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는 눈으로, 보는 눈이 못 보는 세상을 찍다

곽윤섭 2013. 05. 28
조회수 11970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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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소래에 있는 폐염전으로 정기촬영을 나갔다. 다솔이는 갈대밭 사이로 들려오는 친구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고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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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원, 전수연, 공혜원, 문다솔

 

 

이상봉 선생과 함께 사진 공부 3년째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인천 혜광학교엔 시각장애인 학생들로 구성된 사진부 동아리 ‘잠상’이 있다. 현재 12~13명 정도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크게 저시력과 전맹으로 구분된다. 저시력의 경우 어느 정도 편차가 있긴 하지만 아주 가까운 물체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빛만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전맹은 희미한 빛 한 가닥도 못 본다. 날 때부터 시신경 자체가 없는 경우다. 지난 22일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학교를 찾아 사진부를 지도하는 이상봉선생과 학생들 4명을 인터뷰했다. 초여름처럼 날씨가 좋았고 바람이 없어 조금 더웠다. '띵~' 하고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버저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유도음향장치라는 것으로 건물이나 자동문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신호라고 한다.  교실에서 처음엔 세 명과 먼저 이야길 나눴다. 임희원(고3)은 태어났을 때부터 전맹으로 사진을 시작한지 3년 가까이 되었다. 옆에 있던 이상봉선생이 도움말을 주었다.
“저시력 학생들이 전맹인 학생과 일대 일로 짝을 지어 멘토 역할을 한다. 전맹의 경우엔 반드시 제3의 눈이 필요한데 사진찍기에서도 중요하다”
 희원 “소리를 듣고 찍기도 하고 보는 것이 아닌 다른 모든 감각으로 찍을 대상을 상상한 다음 셔터를 누른다. 뭐든지 찍을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 앉아서 인터뷰를 하다가 기자를 한번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만져도 좋다고 했다. 불쑥 일어나더니 기자를 만져보지도 않고 소리로 거리를 가늠하더니 누른다. 사진을 보니 키 차이가 약간 나서 올려다보는 시선이 되었을 뿐 정확히 한가운데에 기자의 얼굴을 넣었으니 초점도 정확했다.
 “아저씨 멋있게 나왔으니 너 사진 잘찍는거 맞다”라고 했는데 아무 대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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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이가 즉석에서 찍어준 기자 얼굴사진. 초점이 다 맞았다.

 

 

 

사진 배우더니 마음이 넓어져

 

 -본인의 사진을 볼 수 없지 않은가?
 희원 “못 본다. 그렇지만 나중에 커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게 되면 아이에게 사진을 어떤 수준이든 상관없이 가르치려고 한다. 그 다음에 아빠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이 사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볼거다. 아이와 함께 사진을 감상하고 사진을 같이 찍으러 다닐 것이다”
 엄마에게 희원이가 사진을 배우고 나서 달라진게 있는지 물어봤다.
 “사진을 배우고 나더니 우리 아이의 마음이 넓어졌다. 사물을 보는 것이 한가지였는데 이제 여러 가지를 상대한다. 시각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찍는 각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넓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젠 어딜 가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같이 걸어나와 길을 가다가 가나안 농원에 철쭉꽃이 만발하길래 ‘여기 꽃이 참 많다’라고 했더니 희원이가 ‘엄마, 꽃 예뻐?’ 하더니 대뜸 철쭉꽃 사진을 찍더라. 이제 편하게 척척 사진을 찍는다” 꽃이 예쁜지 사실 여부를 물었던게 아니고 엄마가 꽃을 좋아한다고 하니 한 장 찍어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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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다솔도 고3이고 전맹이다.
 다솔 “다양하게 찍으려고 한다. 집에 있는 강아지 복실이를 자주 찍는다. 복실이요? 마르티즈에요. 하얀색. 화분도 찍고 출사나가서 갯벌을 찍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자장면도 먹었다. 나에게 사진은? 펜던트다. 펜던트 안에 뭔가 집어넣을 수 있듯이 사진이란 것도 그 안에 항상 뭔가를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뭔가 담아두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못보지 않는가?
 다솔 “옆에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찍을 수 있다. 주변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 것,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을 본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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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으로 나와서 화단에 있는 철쭉꽃을 만져보라고 했다. 다솔이는 한참 꽃과 잎, 마른 줄기등을 손가락으로 관찰하더니 “까실까실하고 말라 비틀어졌고 흐느적거리네요”라고 했다. (사진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들고 있던 사진기로 꽃을 한 장 찍어본 뒤 다솔이에게 건넸다. 다솔이는 셔터 단추가 뭔지 물어보고 잠깐 감을 잡더니 이윽고 여유있게 셔터를 눌렀다. 몇 장 더 눌러보라고 했다. 자세를 바꿔서 석 장을 더 눌렀다. 사진기를 돌려받아 찍은 사진을 살펴보니 네 장의 사진이 모두 조금씩 앵글이 다르게 결과물이 나왔다.
 
