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10년간 본 '우리 동네 이야기'
천진난만한 렌즈 앞에 어르신들 ‘무장 해제’
한컷 한컷 모이고 모여 동네 역사 차곡차곡
따끈따끈한 사진전을 소개한다. 천안에 사는 한 작가가 지난 10년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사람들을 찍은 사진으로 동네 경로당 앞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따끈따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전시 시작을 채 1주일도 남기지 않았던 바로 지난주에 찍은 사진도 있기 때문이며 이 작가가 동네에서 몇 되지 않는 초등학생이기 때문이다.
천안 수신초등학교 6학년 이봄의 ‘용감한 사진전-우리동네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는 이봄양이 살고 있는 천안시 수신면 장산2리 경로당 앞에서 2월 4일까지 열린다. 잘 만들어진 보도자료 속에 전시서문 겸 작가(작가의 아빠가 작가의 마음을 대신해^^)노트를 보내왔다.
2014년 설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할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님, 아버님의 평소 생활하시는 일상의 모습들과 풍경들을
많은 자녀들과 손자들이 보시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소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을도 예전에는 학생과 애들도 많은 시끌벅적한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동네주민은 어르신들이고 초등학생이라고 해봐야 5명 남짓됩니다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대부분인 동네 어르신들.
한 해 한해 기력이 없어지시는 어르신들도 계시고,영원히 떠나시는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소중한 기억들과 어르신들이 일상을 매년 기록하여 내년 설날에도 또 그 이듬해 설날에도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이봄 작가/2004년 4월
» 봄이가 찍은 동생 가을이
작가의 아버지 이정훈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2003년에 귀농했고 금줄이란 전통적 소재를 출산선물로 개발해 ‘수호천사 금줄’ 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봄이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이며 첫째 자녀는 이번 전시의 작가인 이봄(수신초등학교6학년 졸업예정, 천남중학교 입학예정)이며 둘째로는 이가을(수신초등학교 4학년)이 있다. 이메일로 작가 이봄양의 아버지 이정훈씨와 인터뷰를 했다.
-봄이가 언제부터 사진을 찍었을까?
=사진은, 언제랄 것도 없이 어릴 적부터 디카를 만지게 했다. 무슨 사진이든 찍을 때 봄이한테 부탁을 하곤 했다. 주로 자기 인형이나 동생 가을이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시기는 2005년으로 그때 봄이 나이 5살이었다.
-봄이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시작할 때 이야길 들려달라.
=2005년만해도 디지털카메라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니어서 우리 집에도 디지털카메라가 딱 한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카메라는 누구의 것이 아닌 가족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카메라를 산 목적이 가족을 담으려는 것이었으니. 비싸다고 카메라를 못 만지게 하지 않았다. 렌즈가 튀어나온채 넘어져서 망가진 적도 있었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 야단을 치거나 주의를 주지 않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일이 부담스러운 일일수도 있는데 자연스럽게 만지고 찍고 그랬다. 일안반사식디지털카메라(DSLR)로 바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니 사진찍기가 친근해진 것 같다.
-사진을 배웠을까?
=따로 사진을 배우지는 않았다. 단지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소녀. 어릴 땐 동생 가을이를 많이 찍어주었다. P모드가 자동이라는 정도밖에 모른다. 요즘 조금씩 물어보고 있는 편이다.
-카메라 다루는 것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2005년부터 동네 주민들을 찍었다고 했다. 대단하다. 동네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린 아이가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동네에서) 거부감은 많이 없다고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쑥스러워 하며 “뭐 사진을 찍을 게 있다고 그랴.”라고 하시면서 즐거워들 한다. 요즘엔 사진 찍으러 경로당에 자주가는데 웃으며 반겨주며 “또 사진 찍으러 왔냐”라고 하시며 “내일 다시 찍으러 오라. 내일은 예쁜 옷 입고 올 테니”라고 하셨단다.
이번에 단체사진을 찍을 때는 모두들 즐거워하셨다고….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에게) 단체사진은 아마도 굉장히 오래된 기억일지도 모르는데 봄이가 그런 사진을 이끌어 냈다는게 대견스럽다. 어찌보면 어르신들에게는 소소한 ‘이벤트’였을 수도 있겠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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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월
» 2010년
» 2014년 1월 21일
-가장 오래된 사진은? 봄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
=아빠인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동생인 가을이를 찍어 준 사진으로 햇볕이 드는 창가에 잠든 가을이를 위해 이것저것으로 가려주고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봄이한테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물어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온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 단체사진 찍을 때도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모두들 웃으시고 또 한 분은 브이자까지 그려주셔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 할머니들을 이끌어 내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던 작업이었다고.
-아빠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내려왔으니 시골 생활을 많이 사진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모습이나 생활을 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봄이의 사진을 다시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진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저는 못했지만 봄이에겐 앞으로도 많은 사진을 찍는 ‘동네 사진작가’로 남아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다. 동네 사람들도 찍고 동네 행사들도 기록하고.
-이번 봄이의 사진 속엔 동네 주민이 몇 분이나 등장하는가?
=우리 동네도 여타 시골 동네처럼 주로 노인분들만 계신다. 전체 인원은 정확치 않지만 45명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초등학생은 봄이, 가을이 포함해서 4명.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거의 찍힌것으로 알고 있고 일하시는 50대분들 몇 분은 안 나오신걸로 알고 있다.
-전시 비용은 어떻게?
=전시 비용이랄 것도 없다. 동네 경로당 앞,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장소(벽을 이용)에 합판을 석장 연결해서 야외 전시할 생각이다. A4크기 액자로 30개, 5X7크기 액자고 15개 정도 전시할 생각이다. 조촐하게 초대엽서도 만들었고 현수막까지 제작할 것이다. 올해 조촐하게 준비해 (사람들) 반응이 좋으면 내년에도 전시할 계획이다.
-어떻게 사진전을 생각해냈나?
=옛날 사진 정리를 하다보니 봄이가 찍은 사진이 (묵히자니) 너무 아까웠다. 동네 어르신들의 사진을 보면 이미 돌아가신 분, 병원에 계시는 분,요양원에 계시는 분도 있더라. 초등학교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딸에게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를 열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설날에 모이는 동네에서 전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소한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이번 일을 기획하면서 부모인 우리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진을 좋아하는 봄이도 사진이 가진 힘에 대해 좀 더 느끼게 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동네 사람들도 좋아하시리라 생각한다.
-별로 중요한 질문은 아니지만 2014년에 찍은 사진들은 노출보정 설정이 2스텝 과다로 되어있는 탓에 사진이 많이 흐리다. 왜 이런 일이?
=2014년에 찍은 사진은 제 카메라였는데 봄이의 사촌오빠가 놀러와서 이것저것 만지다가 뭘 건드렸는지 노출 과다로 설정이….
조금 안타깝지만 초등학생이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 2007년 4월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