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얼굴
사람도 동물도 차도 제각각…세월 따라 변모
잘 드러나지 않는 뒷태에 되레 ‘생얼’ 없을까

사람의 머릿부분에서 앞면을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눈, 코, 입, 귀는 모두 이곳에 몰려있습니다. 감각기관이 얼굴에 있다 보니 사람이 이동할 땐 앞을 보고 갑니다. 한강변에서 보면 가끔 뒤로 걷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신경을 곤두세워야 가능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대체로 얼굴입니다. 얼굴을 가린 사진으로는 특정인을 식별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신분증에 들어가는 사진은 모두 얼굴의 정면을 사용합니다. 이번 테마는 얼굴입니다. 개나 고양이, 호랑이 같은 동물도 모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물사진과는 좀 다른 개념

사람을 찍은 사진을 인물사진이라 부르며 ‘인물사진’은 사진발명역사의 초기부터 많은 사진가들이 즐겨 찍던 전통의 테마입니다만 이번 강의에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인물사진과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사람과 동물뿐 아니라 모든 대상은 얼굴에 해당하는 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인류의 생활에서 필수품처럼 인식되고 있는 도구 중의 하나는 자동차입니다. 자동차에서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은 정면입니다. 자동차를 앞에서 보면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저만의 경우가 아닐 것입니다. 차종에 따라 다양하게 디자인되어있지만 헤드라이트는 사람의 눈처럼 보입니다. 동그란 눈, 뱀처럼 날카롭게 생긴 눈, 세모나 네모 모양의 눈을 닮은 헤드라이트도 있습니다. 차 디자인에서도 정면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도해 보이는 얼굴, 날렵하게 보이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트럭의 경우엔 힘센 사나이들의 각진 얼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 상상력이 아이들의 합체 로봇으로 이어졌고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즐겨 봤던 어린이 만화영화 중에 ‘꼬마 자동차 붕붕’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재방영을 했고 최근에도 채널을 바꾸다가 붕붕의 활약을 봤습니다. 만화의 장점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의인화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붕붕이 사람(그것도 꼬마)의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착하고 귀여운 붕붕이 코를 벌름거리면서 꽃향기를 맡고 질주하는 장면을 보면 사람의 얼굴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첫인상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자동차를 찍어보다가 다른 것들로 눈을 돌려보니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는 상품은 모두 얼굴에 해당하는 부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면부는 다들 화려하거나 말끔하게 단장을 해두었습니다. 냉장고, 선풍기, 세탁기, 전자레인지가 그렇습니다. 초기의 가전제품은 투박하거나 고풍스럽게 우아했으나 지금은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매장에선 소비자를, 가정에선 사용자들을 맞이합니다. 잘 생긴 가전제품에선 애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로 벽에 붙어있어서 평소엔 뒷태를 드러낼 일이 잘 없는 이 제품의 뒤를 가끔 볼 기회가 있습니다. 이사를 하거나 신제품으로 교체할 때 혹은 뭔가 뒤로 떨어졌을 때입니다. 지저분합니다. 먼지가 붙어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디자인단계에서 그렇게 공을 들이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면서 머리의 전면부에 해당하는 얼굴을 봅니다. 하지만 뒷통수를 포함한 뒷모습을 매만질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건축학에서 나온 용어에 파사드(facade)가 있습니다. 건물의 특정한 한 면을 가리키는 말로 그중에서도 특히 건물의 정면을 주로 파사드라고 부릅니다. 가끔 옆이나 뒤의 모습도 해당한다는 뜻이겠죠. 프랑스어에서 유래하였는데 단어 철자를 보니 얼굴(face)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건물의 파사드는 그 건물 전체의 성격이나 인상을 규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얼굴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력서에서, 면접에서, 그리고 미팅자리나 선을 보는 자리에서도 얼굴 첫인상은 가장 중요합니다.
건축물의 얼굴(파사드)을 찍는 사진가, 다시 말해 건물의 얼굴을 테마로 삼는 사진가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용어에 압도 당해 파사드란 표현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 앞 기념품 가게에 가면 반드시 그 건물의 얼굴(전면)을 담은 사진을 팝니다. 그 사진이 바로 그 건물의 파사드를 담은 사진입니다.
구름에서, 그늘에서 ‘어? 닮았네’

건축학에서 시작된 파사드란 용어가 사진에 접목되면서 바로 인물사진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너무도 당연합니다. ‘파사드, 사진가’라고 검색해보면 여러 사진가들의 이름이 뜹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다이안 아버스 등 인물사진을 많이 찍은 사진가들의 이름입니다. 현대사진가들도 자신의 작업테마를 파사드라고 부르거나 활용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사진가 본인들이 스스로 파사드작업이라고 하진 않지만 평론가들이 그렇게 규정짓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용어를 모른다고 해서 그 사진들의 의미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번거롭다면 그냥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시면 편합니다.
20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할퀴고 간 유럽엔 각국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건축물은 건물의 몸통은 통째로 날아가고 전면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건물의 얼굴(파사드)은 건물의 특성뿐 아니라 역사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유물인 노동당사(철원)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포탄과 총알의 상처가 건물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중국 마카오에 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유적은 화재로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 건물의 석조 외벽만이 남아있습니다. 2005년 성당의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지금은 마카오의 관광지를 대표하는 얼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굴을 테마로 삼을 때의 또 한가지 방법은 얼굴처럼 보이는 대상을 찍는 것입니다. 사물의 일부에서 우연히 얼굴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화된 상태로도 충분히 얼굴로 인식될 수 있으니 눈, 코, 입, 귀중에 어느 한 부분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사람도 동물도 차도 제각각…세월 따라 변모
잘 드러나지 않는 뒷태에 되레 ‘생얼’ 없을까

