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워버린 도시, 황홀한 외로움

곽윤섭 2014. 04. 08
조회수 15378 추천수 0

이원철 개인전 <타임>

2시간 장노출로 일상 너머의 비상 포착

속도의 문명 멈춰세워 부재로 존재증명


 

 TIME01_ press_01.jpg TIME02_press_01.jpg TIME03_press_01.jpg TIME05_press_01.jpg TIME06_press_01.jpg TIME08_press_01.jpg IMG_9099.jpg 001.jpg

 

 이원철의 개인전 <타임(TIME)>이 스페이스22Space22 (02-3469-0822), www.space22.co.kr에서 열리고 있다. 4월 29일까지.
7일 스페이스22 전시장을 찾아갔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번출구 바로 앞에 있는 미진플라자 건물 22층의 전시장은 전망이 무척 좋았다. 들어서니 전시장에서 작가 이원철(로 짐작되는 사람)이 10명 안팎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라서 끼어들어 인사를 건네지 않고 지켜봤다. 사이 사이에 벽에 걸린 무거운 사진들을 구경했다. 시계가 있는 장노출사진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수로 구성된 일행은 옆 방으로 옮겨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었다. 역시 조용히 따라붙어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작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교수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진에 대해 물었다. 현장수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성신여대 대학원 조소과의 학생들이며 교수는 ‘미재’라고 법명을 쓰는 김원숙씨였으며 알고 보니 이 전시의 서문을 썼다.
 
 -조소과 학생들인데 사진을 보러 왔다?
 =조소과라고 하지만 현대미술에선 설치와 퍼포먼스를 포함한 매체작업(미디어작업)도 병행하는 추세다. 사진도 알 필요가 있다. 조소와 사진은 표현력은 다르지만 생각은 비슷하지 않은가?
 -작가가 자리를 비웠으니 편히 묻겠다. 다른 장노출 사진과 뭐가 다를까?
 =우선 풍경안에 시계라는 구체적 사물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2시간동안 노출을 줬으니 시계의 바늘이 사라졌고 사람들도 사라졌다. 시계란 시간을 분절하는 사물이다. 무질서의 질서를 잡아주고 일상의 흐름을 체계화시키는 것이 시계다. 또 다른 시간성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라고 보면 좋겠다.  일상성이 아닌 다른 시간성에 대한 기록작업이다.
 -각각의 사진들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각 도시의 문명을 시계라는 상징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다르다. 시계 혹은 시계탑은 과거 종교나 권력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도시의 얼굴이기도 하다. 도시의 표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형주의 작업이며 전시를 보는 사람들은 도시의 체험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TIME02_press_01.jpg » <TIME> London, United Kingdom_120x154cm_C-Print_2011

 

 
 
 이윽고 이원철작가가 다시 방으로 들어섰고 학생 한 명에게 사진들의 느낌을 물었더니 “황량해보인다”라고 했다. 작가가 직접 사진세계에 대해 이야길 했다.
 =외롭고 쓸쓸한, 고독한 분위기다. 고등학교때 사진을 시작했는데 정지용의 시 <유리창>의 한 구절이 강하게 다가왔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외롭다는 느낌과 황홀하다는 느낌이 한꺼번에 다가로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사진은 디지털 조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제(reality)도 아니다. 사진의 속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초현실,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IMG_9099.jpg » 이원철 작가와 김원숙교수(오른쪽)가 스페이스 22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장수업 중이었으니 옆에서 교수가 거들었다.
 =일상이지만 일상을 넘어선, 일상 너머의 이미지다.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일상이 아닌 비상(非常)이다. 시간의 또다른 차원이다. 애인과 여행을 하면 하루가 한 시간처럼 짧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는가. 나만의 시간인 것. 일상의 공간을 분절하는 질적인 체험의 순간이다.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놓치지만 작가는 그것을 붙들었다.
 다시 학생이 물었다.
 -각 도시의 시계는 어떻게 찾았는가?
 =기본적으로는 도시에 가서 직접 찾지만 구글어스의 도움도 많이 받는 편이다. 현지에 가기전에 검색해보고 ‘스트리트뷰’도 본다. 시계 여러 개가 한꺼번에 있는 곳을 우연히 찾았는데 ‘대박’이었다.(웃음) 현지에 가면 2~3일은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스케치만 한다. 시계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찍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의 여부다. (자세한 이유는 뒤에 나온다)
 -장노출기법외에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가?
 =지금 전시는 시간의 시각화 중에 한 파트다. 다른 파트를 위해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어 1/125초로 찍는데 125장을 모으면 1초다. 1/60초라면 한 시간을 위해서는 3,600장이 필요하겠다. 그렇게 해서 설치작업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 또 한가지 방법은 과학적이고 물리학적으로 시간에 접근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면서 셔터 속도를 다르게 해서 찍어보고 시속 50킬로미터로 질주하면서 셔터 속도를 다르게 해서 찍어도 봐서 그 사진들을 비교하는…….