 공혜원은 고1이고 저시력이다. 아주 가까이서 눈에 대고 보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고 한다.
 혜원이는 최근엔 이상봉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메이킹 포토’(영화를 찍듯 직접 무대를 만들고 오브제를 연출로 배치하는 방식, 만드는 사진)를 하고 있다. 계란 시리즈다.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과정인데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계란을 놓거나 어떤 물체와 계란을 나란히 두는 등의 방식이다. 혜원이는 그 중에서 돼지저금통 옆에 계란을 세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계란에 그려진 눈이 졸려 보였다.
 혜원 “계란이 편하게 돼지에게 기대어 자고 있어서 좋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뭐라고 하든가?
 혜원 “부모님과 언니가 보더니 ‘못 찍었다’고 하던데? (웃음)
 -어떨 때 찍는가?
 혜원 “아 이거다 라는 느낌이 올때 찍는다. 이걸 찍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누른다. 글쎄 그 느낌을 뭐라고 부를까? ‘순간의 촉’이라고 하면 좋겠다”
 -사진찍을 때 잘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혜원 “네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안보이는 느낌’이란게 있어요. 안보여서 못찍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좋은 사진요? 저의 솔직함이 담겨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죠. ‘보는 사람’이 못보는 것, 그런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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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혜원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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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작품들

 

 

 

소리 공기 냄새 촉각... 이국적
 
 기자가 뭘 찍고 싶은지 물었을 때 아이들은 모두 한번쯤은 외국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앞을 전혀 못보거나 시력이 극도로 약한 아이들에게 과연 외국이란 것이 무엇일까 궁금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시력이 나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외국이란 것은 무엇일까? 눈으로 본 것이 90%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이국적이란 느낌은 대체로 시각에서 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의존해 외국을 느끼고 사진을 찍어온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외국’을 느낄 것이다. 소리와 온도와 습도와 공기의 흐름과 냄새와 촉각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발견하고 관찰하고, 그리고 셔터를 누를 것이다.
 
 맛있어 보이는 냉면을, 그러나 맛을 잘 느끼지도 못하고 먹으면서 이상봉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다.
 이상봉선생 “(일반인들은) 눈으로 볼 때 ‘본다’라는 말을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은 손과 느낌으로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고의 문제는 그들 안보이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무 문제도 안된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은 ‘보는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아이들 중에선 그냥 ‘찍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쪽도 있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찍었지! 안보이는데 대단하다’고 감동을 준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냥 찍어서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고 본다. 사진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은 협력자. 같이 작업하고 골라낼 때 조언하고 칭찬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전맹 학생들은 길과 찍는 대상을 안내해주는 저시력 안내자가 있다)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면 그게 찍는 사람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선생 “공모전사진을 위한 교육이란게 있다. 그런 교육을 보면 대상을 지정해주고 셔터와 조리개를 결정해주고 찍는 타이밍도 정해주곤 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저시력 안내자는 그런 역할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앞에 뭐가 있다. 어떻게 생긴 것이다’정도만 설명해주는 것이다. 나머지는 찍는 아이들이 판단한다. 저시력 안내자 학생들이 ‘이걸 이렇게 저렇게 찍어라’라고 말을 하지도 않지만 할 수도 없다. 저시력 안내자의 설명 자체가 정확치 않기 때문에 완벽한 구상이나 구성이 될 수 없다. 자신들이 표현하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해나간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본인들이 이끌어간다”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백운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창 밖으로 여러 풍경들이 느리게 혹은 빠르게 지나갔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찍는가를 생각해봤다. 과연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물이나 대상을 보면서 뭔가를 떠올리고 상상하면서 셔터를 누르고 있기나 할까. 찍은 사진을 보면서 찍은 사람의 '솔직한 마음'이 떠오를 수 있을까?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이상봉선생은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장애인이 되었다. 평생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이 그의 꿈이 되었다. 이상봉은 인천혜광(시각장애)학교에서 25년째 교사로 일하고 있다. 제자들을 세상과 소통시키고자 제자들의 사진을 수 년 동안 발표해오고 있다. 그들의 사진과 꿈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와 제자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다큐영화 ‘안녕, 하세요’가 만들어gong02-1.jpg졌다. 임태형 감독의 이 영화는 2012년 5월 개봉됐다. (이상봉  에세이집 ‘안녕, 하세요’ 서문에서)

 

 

 

 

 

 공혜원이 찍은 이상봉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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