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스친 공간, 폐허 속의 생성

곽윤섭 2014.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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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개인전 <흰 그늘진 마당>

비어 있어 되레 꽉 찬 내면의 공간, 이야기 주렁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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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영의 개인전 <흰 그늘진 마당>이 <송은 아트큐브>에서 열리고 있다. 7월 9일까지. 송은 아트큐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데 지하철 2호선 삼성역 3번출구에서 대치동 방향으로 50미터 거리에 있다. 02-3448-0100 주말에는 휴관.

 시간과 공간을 구분할 수는 없다. 특정한 공간은 시간을 안고 살아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시들고 또 떠난다. 시간을 이기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이건영의 이번 전시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빈 공간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사전에 공간(空間)이라고 치면 “비어있는 곳”이란 뜻과 “어떤 영역, 범위, 세계”란 뜻이 모두 나타난다. 그래서 ‘빈 공간’이라고 하면 틀린 표현이기도 하고 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이 없는 사진을 별로 탐탁지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이곳에 가서 똑같이 찍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심심하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앞의 이유는 양심의 문제이므로 어떤 작가가 이렇게 발표를 했는데 다른 사람이 (의도했든 우연이든) 또 그걸 따라하면 모방이나 표절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제주도 바닷가마을에 살면서, 동네 자치위원회 총무일까지 맡으면서 해녀사진을 찍는 이성은작가가 있고 또 진지하게 해녀를 찍는 김흥구작가도 있다. 느닷없이 2014년 1월에 왜 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쩌다가 조선일보에서 준초이라는 사람의 해녀사진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엄밀히 말하면 해녀에 관한 기사였지만 두 개 면에 걸친 기사에서 가로 전단으로 큰 사진을 하나 실었고 준초이라는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도 실었으므로 준초이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정확히 기사를 인용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광고사진작가’라 불려온 준초이(62 최명준)였다. 그는 2005년 광고촬영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가 우연히 해녀를 만났고 즉각적으로 빠져들었다. (중략)
 “담당 직원에게 ‘해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 여덟 명의 해녀 사진을 찍고 서울로 돌아갔죠.” 틈틈이 제주에 내려가 해녀를 찍다가 지난해 3월 아예 제주 서쪽의 작은 섬 우도로 거주지를 옮겼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광고사진작가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중요한 것은 53살이었던 2005년에 우연히 해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해녀를 만났다고 즉각 빠져들었다는 대목이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직원을 졸라서” 여덟 명의 해녀를 찍었다니 촬영방식이 희한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리처드 아베돈 같은 패션 혹은 상업사진가도 다큐멘터리방식으로 미국 서부의 인간군상들을 찍었고 책을 남겼지만 내가 본 아베돈의 전기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상업사진을 평생 해왔지만 늘 마음속에서는  다큐멘터리사진을 동경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사진가의 영역은 따로 있는 것이니 그 영역을 넘보진 않았다고 술회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해 3월에 준초이는 우도로 거주지를 옮겼다니 9년간 해녀를 찍었다고 하나 본격적으로 찍은 것이 몇 년인진 잘 알 수 없다.  그걸로 전시까지 하고 큰 신문에서 크게 다룰 만한 내용인지도 의심스럽다. 해녀를 찍으려면 물속으로 들어가야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니 물밑 사진도 있나 싶었는데 그 신문에 실린 사진 3장 중에는 없었다. 해녀사진으로 지금 포스코미술관에서 전시중이라고 하고 내년에는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유병언씨가 루브르미술관 마당에서 전시했다는 이야기가 왜 떠오르는지 통 알 수 없으니 누가 설명 좀 해주면 좋겠다. 누구라도 해녀를 찍을 수 있다. 전시도 할 수 있고 그 전시를 소개하는 기사를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준초이라는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 해녀사진가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야기가 많이 번졌다. 이건영의 공간을 어떤 다른 사람이 찍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진의 권력자가 전시를 크게 열어버린다면 진정성 있게 작업해온 사진가가 꼼짝없이 당할 수 있는 한국사진계의 엿같은 풍토 때문에 걱정스러워서 좀 길게 빗나갔다. 프랑스 어부사진가 장 고미는 이렇게 말했다. “내 호기심의 원천은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엉뚱하다. 만약 어떤 곳에 다른 사진가들이 있다면 나는 (그곳에) 가는 것이 싫다. 이것은 마치 플라이낚시와 비슷하다. 만약 그곳에 다른 낚시꾼들이 있고 물고기가 그 낚시꾼들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 물고기는 나의 것이 아니다.” 