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사진

곽윤섭 2013. 04. 25
조회수 9300 추천수 1

 

박선주 사진집 <마들렌>

 

박선주의 사진집 <마들렌>은 제목에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걸 읽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사람마다 천양지차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책의 보도자료에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마들렌’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바로 그것이다. 아래와 같다.

 

“마들렌은 작고 가벼운 조가비 모양의 스폰지 케이크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먹으면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마을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기서 유래하여 향기나 냄새와 같은 후각적 자극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재생해 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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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박선주의 사진집 <마들렌>이 스폰지 케이크를 찍은 사진들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마들렌을 한 입 베어물었을 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과 마을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얘기처럼 박선주는 서울 변두리의 어디선가에서 발견한 ‘그것’들을 앞에 두고 불현 듯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고 하며 왜 셔터를 누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니 어린시절 주변에(서) 있었던(보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명백히 ‘마들렌’이다.

 

그런데 만약 이 책의 잠재적 독자들이 프루스트를 모르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프루스트는 교과서에서 본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전문을 다 본 기억은 없다. 고작 ‘프루스트현상’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프루스트(1871~1922)나 롤랑 바르트(1915~1980)가 사진을 직접 찍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다만 프루스트가 언급한 ‘마들렌’과 여기서 비롯된 프루스트효과란 것이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이란 개념을 처음 끄집어낼 때 단초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대해 상당히 깊은 사고를 했으며 글을 썼고 신문기사, 사진, 영화, 전시회 등 문화현상등에 관해서도 많이 고찰했다. ‘카메라 루시다’는 어느덧 사진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처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그걸 다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말이나 글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고 느닷없이 나타나 아픈 상처를 바늘로 찌르는 것같은 고통을, 롤랑 바르트는 그의 어머니 어렸을 적 사진 앞에서 온몸으로 직면했다. 그런데 그 사진과 그 사진이 야기한 후폭풍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자 경험이다. 지금 필자나 사진마을의 독자가 롤랑 바르트 어머니의 사진을 본다고 했을 때 푼크툼적인 경험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기서 잠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푼크툼은 찍어올 수 있는 것일까? 글쎄다. 롤랑 바르트더러 푼크툼을 찍어오라고 해도 못찍어올 것 같다.

 

박선주의 사진집 <마들렌>의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그리고 첨부된 5장의 사진을 보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고 있다. 약력을 보면 박선주는 사진가이기 이전에 불문학자이며 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이다. 그래서인지 보도자료는 철학적 글쓰기로 가득하다. 읽는데 힘들었다. 철학적 고민 끝에 사진이 어렵게 나왔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물론 아주 겸손하게 사진가는 이렇게 저자노트를 맺고 있다.

나에게 있어 사진행위는 렌즈를 통해 냄새 맡고 만지고 듣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 고정된 이미지 그 어딘가에서 냄새가 나고, 어른거리는 빛과 리듬이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그렇다. 모든 사진가들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희망하고 기대한다. 왜냐하면 저자나 사진가의 손을 떠나 수용자와 만나는 그 순간부터 해독은 수용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찍는지의 단계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가시밭길을 지나고 나야 비로소 ‘왜 찍는지’의 문이 열린다. 박선주의 사진집 <마들렌>은 ‘왜’의 단계를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이야길 하는 이유는 어려운 저자노트와 보도자료를 읽지 않고서는 사진들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저기 놓여진 소파와 물통과 폐가와 나무와 초록빛 호스들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저 대상들이 무슨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마을의 다른 글에서 박노해 시인의 시와 사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시가 있어야만 사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인의 사진은 사진자체만으로도 기능했다. 예컨대 문자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의 단계에서 시인 박노해나 영화감독 빔 벤더스나 사진가 박태희나 시인 신현림이나 작가 혹은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각자의 방식과 필요에 의해 비중을 선택하고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불문학자이자 철학아카데미의 운영위원의 사진집을 만났다. 아직 사진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사진집의 구성이 철학적인 사변과 사진작품의 결합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구성을 보면 글로는 ‘저자노트’가 있고 ‘김진영과 박선주의 대화’가 있고 큐레이터 최연하의 ‘2월의 노트’가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문자 텍스트를 위한 책은 아니고 정통 사진집에 더 가깝다. 처음과 중간과 끝에 문자 텍스트를 넣는 것은 사진집의 이해를 돕기 위해 흔히 쓰는 방식이다.

