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문
닫힌 문-열린 문, 나오거나 들어가는 장면 달라
문 넘어 문, 또 넘어 문, 문…, 생의 마지막 문은?

199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로마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초행길이라 버스투어를 이용해 관광명소를 둘러보다 콜로세움 앞에 잠시 내렸습니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앵글을 찾아내곤 신기해하다가 옆에 있는 큰 대리석 구조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기 시작해 315년에 헌정된 콘스탄티누스개선문이었습니다.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조각, 그리고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존재감에 감탄하기에 앞서 저는 그 개선문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워진 지 1700년 정도 되었으니 주변의 환경이 바뀌었겠지만 그래도 문이라고 하면 어느 곳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용도여야 한다는 고지식한 접근에서 나온 의문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평소에도 익숙하게 지나던 동대문을 스쳐 지나면서 문득 “저건 또 왜 저기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대문 천안문 개선문 등은 시대를 넘어 우뚝

이번 테마는 문입니다. 일반적인 문은 벽을 뚫고 지나기 위해 만듭니다. 벽은 어떤 공간을 둘로 나누는 구실을 합니다. 그 벽을 넘어갈 수가 없다면 두 공간의 사람들 혹은 물질들은 서로 교류할 수가 없죠. 벽에 문을 만들어두면 왕래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도심 속에서 고립된 섬처럼 자리 잡아 사방으로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남대문, 동대문 같은 옛 조선시대의 유적지는 당시엔 성벽으로 막힌 공간에서 물적, 인적 교류를 위해 만들어둔 통로였습니다. 아파트엔 현관문이, 학교엔 교문이 있습니다. 벽이 없다면 문도 필요 없겠지만 ‘테마-벽’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벽의 필요성이 생겼고 문은 그에 따른 필수적인 결과물일 것입니다.
문은 얼굴 역할을 합니다. 건물이나 성곽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도둑이나 외적들이라면 문을 통하지 않고 벽을 기어오르거나 벽이나 담아래로 굴을 파서 지나가려고 시도하겠지만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문을 통해 출입하기 때문에 문은 상징처럼 작용합니다. 대궐같이 화려한 집은 대문도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 부와 권위를 보여줍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벌써 위축됨을 느낍니다.

국보 1호 남대문은 주변의 성곽이 없어지고 난 다음부터 대문의 기능은 멈췄지만 서울,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상징처럼 존재해왔습니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습니다. 2년 전 화재로 상층부가 완전히 재로 변해버린 남대문 앞에서 모든 국민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남대문은 대한민국의 얼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2년 후면 새로 단장을 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군대나 왕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이를 기념해 만드는 개선문이 있습니다. 대문 형식을 취했지만 어떤 공간을 통과하는 문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독립적인 건축물이 된 사례들입니다. 파리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투알개선문이 있는데 나폴레옹 1세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06년에 만들 것을 계획했는데 그가 죽은 뒤인 1836년에야 완공이 되었습니다. 루브르박물관 앞엔 또 다른 개선문인 카루젤개선문이 서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 있는 개선문들은 당시엔 절대권력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엔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분단독일시절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고 있던 베를린 장벽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언급했던 다른 개선문과는 달리 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했었던 브란덴부르크문도 지금은 도시를 상징하는 명물이자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좁은 문, 취업 문, 마음의 문…, 눈에 안 보이는 문들

이런 큰 문을 테마로 사진 찍을 땐 전체를 다 포함하는 컷과 더불어 부분묘사에 공을 기울여야 합니다. 에투알개선문만 하더라도 문의 전면과 측면에 역사적 사실을 담은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주로 전투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적을 짓밟고 앞으로 전진하는 장군과 그의 병사들을 정면에서 찍거나 옆에서 찍어봤습니다. 역시 개선문은 문이라기보다는 선전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 대문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현관문은 특색이 없습니다. 교회나 성당의 신자임을 알리는 작은 팻말 외엔 고작 우유배달을 위한 주머니가 달랑 매달려있을 뿐입니다. 낮시간엔 중국집, 피자가게의 전단지들이 문을 장식하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아직 대문이 남아있는 동네에 가보면 아파트 문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동네 아이들이 분필로 쓴 짓궂은 낙서가 있기도 하고 문앞에 강아지나 고양이가 앉아서 졸고 있기도 합니다. 작은 화분을 매달아 그 화분 속에서 꽃 한 송이가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철로 된 대문은 곧 녹이 슬기 시작해 그 자체로 연륜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과는 다르게 모든 학교의 교문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습니다. 방학 땐 작은 쪽문만을 열어두다가 3월이나 9월이 되어 개학시즌이 오면 활짝 문을 열고 학생들의 출입을 허락합니다.
문 사진을 찍을 때 닫힌 문과 열린 문은 서로 다르다는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열린 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지나가는 문과 텅 빈 교문은 전혀 다릅니다. 들어가는 장면과 나오는 장면이 정반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에도 주목해야 사진의 내용을 본인의 의도에 맞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 출입하는 것이 문이라고 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문을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을 찍는 것이 가능합니다. 고등학교 교문을 나서면 대학입시의 관문을 뚫어야 합니다. 대학의 큰 문을 열고 나오면 사회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백만의 청년 실업자들이 취업관문 바깥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고시원의 쪽방에서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의 초상은 취업관문의 이미지입니다. 이른 새벽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 구인, 취업공고게시판 앞에서 머리를 긁고 있는 사람들, 새벽 인력시장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뒷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취업박람회장의 모습들은 취업관문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입니다.
한옥의 대문은 경첩 문고리 창살 등 덧붙은 풍경 다양