사진 찍는 현장의 경쟁을 싫어한다는 이야기지만 어부사진가이니만큼 사진찍기를 고기잡이와 즐겨 비교하는 장 고미는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면 그곳에서 물러서는 편이란 뜻으로도 풀이된다. 양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성이 강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내가 찍으려는 것을 벌써 다른 사람들이 했다면 글쎄…. 재미없지 않은가? 두 번째 이유로 든 “심심하고 건조하다”는 표현은 사진에 사람이 있으면 사진의 스토리텔링은 그 사람(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의 개성에서 읽기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영의 사진에선 사람의 있었던 흔적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장치가 꼭 있으므로 읽을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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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대로 이건영의 사진을 풀어보자. 지난번에 스페이스22의 개관 단체전을 소개할 때 이건영의 사진을 한 장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이건영의 사진 역시 버려진 공간의 풍경이다. 내용에선 그러한데 새카만 흑백이라 갑자기 튀어올랐다. 쓰레기 처리장, 학교 운동장,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있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은 자연공간에 내다 버린, 놀다 떠난, 이용하다가 버리거나 떠난 인공물이 놓여있다. 가히 ‘버린 풍경’이라 할 만하다. 썸네일로 운동장을 보다가 별의 궤적 사진이 떠올랐다. 별이 하늘을 돌면서 세월을 보내듯, 이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숲으로 산으로 바다 밑으로 돌고 돌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라고 썼다. 이번 이건영의 개인전 보도자료에는 철학자이면서 사진비평도 자주 하는 김진영선생의 서문이 붙어있고 그걸 읽어보니 나도 단 몇 장을 보고 잘 이해했다는 생각을 했다. 김진영선생이 사진비평가들보다 더 잘 썼으니 꼭 읽어보기 바란다. 물론 이 사진들을 보고 김진영선생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고 나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고 또 다른 관객들은 각자의 해석을 접목시킬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사진들은 어떤 것이든 짧은 쪽이 1미터가 넘는 큰 사진들이다. 마이클 케나의 전시에서 놀랐던 것은 인화의 크기가 굉장히 작았기 때문인데 케나는 그 당시 “이런 사진은 크게 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었다. 이건영이 사진을 크게 건 것은 크게 해야 제대로 보이는 사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 전시장에 못가봤으니 할 수 없이 노트북에서 사진을 띄우고 확대하여 좌우 상하로 스크롤하면서 크게 봤을 때를 짐작해보고 있다. 4번은 철골 구조물만 남은 골프연습장처럼 보인다. 버려진 공간이란 큰 틀은 일관되니 말할 필요도 없다. 빈 공간에는 억새같은 풀들이 철기둥의 보호를 받으면서 잘 크고 있다. 버려진게 아니라 다시 재활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다. 5번은 주차장같이 보이는 곳의 진입로가 막혀있다. 역시 사람이 쓰던 공간이 이제 용도폐기되었다. 콘크리트 차단석들 사이로, 도로의 아스팔트 포장을 뚫고 풀들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를 다룬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을 보면 인간이 사라지고 난 뒤 이틀이 지나면 뉴욕의 지하철이 침수되고 3년이 지나면 도시의 배관이 터지고 건물 벽에 균열이 생길 것이며 300년 정도가 지나면 전 세계 곳곳의 댐이 붕괴하며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는 물에 쓸려갈 것이라고 한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의 흔적이 모두 없어질 날이 올 것이란 이야기다. 긴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살다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멸종되는 사이의 기간은 정말 덧없이 짧은 것이다. 사람들이 손만 대지 않는다면 저 풀들은 곧 아스팔트를 뒤엎을 것이다. 8번에선 풀밭 속의 농구장이 보인다. 이곳은 아직 쓸만하게 보인다. 그러나 주변을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은 이 사진을 찍은 이건영말고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억새와 나무들이 이곳에서 공 하나를 놓고 뛰어다녔던 10명 내지 11명의 경기를 떠올리면서 웅성거리고 있다. 12번은 정말 크게 볼 사진이다. 의도적으로 프레이밍되어 한구석에 처박힌 컨테이너 창고가 을씨년스럽다. 저긴 뭐가 들어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저걸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를 떠올리는 것이 훨씬 추리소설답다.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15번은 위에서 썼으니 넘어간다. 17번 사진도 아직 쓸만한 건물로 보이는데 버려졌다. 저 건물들 안에는 뭐가 있을까. 풀과 나무와 혹 길고양이나 떠돌이 개가 서식하고 있지나 않을까?
 
 중간에 많이 빗나갔으므로 요약하면 이렇다. 이건영의 개인전이 열린다. 그의 사진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으면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모방하거나 표절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사진의 권력자라면 그전에 지난한 작업을 했던 사람과 사진의 존재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다. 사람이 있어야 사진에서 이야길 읽어내는데 편하다. 이건영의 사진에선 사람은 없지만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충분히 재미있게 들어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볼 만하다. 작품에 대한 판단과 감상은 수준과 상관없이 관객의 몫이다.