사람의 머릿부분에서 앞면을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눈, 코, 입, 귀는 모두 이곳에 몰려있습니다. 감각기관이 얼굴에 있다 보니 사람이 이동할 땐 앞을 보고 갑니다. 한강변에서 보면 가끔 뒤로 걷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신경을 곤두세워야 가능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대체로 얼굴입니다. 얼굴을 가린 사진으로는 특정인을 식별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신분증에 들어가는 사진은 모두 얼굴의 정면을 사용합니다. 이번 테마는 얼굴입니다. 개나 고양이, 호랑이 같은 동물도 모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물사진과는 좀 다른 개념

사람을 찍은 사진을 인물사진이라 부르며 ‘인물사진’은 사진발명역사의 초기부터 많은 사진가들이 즐겨 찍던 전통의 테마입니다만 이번 강의에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인물사진과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사람과 동물뿐 아니라 모든 대상은 얼굴에 해당하는 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인류의 생활에서 필수품처럼 인식되고 있는 도구 중의 하나는 자동차입니다. 자동차에서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은 정면입니다. 자동차를 앞에서 보면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저만의 경우가 아닐 것입니다. 차종에 따라 다양하게 디자인되어있지만 헤드라이트는 사람의 눈처럼 보입니다. 동그란 눈, 뱀처럼 날카롭게 생긴 눈, 세모나 네모 모양의 눈을 닮은 헤드라이트도 있습니다. 차 디자인에서도 정면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도해 보이는 얼굴, 날렵하게 보이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트럭의 경우엔 힘센 사나이들의 각진 얼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 상상력이 아이들의 합체 로봇으로 이어졌고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즐겨 봤던 어린이 만화영화 중에 ‘꼬마 자동차 붕붕’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재방영을 했고 최근에도 채널을 바꾸다가 붕붕의 활약을 봤습니다. 만화의 장점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의인화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붕붕이 사람(그것도 꼬마)의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착하고 귀여운 붕붕이 코를 벌름거리면서 꽃향기를 맡고 질주하는 장면을 보면 사람의 얼굴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첫인상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자동차를 찍어보다가 다른 것들로 눈을 돌려보니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는 상품은 모두 얼굴에 해당하는 부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면부는 다들 화려하거나 말끔하게 단장을 해두었습니다. 냉장고, 선풍기, 세탁기, 전자레인지가 그렇습니다. 초기의 가전제품은 투박하거나 고풍스럽게 우아했으나 지금은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매장에선 소비자를, 가정에선 사용자들을 맞이합니다. 잘 생긴 가전제품에선 애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로 벽에 붙어있어서 평소엔 뒷태를 드러낼 일이 잘 없는 이 제품의 뒤를 가끔 볼 기회가 있습니다. 이사를 하거나 신제품으로 교체할 때 혹은 뭔가 뒤로 떨어졌을 때입니다. 지저분합니다. 먼지가 붙어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디자인단계에서 그렇게 공을 들이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면서 머리의 전면부에 해당하는 얼굴을 봅니다. 하지만 뒷통수를 포함한 뒷모습을 매만질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건축학에서 나온 용어에 파사드(facade)가 있습니다. 건물의 특정한 한 면을 가리키는 말로 그중에서도 특히 건물의 정면을 주로 파사드라고 부릅니다. 가끔 옆이나 뒤의 모습도 해당한다는 뜻이겠죠. 프랑스어에서 유래하였는데 단어 철자를 보니 얼굴(face)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건물의 파사드는 그 건물 전체의 성격이나 인상을 규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얼굴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력서에서, 면접에서, 그리고 미팅자리나 선을 보는 자리에서도 얼굴 첫인상은 가장 중요합니다.
건축물의 얼굴(파사드)을 찍는 사진가, 다시 말해 건물의 얼굴을 테마로 삼는 사진가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용어에 압도 당해 파사드란 표현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 앞 기념품 가게에 가면 반드시 그 건물의 얼굴(전면)을 담은 사진을 팝니다. 그 사진이 바로 그 건물의 파사드를 담은 사진입니다.
구름에서, 그늘에서 ‘어? 닮았네’

건축학에서 시작된 파사드란 용어가 사진에 접목되면서 바로 인물사진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너무도 당연합니다. ‘파사드, 사진가’라고 검색해보면 여러 사진가들의 이름이 뜹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다이안 아버스 등 인물사진을 많이 찍은 사진가들의 이름입니다. 현대사진가들도 자신의 작업테마를 파사드라고 부르거나 활용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사진가 본인들이 스스로 파사드작업이라고 하진 않지만 평론가들이 그렇게 규정짓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용어를 모른다고 해서 그 사진들의 의미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번거롭다면 그냥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시면 편합니다.
20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할퀴고 간 유럽엔 각국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건축물은 건물의 몸통은 통째로 날아가고 전면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건물의 얼굴(파사드)은 건물의 특성뿐 아니라 역사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유물인 노동당사(철원)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포탄과 총알의 상처가 건물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중국 마카오에 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유적은 화재로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 건물의 석조 외벽만이 남아있습니다. 2005년 성당의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지금은 마카오의 관광지를 대표하는 얼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굴을 테마로 삼을 때의 또 한가지 방법은 얼굴처럼 보이는 대상을 찍는 것입니다. 사물의 일부에서 우연히 얼굴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화된 상태로도 충분히 얼굴로 인식될 수 있으니 눈, 코, 입, 귀중에 어느 한 부분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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