취업관문을 통과해도 또 다른 문이 기다립니다. 어떤 식이든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고생문을 들어서는 것입니다. 출근시간 신도림 전철역에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장면, 콩나물처럼 빽빽한 전철 안의 인간군상들은 하나같이 고생문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들입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볼 만한 문은 한옥의 대문. 나무로 만든 문이라 시간이 갈수록 운치가 더 깊어집니다. 비바람에 노출된 터라 얼룩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또한 대문 안팎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기억하는 흔적처럼 보입니다. 마치 나이 든 사람의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같이 세월이 달아준 명예훈장처럼 느껴집니다. 봄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입춘첩이 붙기도 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늘어뜨리던 옛 한옥의 대문은 훌륭한 사진의 테마가 됩니다. 대문엔 쇠로 만든 문고리가 걸려있고 손이 닿는 부분은 반질반질합니다. 녹슨 경첩도 아기자기한 문양이 됩니다. 옹이가 있던 부분은 구멍이 나기도 합니다.
구멍 속으로 들여다 보면 프레임 속 프레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서울과 여러 지역의 도시엔 한옥마을이 있고 수많은 사찰과 암자의 건물에서 옛 방식의 문을 아직 찾을 수 있습니다. 외국의 사진가들이 한국을 두루 다니다가 주목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한옥과 그 속의 여러 디테일입니다. 스티브 매커리는 특히 문고리에 주목하여 작품을 남겼습니다. 굳이 외국 사진가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한국엔 아주 많은 전업사진작가와 생활사진가들이 문, 경첩, 문고리, 문의 창살 등을 테마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닫힌 문-열린 문, 나오거나 들어가는 장면 달라
문 넘어 문, 또 넘어 문, 문…, 생의 마지막 문은?

199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로마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초행길이라 버스투어를 이용해 관광명소를 둘러보다 콜로세움 앞에 잠시 내렸습니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앵글을 찾아내곤 신기해하다가 옆에 있는 큰 대리석 구조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기 시작해 315년에 헌정된 콘스탄티누스개선문이었습니다.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조각, 그리고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존재감에 감탄하기에 앞서 저는 그 개선문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워진 지 1700년 정도 되었으니 주변의 환경이 바뀌었겠지만 그래도 문이라고 하면 어느 곳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용도여야 한다는 고지식한 접근에서 나온 의문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평소에도 익숙하게 지나던 동대문을 스쳐 지나면서 문득 “저건 또 왜 저기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대문 천안문 개선문 등은 시대를 넘어 우뚝

이번 테마는 문입니다. 일반적인 문은 벽을 뚫고 지나기 위해 만듭니다. 벽은 어떤 공간을 둘로 나누는 구실을 합니다. 그 벽을 넘어갈 수가 없다면 두 공간의 사람들 혹은 물질들은 서로 교류할 수가 없죠. 벽에 문을 만들어두면 왕래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도심 속에서 고립된 섬처럼 자리 잡아 사방으로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남대문, 동대문 같은 옛 조선시대의 유적지는 당시엔 성벽으로 막힌 공간에서 물적, 인적 교류를 위해 만들어둔 통로였습니다. 아파트엔 현관문이, 학교엔 교문이 있습니다. 벽이 없다면 문도 필요 없겠지만 ‘테마-벽’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벽의 필요성이 생겼고 문은 그에 따른 필수적인 결과물일 것입니다.
문은 얼굴 역할을 합니다. 건물이나 성곽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도둑이나 외적들이라면 문을 통하지 않고 벽을 기어오르거나 벽이나 담아래로 굴을 파서 지나가려고 시도하겠지만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문을 통해 출입하기 때문에 문은 상징처럼 작용합니다. 대궐같이 화려한 집은 대문도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 부와 권위를 보여줍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벌써 위축됨을 느낍니다.