 

  이건영의 사진들은 공간을 보여준다. 그 공간들은 이름 없는 공간들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공간이 처음부터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녔던 이름을 언제부터인가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공간들의 이름이 없는 건 다만 지녔던 이름을 상실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름 없음은 공간들이 아직은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명명할 수 없는 모종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건영의 프레임 안에 들어있는 여러 공간들은 모두가 과정의 공간 -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혹은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경계의 공간들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의 공간들, 경계의 공간들의 이름이 무엇일까? 그 공간의 이름 찾기를 통해서 이건영의 사진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건영의 사진이 보여주는 건 모두가 버려진 공간들이다. 그의 사진 속 공간은 예전에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용도를 잃어버리고 목적을 상실해 버린, 그래서 사람들이 떠나버리고 남아 있는 버려진 공간들이다. 흰 소금들이 생산되었으나 지금은 키 큰 잡초들만 바람에 흔들리는 옛 염전터, 한 때에는 시끄러운 운동장이었으나 놀던 아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옛 학교터, 본래는 고기들의 놀이장이였으나 지금은 댐으로 수량이 모두 방수되어 햇빛 아래 지면이 되어버린 옛 호수터 등 이건영이 렌즈로 포착하는 공간들은 모두 폐기된 공간들이다. 그리고 이 폐기된 공간들의 이미지를 응시하면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건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의 사진들이 그러하듯, 인간의 목적에 의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가 그 목적이 다한 뒤에 폐허로 남겨진 자연의 모습들, 즉 자연 위에 가해지는 이기적 문명의 자연 파괴이다. 그런 점에서 이건영의 폐기된 공간들은 상처 입은 자연의 얼굴들이다. 02 ArtCube_Lee,Gun-young_AD_June.jpg
 하지만 이건영의 사진들이 폐허가 된 공간을 보여주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만 자연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기적 문명에 대한 비판만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사진 안에 포착된 그 폐기된 공간들은 헐벗은 폐허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위에서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키 큰 조명등들만 외롭게 서있는 버려진 주차장이든, 불법 폐차장으로 변해버린 산골짜기 계곡이든, 골프공들만 군데군데 구르는 메마른 땅이든 이건영의 어두운 폐허 공간 안에는 자연의 상처 입은 얼굴만이 아니라 그 상처의 바닥 위에서 자라나고 있는 또 다른 자연의 얼굴이 함께 들어 있다. 염전터의 키 큰 풀들이 그렇고 지면이 된 수중면 위에서 싹트는 잡초들이 그렇고 전신주 주변으로 벌써 무성히 웃자란 나무들이 그렇다. 말하자면 이건영의 사진 공간은 한편으로는 파괴당한 자연의 얼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폐허 위로 다시 회귀하는 자연이 함께 존재하는 이중의 공간이 된다. 이러한 이중의 공간 이미지는 보는 이에게 자연의 멈추지 않는 생명력, 즉 문명으로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그 상처를 허파 삼아 다시 생명을 일깨우는 자연의 자기 순환적 생성력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건영의 폐기된 공간들은 폐허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생성의 공간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어쩌면 이건영으로 하여금 도시 외곽으로 또 지방의 어느 지역으로 폐허의 공간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던 정작의 이유일 수도 있는 그 공간은 그러나 사진 이미지 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공간, 말하자면 심미적 공간이다. 이 공간은 폐허의 공간과 생성의 공간이 겹쳐지는 곳 혹은 그 두 공간의 겹침이 심미적으로 보는 이에게 연상케 하는 제3의 어느 장소이다. 그 특별한 장소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도, 자연이라는 이름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이름 없는 공간, 말하자면 유토피아적 공간이다. 이건영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다니는 어느 곳, 보는 이에게 공간의 이중화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제3의 공간이 그 어떤 이름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공간이라면 이 공간은 어디일까? 혹시 그곳은 그 자신이 찾아다니고 또 도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공간은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공간이 수없이 많은 정보들로 해체되고 범람하는 욕망들에게 점령당한 혼돈의 공간이라면 이건영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또한 어느 날 그 어떤 우연한 계기가 있어 빼앗긴 마음의 공간을 기억했을 것이고, 그곳을 다시 찾고 싶었을 것이며, 그래서 폐허와 생성이 공존하는 이름 없는 공간을 프레임 안에 담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건영의 폐기된 공간들은 그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밀한 마음의 공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마음 안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가 이건영의 폐기된 공간들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다면, 그 또한 그 폐허 속 생성의 공간들이 우리들을 저마다의 마음 공간으로 데려가기 때문일 것이다.
                                                                                                                                       김진영/ 예술비평


 

 
 

  곽윤섭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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