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섬’판결로 사진계 판도라상자 열렸다

곽윤섭 2014. 03. 27
조회수 33564 추천수 1

1심 재판부 “저작권 침해 아니다” 판결, 대한항공 손 들어줘

“자연물 촬영은 아이디어일 뿐 저작권 보호 대상 아니다”

작품 모방 상업적 악용 길 터줘 기존 작가들 굶어죽을 판


 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ando, South Korea, 2007.jpg » 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ando, South Korea, 2007


q1.jpg » 김성필 사진/대한항공 광고유튜브에서 캡쳐


  마이클 케나 솔섬사진을 둘러싼 공근혜갤러리(원고)와 대한항공(피고)의 소송 1심 판결 선고(서울중앙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심우용)가 27일 오전에 나왔다. 원고가 패소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판도라의 뚜껑’이 열렸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사진계에 큰 변고가 닥쳤다. 여기서 사진계라고 함은 마이클 케나, 공근혜갤러리 같은 특정 작가, 특정 갤러리 정도가 아니라 한국에서 사진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와 대부분의 갤러리와 대부분의 평론가와 대부분의 생활사진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단 판결의 내용부터 살펴봐야 한다.


 소송의 전말에 관한 기사는 http://photovil.hani.co.kr/332819
 에 비교적 자세히 쓴 적이 있는데 판결문을 인용하여 다시 정리한다. 판결 전문은 기사 아래에 옮기겠다. 굵은 글씨체는 판결문 원문이다. 판결의 쟁점 중 하나인 저작권 양도와 관련된 사항은 “피고의 항변은 이유없다”고 판시하였으므로 생략한다. 핵심 쟁점은 실질적 유사성이다.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1. 기초사실
 가. 마이클 케냐의 솔섬사진
 영국출신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 2007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솔섬을 촬영한 후 이를 발표하였으며 그 후 솔섬은 출사지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별지 1 사진(이하 ‘이 사건 사진저작물’이라 한다)은 당시 발표한 사진 중의 하나이다.
 나. 원고와 마이클 케나 사이의 계약 (생략)
 다. 김성필의 ‘솔섬’사진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김성필은 2010년경 피고가 주최한 제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솔섬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출품하였고 2010. 10. 5. 그 중 별지 2 사진(이하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라 한다)이 입선으로 당선되었다.
 라. 피고의 광고
 그 후 피고는 2011년경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을 이용하여 광고영상을 제작하였고 2011. 8. 11부터 이를 TV 및 인터넷을 통해 방송하였다.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
 피고는 저작권자인 원고의 허락없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을 모방한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을 사용하여 광고하였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3억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
 1) 생략
 2)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표현방식에 있어서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3)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이 사건 사진저작물을 토대로 하여 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의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3-나-(3)소결
 따라서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에 의거하여 창작되었는지에 관하여 나아가 살필 필요없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됨을 전제로 한 원고의 저작권 침해주장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
 
 원고인 공근혜(갤러리)가 패소했다는 결론이다. 핵심은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기각했다는 내용이다. 판결의 자세한 내용은 다시 소개하겠지만 이 판결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먼저 짚어보려고 한다.
 
 1. 재판부는 두 사진 사이에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에서 사진을 찍었고 사진집과 전시를 통해 발표했던 수많은 작가들의 사진중에서 상당수가 창작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직접 예를 들자. 가수이자 사진수집가로 유명한 엘튼 존이 수천만원의 가격으로 구입한 배병우씨의 소나무 작품 사진의 가치가 사라질 판이다.(나는 개인적인 견해로 저 가격에 동의하진 않지만 소나무 연작에 작가의 창작성이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굳이 경주에 가지 않더라도 한국엔 소나무숲이 도처에 있고 새벽 안개가 낀 곳이라면 비슷하게 찍을 수가 있다. 다른 장소, 다른 소나무, 다른 빛, 다른 시간대로 촬영하는 것은 카메라를 만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제 누구든지 소나무를 찍어서 전시 뿐만 아니라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합법화된 것이다. 배병우씨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강운구씨의 돌부처, 왕릉 같은 사진들도 다른 계절, 다른 시간, 흑백 컬러의 변환만 부여해서 찍는다면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도 다른 사람이 지금이라도 며칠만 고생해서 찍으면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자연물을 찍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몇 가지만 차이를 두면 실질적 유사성이 없어진다. 자연물은 무엇을  포함하는가? 산, 바다, 하늘, 강, 호수, 탑, 비석, 능, 기념물 등이 모두 해당한다. 지금 런던에서 창동 초안산 묘비를 전시하고 있는 탁기형씨의 작업도 몽땅 가치를 잃을 수 있고 서헌강씨의 문화재도 몽땅 가치를 잃을 수 있다.
 