국보 1호 남대문은 주변의 성곽이 없어지고 난 다음부터 대문의 기능은 멈췄지만 서울,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상징처럼 존재해왔습니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습니다. 2년 전 화재로 상층부가 완전히 재로 변해버린 남대문 앞에서 모든 국민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남대문은 대한민국의 얼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2년 후면 새로 단장을 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군대나 왕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이를 기념해 만드는 개선문이 있습니다. 대문 형식을 취했지만 어떤 공간을 통과하는 문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독립적인 건축물이 된 사례들입니다. 파리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투알개선문이 있는데 나폴레옹 1세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06년에 만들 것을 계획했는데 그가 죽은 뒤인 1836년에야 완공이 되었습니다. 루브르박물관 앞엔 또 다른 개선문인 카루젤개선문이 서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 있는 개선문들은 당시엔 절대권력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엔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분단독일시절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고 있던 베를린 장벽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언급했던 다른 개선문과는 달리 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했었던 브란덴부르크문도 지금은 도시를 상징하는 명물이자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좁은 문, 취업 문, 마음의 문…, 눈에 안 보이는 문들

이런 큰 문을 테마로 사진 찍을 땐 전체를 다 포함하는 컷과 더불어 부분묘사에 공을 기울여야 합니다. 에투알개선문만 하더라도 문의 전면과 측면에 역사적 사실을 담은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주로 전투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적을 짓밟고 앞으로 전진하는 장군과 그의 병사들을 정면에서 찍거나 옆에서 찍어봤습니다. 역시 개선문은 문이라기보다는 선전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 대문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현관문은 특색이 없습니다. 교회나 성당의 신자임을 알리는 작은 팻말 외엔 고작 우유배달을 위한 주머니가 달랑 매달려있을 뿐입니다. 낮시간엔 중국집, 피자가게의 전단지들이 문을 장식하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아직 대문이 남아있는 동네에 가보면 아파트 문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동네 아이들이 분필로 쓴 짓궂은 낙서가 있기도 하고 문앞에 강아지나 고양이가 앉아서 졸고 있기도 합니다. 작은 화분을 매달아 그 화분 속에서 꽃 한 송이가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철로 된 대문은 곧 녹이 슬기 시작해 그 자체로 연륜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과는 다르게 모든 학교의 교문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습니다. 방학 땐 작은 쪽문만을 열어두다가 3월이나 9월이 되어 개학시즌이 오면 활짝 문을 열고 학생들의 출입을 허락합니다.
문 사진을 찍을 때 닫힌 문과 열린 문은 서로 다르다는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열린 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지나가는 문과 텅 빈 교문은 전혀 다릅니다. 들어가는 장면과 나오는 장면이 정반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에도 주목해야 사진의 내용을 본인의 의도에 맞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 출입하는 것이 문이라고 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문을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을 찍는 것이 가능합니다. 고등학교 교문을 나서면 대학입시의 관문을 뚫어야 합니다. 대학의 큰 문을 열고 나오면 사회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백만의 청년 실업자들이 취업관문 바깥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고시원의 쪽방에서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의 초상은 취업관문의 이미지입니다. 이른 새벽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 구인, 취업공고게시판 앞에서 머리를 긁고 있는 사람들, 새벽 인력시장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뒷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취업박람회장의 모습들은 취업관문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입니다.
한옥의 대문은 경첩 문고리 창살 등 덧붙은 풍경 다양

취업관문을 통과해도 또 다른 문이 기다립니다. 어떤 식이든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고생문을 들어서는 것입니다. 출근시간 신도림 전철역에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장면, 콩나물처럼 빽빽한 전철 안의 인간군상들은 하나같이 고생문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들입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볼 만한 문은 한옥의 대문. 나무로 만든 문이라 시간이 갈수록 운치가 더 깊어집니다. 비바람에 노출된 터라 얼룩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또한 대문 안팎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기억하는 흔적처럼 보입니다. 마치 나이 든 사람의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같이 세월이 달아준 명예훈장처럼 느껴집니다. 봄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입춘첩이 붙기도 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늘어뜨리던 옛 한옥의 대문은 훌륭한 사진의 테마가 됩니다. 대문엔 쇠로 만든 문고리가 걸려있고 손이 닿는 부분은 반질반질합니다. 녹슨 경첩도 아기자기한 문양이 됩니다. 옹이가 있던 부분은 구멍이 나기도 합니다.
구멍 속으로 들여다 보면 프레임 속 프레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서울과 여러 지역의 도시엔 한옥마을이 있고 수많은 사찰과 암자의 건물에서 옛 방식의 문을 아직 찾을 수 있습니다. 외국의 사진가들이 한국을 두루 다니다가 주목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한옥과 그 속의 여러 디테일입니다. 스티브 매커리는 특히 문고리에 주목하여 작품을 남겼습니다. 굳이 외국 사진가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한국엔 아주 많은 전업사진작가와 생활사진가들이 문, 경첩, 문고리, 문의 창살 등을 테마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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