천수 0

 [신화가 된 사진]<1> 도로시 랭의 ‘이주 노동자 어머니’

 미국 농촌 참상 기록 ‘대공황의 아이콘’…사후 40년만에 고가 경매

사진 속 어머니 “찍히고 싶지 않았고 돈 한 푼 못 받아”수치심 고백 

 

Lange-MigrantMother02.jpg » 대공황 시절의 아이콘, 최종적으로 유명해진 사진이 바로 이 컷이다


 
 사진은 숙명적으로 그림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진이 공인된 1839년 이래로 세계사를 장식하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사진이미지들의 공통점은 “사진은 스스로 말한다”는 것이다.1
 사진에 찍힌 사람, 공간, 사건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거듭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 존재했음’이라고 설명한다.2 로버트 카파가 스페인내전에서 찍은 ‘쓰러지는 병사’는 이제 막 어디선가 날아든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24살의 젊은 왕당파병사를 보여주면서 전쟁과 죽음이 다른 낱말이 아님을 통렬하게 전해주는 대표적 전쟁사진이 되었다.3

 그러나 그 병사는 자신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 이렇게 유명해졌을 거라고는 짐작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죽음을 맞이한 그 스페인내전이 초기 단계부터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소련과 멕시코가 공화국 정부군을,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란군을 지원했으며 내전이 아니라 사실상 국제전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의 징후였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5컷.jpg » 최종 컷을 찍기 이전에 도로시아랭은 조금씩 접근하면서 찍어들어갔다. 처음 신문에 실린 컷은 이 중 두 장이다.
 
 사진 속의 사람은 그 사진이 어떤 의미를 띠게 될지 알지 못한다. 미국 대공황의 아이콘이 된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우리는 사진 너머의 이야길 읽을 수 있을까? 1929년 증시가 붕괴하면서 대공황을 맞이한 미국은 미국경제 전체가 긴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남부 여러 주의 농민들은 재난의 최변방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재정착국(후에 농업안정국으로 바뀌었다)의 한 분과에서 로이 스트라이커는 미국 농촌의 참상을 기록하는 사업을 벌였다. 도로시아 랭4은1935년부터 재정착국을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1936년에 ‘이주노동자 어머니(Migrant Mother)’를 찍게 된다. 이 사진은 농업안정국이 기록한 25만 장 가량의 사진 중에서 가장 유명해지게 되었고 미국 대공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애초부터 이 사진이 그렇게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다.5 도로시아 랭은 평소 알고 지내던 <샌프란시스코 뉴스>지에 사진을 보냈고 3월, 그렇게 크지 않은 크기로 두 장의 사진이 지면에 실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진이 아닌 다른 컷이었다. 어쨌든 그 지역에서만 2,500여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굶주린다는 기사와 사진은 반향을 불러오기 시작해 연방정부가 식량을 보낼 것을 지시했으니 당장의 굶주림은 면했을 수도 있다.

 대공황의 아이콘 ‘이주노동자 어머니’는 194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면서 급속도로 신화화되기 시작했고 1955년 열린 <인간가족전>6에 걸리면서 결정적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민주당이 집권하던 미 연방정부의 후원으로 농업안정국의 사업이 진행되었고 사진의 사용권은 만인에게 무료로 열려있었으니 ‘이주노동자 어머니’ 사진은 날개 돋친 듯 전 미국과 세계를 날아다녔다.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전시되고 하버드, 프린스턴 등 전 미국의 대학을 순회했다. 사진이 너무나 자주 걸리자 도로시아 랭이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전한다.7

 

Dorothea-Lange_-Graflex-Kamera_1936.jpg » 도로시아 랭, 1936년


 사진을 찍은 도로시아 랭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한 장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의 고뇌를 느끼게 하는, 그리하여 전 미국이 그 사진을 보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다는 신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미국 연방정부도 대만족이었다.

 그건 그렇고 사진에 찍힌 어머니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연방정부가 긴급 지원한 식량이 도착할 무렵에 어머니와 아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그 가족의 신원과 근황이 알려진 것은 사진이 찍힌 지 무려 40여 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플로렌스 오웬스 톰슨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후 재혼할 때까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플로렌스는 단 한 번도 ‘이주노동자 어머니’사진을 좋아한 적이 없었고 가족들은 수치심을 느끼며 지내왔다. 플로렌스는 “나는 그때 사진을 찍히지 않고 싶었다. 난 (그 사진으로) 단 한 푼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1978년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983년 암에 걸린 플로렌스를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져 25,000달러의 성금과 2,000여 통의 격려편지가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그 전까지 ‘이주노동자 어머니’ 사진은 가족에겐 “하나의 저주”였다. 한 달 뒤 플로렌스는 세상을 떴다.8

 플로렌스나 1965년에 이미 세상을 뜬 도로시아 랭이 절대로 짐작하지 못했을 일이 그로부터 한참 후에 벌어진다. 2005년 소더비 경매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구매자에게 대공황의 초상 ‘이주노동자 어머니’사진을 포함한 32장의 도로시아 랭 빈티지 사진이 3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 어떤 한 장의 사진은 그 자체가 역사의 증명으로 남고 신화로 포장되어 후세에 길이 전해진다.

 다시 돌아와 “사진은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숨어있는 이야기는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1. 이 글에서 언급하는 사진은 보도사진, 혹은 다큐멘터리사진에 국한한다. 합성하거나 연출하거나 변형된 사진은 있었던 현장이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지 않았으므로 논외로 친다.

2. “that-has-been” 롤랑 바르트 <밝은 방>

3. 로버트 카파의 ‘쓰러지는 병사’사진을 둘러싼 수많은 진위논쟁이 있다. 이 사진의 필름이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논쟁은 끝없이 쳇바퀴를 돌고 있지만 이 사진이 가장 유명한 전쟁사진이란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로버트 카파가 목숨을 걸고 찍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다른 전쟁터의 사진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진위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4. 도로시아 랭(1895~1965), 미국의 사진가

5. 도로시아 랭은 캘리포니아 니포모의 <콩수확농민 캠프>에서 이 어머니와 아이들을 보고 모두 6컷을 찍었다. 유명해진 ‘이주노동자 어머니’는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찍은 마지막 컷인데 그래 9월에 처음 다른 매체에 소개되었다.

6.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한 <인간가족전>은 이후 전 세계에서 순회 전시되어 900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다.

7. 도로시아 랭은 “나는 이 한 장만으로 유명한 사진가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한다”며 불평했고 “사진의 어머니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심벌이 되었다. 이 사진은 그 어머니의 사진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The Power of Photography, 1970, 비키 골드버그

8. “A True Picture Of Hard Times-Photo Of Poverty Sells For A Stack Of Riches”, Daily Press, 2002년 9월 12일치 기사 참고

 

글/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사진/퍼블릭 도메인 미국 <농업안정국> 제공

 

※ 이 기사는 교보생명에서 발간하는 <다솜이친구>에 실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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