 법원의 판결을 인용한다.
 3-나-(2) 실질적 유사성 여부
 원고는 물에 비친 솔섬을 통하여 물과 하늘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앵글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의 핵심이고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사진저작물의 모든 구성요소 즉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바,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의 표현 중 아이디어의 영역을 넘어서 저작권으로 보호가 되는 구체적으로 표현된 창작적인 표현형식 등을 복제하거나 이용하여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 저작물에 해당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본다.
 
 ① 동일한 피사체를 촬영하는 경우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연물이나 풍경을 어느 계절의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에서 어떠한 앵글로 촬영하느냐의 선택은 일종의 아이디어로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는 점.
 ② 비록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 모두 같은 촬영지점에서 ‘물에 비친 솔섬’을 통하여 물과 하늘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 전체적인 콘셉트(Concept)나 느낌이 유사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자연 경관은 만인에게 공유되는 창작의 소재로서 촬영자가 피사체에 어떠한 변경을 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양한 표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전체적인 콘셉트나 느낌에 의하여 저작물로서의 창작성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저작자나 예술가의 창작의 기회 및 자유를 심하게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③ 이 사건 사진저작물은 솔섬을 사진의 중앙부분보다 다소 좌측으로 치우친 지점에 위치시킨 정방형의 사진인데 반하여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솔섬을 사진의 중앙 부분보다 다수 우측으로 치우친 지점에 위치시킨 장방형의 사진으로, 두 사진의 구도 설정이 동일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④ 빛의 방향은 자연물인 솔섬을 찍은 계절과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선택의 문제로서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각기 다른 계절과 시각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점(이 사건 사진저작물은 늦겨울 저녁무렵에,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한여름 새벽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⑤ 나아가 이 사건 사진저작물의 경우 솔섬의 좌측 수평선 부근이 가장 밝은데 반하여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솔섬의 우측 수평선 부근에 밝은 빛이 비치고 있어 빛의 방향이 다르고 달리 두 저자가물에 있어 빛의 방향이나 양의 조절이 유사하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⑥ 비록 두 사진 모두 장노출 기법을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이 사건 사진저작물의 경우 솔섬의 정적인 모습을 마치 수묵화와 같이 담담하게 표현한 데 반하여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의 경우 새벽녘 일출 직전의 다양한 빛과 구름의 모습, 그리고 이와 조화를 이루는 솔섬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위와 같은 촬영방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상이한 점.
 ⑦ 그 밖에 카메라 셔터의 속도, 기타 촬영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 유사점을 내정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들고 있는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좀 길지만 요약하면서 나의 의견을 밝힌다. 첫째 자연물이나 풍경의 선택, 장소, 계절, 시간 선택의 아이디어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다. 사진에 있어 위의 여러 선택의 아이디어는 보호대상이 아니지만 그 아이디어가 표현되었을 때(사진으로 찍혔을 때)는 보호대상이다. 머릿속에 든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물이 아니므로 당연히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 아이디어가 실현되었을 때는 저작물이다.