 

TIME03_press_01.jpg » <TIME> Prague, Czech_120x154cm_C-Print_2011

TIME06_press_01.jpg » <TIME> Wien, Austria_75x96cm_C-Print_2011

TIME08_press_01.jpg » <TIME> Yangon, Myanmar_91x75cm_C-Print_2011

  
 수업이 끝났고 학생들이 자리를 옮겼다. 이원철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일부 나온 이야기는 뺀다.
 
 -사진을 언제 시작했나?
 =오산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사진반이 있었다. 흑백인화까지 그때 다 배웠다. 고2때 대학도 사진과를 가겠다고 결심했고 서울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아르엠아이티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홍익대학교에서 사진디자인으로 석사를 마쳤으며 지금은 박사과정에 있다.
 -와! 사진을 엄청나게 오랫동안 배우고 있다. 박사가 끝나면 공부는 더 이상 안할 것인가?
 =20년 넘게 배우고 있는 셈이다. 박사과정이 끝나더라도 인문학 공부는 계속 해야한다. 역사, 철학 같은 것을 싫어했는데 요즘 재미가 붙었다.
 -다큐멘터리와 순수로 나눈다면 이원철의 작업은 어느쪽인가? 디지털 조작이 없으니 다큐멘터리로 봐도 될 것 같은데….
 =(둘을 구분한다면) 다큐멘터리에도 사진가의 주관성이 있고 이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더 사실적이고 현장성을 강조하지 않는가? 내가 하는 사진은 순수쪽이겠다. 왜냐하면 개념을 먼저 잡고 오브제(대상)를 통해 나의 개념을 전달하는 방식이니까.
 -한국에도 시계탑이 꽤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전시는 1부라고 보면 된다. 7개 나라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2015년엔 한국에서 같은 방식으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할 것이다. 서울역, 예술의 전당, 왕십리 등에 시계탑이 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한국의) 장소를 다 공개해도 되는가? 누가 유사하게 찍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관없다.
 -마이클 케냐의 솔섬 판결을 봤는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한 판결이라고 본다. 먼저 찍은 사람이 분명히 있으니 마이클 케냐의 사진이 첫 아이디어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사진의 가치는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이고 아이디어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고 본다.
 -김아타의 장노출 사진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달라?
 =첫째 내 사진에는 시계라는 분명한 대상이 있다. 그리고 내 작업은 나만의 계기가 있다. 2004년에 우연히 내가 나온 이태원초등학교의 야경을 찍은 적이 있다. 시계가 있는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10분 노출을 주었더니 분침이 사라지고 시침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간을 더 길게 주면 시침도 없어질 것 같았고 그때 컨셉을 잡은 셈이다. 지금의 작업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결과물에 차별성이 있다. 색감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내가 영향을 받았다면 스승이었던 박홍천이다. 이미 1980년대에 장노출로 작업을 많이 했다.
 -2시간 노출을 주려면 삼각대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겠다.
 =외국의 공공장소에서 삼각대를 놓고 찍을 때 제지를 많이 당했다. 특히 영국이나 베이징에선 공공장소에서 삼각대를 사용할 수 없다는 법이 있다고 하더라. 돈을 내고 허가를 받으면 된다는데 이게 며칠이나 걸릴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바닥에 놓고 찍으면 괜찮다고 하더라. 난간에 두고 찍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도시에서 얼마나 작업하는가?
 =한 달이 기준이다. 동유럽의 인접한 3개국만 45일 머물렀고 나머지 도시는 한 달씩 있었다. 한 도시에서 10개 정도의 시계를 찾아서 찍고 그 중에서 5개만 건지면 성공이라고 본다. 스케치할 때는 50개에서 100개 사이의 시계를 찍는다.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가 더 중요했고 시계의 형태나 주변 분위기도 본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빛의 방향을 보면서 동선을 정한다. 순광으로 찍는데 남쪽은 10~11시 사이가 될 것이고 오후엔 서쪽을 찍는다. 북향은 역광이니 아예 찍지 않는다. 
 -날씨도 변수가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찍는다. 가능한 현지에서 현상을 먼저 해보고 결과물을 확인하는 편이다.
 -전시장에 20장 정도의 사진이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진에 시계탑이 있고 장노출이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연작 작업을 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나의 작업은 연작이고 하나의 주제가 있으며 외형상 시계가 늘 들어가는게 당연하다. 아마추어라면 하나하나가 반짝거릴 수 있으나 일치하는 스타일이 없다면 변덕스럽게 보일 것이다.
 -질문의 핵심은 사진을 보다가, “여기도, 저기도 또 시계탑이군”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음. 그것은 전시디스플레이의 문제겠다. 그래서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두세 작품씩 비슷한 것을 걸고 다음 묶음은 다른 느낌으로 걸려고 한다. 그렇지만 전시 연작은 하나의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이 대중들에게 다가서려면 관객에게 더 친절한 작가가 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가?
 =가급적 전시기간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혹 궁금증이 있는 관객이 있다면 먼저 말도 걸고 대화도 나누려고 한다. 설명도 하겠지만 듣고 이야길 나누려고 한다.
 