 

사람은 (깊이, 수준의 차이를 안고) 누구나 문학하고 철학하고 수학(산수)도 한다. 필자도 본인의 수준안에서 글도 쓰고 산수도 하고 철학은 거의 못하고 있지만 사진은  십 수 년 찍었고 사진 이야기도 좀 하고 있다. 사진을 어떻게 찍고 봐야할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현 단계의 결론은 우선 사진은 외형적으로 시각물이므로 그에 대한 고찰을 먼저 하고 찍거나 해독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 시각물이 속으로 담고 있는 코드나 속성을 살펴보면서 이 사진은 (사진가의)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사진가와) 함께 고민해야한다. 그동안의 경험법칙에 의하면 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이해하거나 읽을 수 없는 사진은 곤란하다는 중간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보도사진의 경우라면 정확한 캡션없이는 오독이나 오용의 위험이 늘 도사린다는 브레히트와 벤야민의 판단에는 동의한다)

 

다큐멘터리와 소위 말하는 순수사진의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구분을 반대하는 필립 퍼키스의 판단에 동의하지만 <마들렌>은 최소한 보도사진은 아니다. 그렇다면 독자를 위해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철학과 사진의 만남을 열렬히 환영한다. 다시 말하지만 ‘문자텍스트인 철학+사진’의 형태든 ‘인문학하는 사람이 찍은 사진’의 형태든 상관없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돋보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하는 사람이 찍은 사진’과는 다른 새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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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이해를 돕기 위해 보도자료의 글들을 가감없이 옮긴다.

 

1. 저자노트, <사물과 침묵의 빛> 전문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자라나는 딸의 모습을 찍기 위해 카메라라는 낯선 도구를 손에 잡은 지 25년,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들판과 거리를 돌아다녔다. 유아원에서 돌아온 딸 앞에 그날 찍은 사진들을 펼쳐놓고 좋은 사진을 골라보라고 내 놓았다. 아이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단숨에 몇 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가 좋다고 내미는 사진에 고개를 가로젓기도 한다. 나의 사진 확인 작업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눈이 시리도록 렌즈를 들여다보았고, 다리가 붓는 줄도 모르고 온 종일 암실에 처박혀 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카메라와의 만남은 내 욕망에 의한 무의식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바람과 같이 일어났다가 흩어져 버리는 매 순간의 생각들. 내게는 늘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생각들과 이미지들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문장들은 언어로 해결할 수 있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언어의 한계 바깥에 있다. 내 시선이 안겨드는 풍경들, 사물들을 감싸 안으려는 내 시선의 욕망은 긴 세월 동안 카메라와 결탁해 왔다.

풍경에 굶주리고 사로잡힌 시선은 무거운 눈꺼풀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까지 바깥으로, 풍경 속으로, 사람들 사이로 나돌아 다녔다. 카메라는 내 시선의 대행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도구가 되었고. 나는 그 도구의 동반자일 뿐이었다.

 

세계의 균열은 내 안의 균열이다. 내 안의 균열은 세계의 균열이다. 카메라는 세계의 균열을 드러내고 내 안의 균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두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산동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없었다. 영하 17도의 칼바람이 불고 있었고, 어린 고양이 한 마리, 투명한 겨울의 빛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원색 페인트칠을 한 낡고 빛바랜 담벼락에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삶에의 희망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텅 비어 버린, 낯선 동네의 침입자인 나는 몇 시간동안 골목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녔다. 바람을 막기 위해 세워둔 부서진 판때기들과 찢어진 비닐조각들 위로 오후 두시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옹색한 골목, 계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허술한 층계를 오르내리며, 나는 삶의 냄새를 맡고 다니는 한 마리 개였다. 마치 그곳에서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의 삶의 진실을, 자본주의의 현란한 불빛 속에서 놓쳐버린 진실의 씨앗을 찾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들렌 과자가 프루스트에게 콩브레의 풍경을 되살아나게 했듯이 말이다.