 둘째 컨셉트나 느낌이 유사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다. 자연물…. 이하의 판결문은 상당히 곤란한 내용이다. 자연물은 만인이 공유하는 창작의 대상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다양한 표현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이렇게 하여 전체적인 컨셉트나 느낌에 의하여 저작물로서의 창작성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저작가나 예술가의 창작의 기회 및 자유를 박탈한다는 판결의 내용도 상당히 곤란하다. 찍을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되며 자연물은 만인이 공유하는 창작의 대상이며 소재이며 테마가 될 수 있음은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대목은 역으로 다른 저작가나 예술가의 창작의 기회 및 자유를 박탈한다. 이제 자연물을 어떻게 묘사하여도 창작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임재천씨의 아름다운 사진들 중에서 해당 장소의 절묘한 빛, 색, 그림자, 질감등을 살려낸 작품도 대부분 창작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사람이 크게 들어있는 사진은 다르게 볼 수 있으나 컨셉트나 느낌을 말하고 있다.
 셋째: 솔섬의 위치가 다르다는 판결문은 확실히 두 사진에서 솔섬의 위치가 다름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저 정도의 위치변화는 사진에서 큰 차이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견해다. 예를 들어 에펠탑을 찍었는데 그 에펠탑이 주피사체라면 다소 왼쪽이든 다소 오른쪽이든 큰 차이가 없다. 정방형과 장방형의 차이는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로 도화지 모양의 차이에 해당한다. 에펠탑을 그릴 때 어떤 규격의 도화지를 선택하여 그리는 정도의 차이다.
 넷째: 빛의 방향은 역시 선택의 문제이며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빛의 방향이야말로 사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며 이 아이디어가 사진에 정착되었을 땐 저작물이다. 위 첫째와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두 사진의 촬영시간이 달랐다 하더라도 비슷한 역광과 실루엣효과라는 점에선 결과물이 비슷하다.
 다섯째: 왼쪽과 오른쪽이 밝으므로 다르다고 판결했다. 역시 둘은 다르다. 그러나 큰 차이가 아니라고 본다. 이 사진의 핵심은 깔끔한 반영, 역광, 실루엣이며 가장 큰 핵심은 솔섬을 이루는 나무들의 모양새다. 이 기준들이 총체적으로 모여서 효과를 내는데 누에처럼, 시가형 유에프오처럼, 실타래처럼 보이게 하여 환상적인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이 마이클 케냐의 미감이었다. (이 미감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나 모양새, 역광, 반영, 실루엣에 의존하여 미감을 감상한다는 점은 일치할 것이다. 미감이 더 뛰어난 독자는 더 뛰어난 해석을 할 수 있다)
 여섯째: 수묵화 VS 역동적 표현이 서로 상이하다. 어떤 이는 흑백이 더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컬러가 더 좋다고 한다. 흑백과 컬러의 다름은 확실하게 만인이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역시 이 사진의 핵심은 컬러와 흑백의 선택에 있지 않다. 이 사진의 가치에서 그리 크지 않다.
 일곱째: 그 밖의 과정에서 유사성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는 판결. 현상, 인화, 디지털인지 필름인지의 여부는 사진만 봐서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판결문은 판사의 엄중하고 신중한 결론이다.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나의 견해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일곱가지 기준에 의해서 앞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찍힌 한국의 수많은 자연물, 풍경 사진이 모두 창작성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상업적 사용을 위해 유명 작가의 사진을 ‘알고 난 이후에’ 현장에 가서 계절, 시간대, 컬러흑백의 변환, 피사체의 위치 조금 변동 등만 이용하여 찍으면 합법적이라는 판결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진계에 큰 사건이다. 생활사진가들에겐 희소식인가? 아니다. 이제부터 생활사진가들은 합법적으로 유명사진가들의 기존 작품을 따라할 일이 생겼으므로 편하게 되겠다. 저 두 사진 정도로 “유사하게만 찍어선” 다르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저 두 사진 정도로 “다르게만 찍어도”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전업 작가든 생활사진가든 이제 자연물, 풍경 따위는 여간 특별하게 잘 찍지 않으면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없으니 포기하는게 좋겠다. 한국의 수많은 생활사진가들은 이번 판결로 창작의 기회 및 자유를 박탈당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게 아니라 이번 판결로 창작성을 인정받기가 심하게 어려워졌다.
 
 아래와 같은 댓글은 사양한다.
 1. 솔섬이 마이클 케나의 것이냐? (이번 소송과 전혀 상관없는 딴소리다.)
 2. 돈 욕심 때문에 갤러리와 작가가 나선 것이다. (이번 소송은 중요하다. 앞으로 한국 사진계의 향방이 결정될 중요한 문제다. 갤러리와 작가쪽에선 돈 때문이 아니라고 누누이 밝히고 있다. 세계 수십개국에서 사진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케나에게 한국 시장이 얼마나 클까? 대한항공 같은 큰 기업을 상대하는 갤러리쪽에선 이겨도 뒤탈이 두려워 남는게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소송의 본질은 창작성이라고 위에 설명두었다)
 3. 나는 누구의 편을 들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니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지 말기를 바란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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