 인터뷰를 끝냈다. 4월 19일 오후 4시에 전시장에서 ‘작가와의 대화’가 준비되어있다. 이원철은 친절한 작가이니 부담가지지 말고 전시장을 찾아가서 작가에게 질문하고 설명도 들어보길 권한다. 마침 옆방에서 수업을 마친 대학원생들이 다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이원철 작가는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느라 전시장으로 갔다. 가면서 이원철작가는 “대중홍보가 되어야 하니 소셜미디어 같은 곳에 기념촬영한 사진을 올려달라고 학생들에게 부탁할 것”이라고 했다. 

 

 시간 여행자의 시선 - 바늘이 사라진 시계가 있는 풍경/미재 김원숙 (미학자/예술비평가)
 
 
 인간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사진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할 수 있을까?
 
 이번 작업의 주제는 ‘시간 Time‘이다. 시간의 문제는 인간 존재에 관한 궁극적 물음이며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에 관한 자각이다. 이원철 작가는 <TIME>시리즈를 통해 유동적인 시간 개념과 조형적 지속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원철 작가의 사진적 궤적은 ‘현상 너머의 실재에 대한 탐구’로 정의할 수 있다. <The Starlight> 시리즈에서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풍경의 요소를 구현했으며, 호주 유학 시절 무덤시리즈 작업인 <Unfinished...>를 보여주었고 귀국 후 천년 이상 된 전국의 고분을 찾아다니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사유를 담고자 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TIME> 시리즈 작업을 내어 놓았다. 사실상 일련의 <Unfinished...>시리즈와 <The Starlight>시리즈는 시간의 축으로 관통되며 이번 <TIME>시리즈 작업으로 이어진다. 
 시간은 빛의 흐름이고 빛은 시간의 흔적이다. 인간의 눈은 빛을 축척할 수 없지만, 사진은 카메라 셔터의 노출 제어를 통해 흐르는 시간의 연속을 빛으로 축척한다. 또한 장 노출의 특성상 무거운 색감과 조용한 프레임의 이미지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시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물을 인식하는 시간이 빛의 물리성을 초월해 인간의 정신성에 가 닿는다. 이번 <TIME> 시리즈가 이미지와 문화사적 맥락에서 그리고 개념적 깊이와 형식적 실행의 차원에서 미학적 의미를 획득하는 지점이다. 
 작가는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시계가 있는 장소를 장 노출 기법으로 사진에 담았다. 시계는 무질서 속의 질서의 리듬을 부여하려는 인간 문명사의 산물이며, 시간을 소유하고자 한 인간의 도구이자 사멸의 존재가 품는 불멸과 영원에 대한 욕망의 대체물이다. 또한 시계는 인류 역사상 권력과 종교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원철의 방법론은 사진이 이미지 재현을 넘어 실재로의 비약에 관한 기록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의 사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똑딱똑딱... 쉼 없이 흐르는 초침, 분침, 시침의 시계바늘, 오가는 사람들,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불빛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TIME05_press_01.jpg » <TIME> London, United Kingdom_120x145.5cm_C-Print_2011  
 
 이원철의 사진에는 부재를 통한 존재증명과 침묵의 소리가 담겨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진 풍경은 일상에서 비일상적 시간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그의 작업에는 현대 문명의 엄숙한 위엄이 드러나지만 쓸쓸한 허무적 분위기도 묻어난다. 그의 사진들은 속도에의 숭배를 부추기는 문명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스쳐 지나는 먼지같은 존재에 대한 아련한 연민을 역설하고 있다. 
 바늘이 사라진 시계가 있는 거리 풍경은 감각적 재현을 넘어 시간과 기억, 존재와 실재, 가상과 욕망, 사라짐과 지속, 순간과 영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이끈다. 
 이원철 작가의 바늘이 사라진 시계가 있는 풍경은 시계(시간을 측정하는 모든 단위의 상징)로 분절되고 측정가능한 일상의 객관적,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넘어 의미화된 주관적, 심리적 시간 다시 말해 각성과 깨달음의 질적 시간인 카이로스에 관한 사진적 이미지의 실험 작업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 여행자다.
 시간의 실재성을 향해 구체적 체험들로 이끄는 열려진 작품 앞에 고요히 멈추어 서서 주어진 짧은 생의 한 때를 돌아보고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마주해 보시길 기대한다. 세월 속에 스며든 시간은 현재의 의미를 확장하고 또 다른 내일을 여는 힘이 될 것이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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