경사진 비탈길에서 빛을 붙들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셔터를 눌러대었을까. 현기증을 느끼며 일어서니 찬바람이 휑하니 지나간다. 빛은 어디에나 비치고 있었다. 가난한 이 골목에서 햇살은 더 없이 강하고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요와 빛이 내 안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사물과 침묵의 빛이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눈앞의 세계와 사물과의 마주함이다. 그가/ 그것이 내 앞에 있고, 내가 그/그것 앞에 있음을 확증한다. 그는/그것은 그 순간 나의 현존을 확증한다. 렌즈를 들여다보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내 손가락의 떨림을, 내 입술의 숨결을, 내 살의 떨림을 가장 선명히 느끼는 대상과의 공존이고 공명이다. 문득 어떤 대상에 이끌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떨림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연한 마주침에 의한 존재의 전율, 현존의 확인, 그게 내 사진 행위의 전부다. 한 장의 사진이 갖는 의미는 사후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사진행위는 렌즈를 통해 냄새 맡고 만지고 듣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 고정된 이미지 그 어딘가에서 냄새가 나고, 어른거리는 빛과 리듬이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2. 김진영과 박선주의 대화, <사진과 기억사이> 중에서 (본문 발췌)

*김진영(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학과 아카데미 등에서 철학, 문학, 미학을 강의하고 있다.)

 

박선주: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에 혼자 산책을 하다가 문득 발견한 것인데, 식물과 빗자루, 삽이 불빛 아래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 조화롭게 느껴졌어요. 아마도 이 빗자루와 삽이 없었다면 셔터를 누르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서로 공존해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제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요. 그 순간 셔터를 눌렀구요. 우리의 삶 주변의 하찮은 것들, 아무도 봐 주지 않는 버려진 것들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분명히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하찮은 것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길에서 만나는 허름한 창고, 쓰레기통과 같은 소외된 것들, 필요해서 쓰이고 버려지는 것들이 어느 순간 묘하게 존재감을 갖고 다가옵니다. 그 사물들이 말을 걸어와요. ‘나 좀 바라봐 줘’ 그렇게 얼굴을 내밀죠.

사진을 찍고 나서 왜 이런 대상들이 눈에 잡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죠.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어린 시절 제 주변에 있었던 것들이었어요. 생활이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의 집 앞마당, 혹은 담벼락, 골목 어딘가에 늘려 있었던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런 사물들을 보면 예전의 집과 골목들이 떠오릅니다.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이죠.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과자를 한 입 깨무는 순간, 마르셀에게 어린 시절 살던 콩브레의 정경이 한 순간에 떠오르듯이.

 

김진영: 프루스트는 켈트족의 전설에 대해서 말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영원히 죽었다고 슬퍼 하지만, 그 죽은 자들은 영혼이 되어서 세상의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영혼들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에게 ‘나 좀 봐줘’라고 늘 말을 걸고 있지만, 우린 슬픔에 잠겨 있을 뿐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돌연한 기억으로 우리는 영혼들의 부름을 듣고 그들과 해후한다는 거죠. 그 기억의 계기가 프루스트에게는 감각이에요. 감각은 시간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시간이 가도 남는 거라고 프루스트는 말해요. 차 한 잔을 마셨을 때, 이미 예전에 마셨던 그 차 맛은 사라져 버렸지만, 예전의 그 감각과 지금의 감각이 연결이 됩니다. 게다가 감각은 홀로 존재하지 않아요. 하나의 감각이 기억되면 그와 연결된 모든 감각들 - 청각, 미각, 촉각. 시각들 전체가 따라서 끌려 나오는 거죠. 그게 바로 무의지적 기억이 총체적 기억인 까닭이죠. 중요한 건 그 감각이 다름 아닌 사소한 것들로부터 촉발된다는 것이죠. 박 선생님의 추억 작용도 다르지 않을 테구요. 그런데 제게는 어쩐지 박 선생님의 사진들이 프루스트보다는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에 더 가까운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네요.

 

3. <2월의 노트>, 본문 최연하의 글에서 (본문발췌)

* 최연하 : 독립큐레이터

 

사진작가는 전일한 의식에서 대상-세계를 응시하고 경계를 지우는 작업자이다. 분할된 조각들을 모아내 매끈하게 한 장의 이미지로 옮겨오는 자이다. 이제까지 불러졌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사물을 호출하여 다르게 말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물의 무상함을 알고 있기에 영원히 기억 될 흔적으로 기입하는 자, ‘마들렌’과 ‘산딸기 오믈랫’의 맛을 표현은 못하지만 기억해 낸 자이다. 그러니 사진작가의 자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시 보이게 하는 영매의 자리 근처가 될 것이다.

 

4. 저자약력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불문학석사, 불문학박사 수료.

두 번의 개인전, <마들렌>(류가헌 갤러리, 서울, 2013)과 <autre-타자>(갤러리 룩스, 서울, 2009)를 했다. 현재 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으로 일하며 사진으로 사유하는 새로운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꿈꽃 팩토리> <photo+factory>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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