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 시즌] 끊고 막는 담은 필요 악일까 악의 필요일까

곽윤섭 2010. 02. 18
조회수 10612 추천수 0
<제1강> 벽
옛 돌담은 꼬불꼬불, 지금의 콘크리트는 일직선
우리 삶에 금 그은 모습, 또 그 안과 밖은 어떨까
 
 
4.jpg

영화 ‘거룩한 계보’를 보면 운동장에 있던 죄수들이 교도소를 탈출하기 위해 담장에 몸을 부딪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은 죄수 몇 십 명이 어깨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금이 갈 리가 없습니다. 분명한 탈옥시도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교도관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표현이 아주 적절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우연히(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나야 우연입니다.)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그 충격으로 담장이 무너지고 몇몇 죄수들이 일단 탈옥에 성공하게 됩니다.
 
영화 ‘거룩한 계보’의 교도소 탈출을 보면…
 
Untitled-2 copy 5.jpg

이번 테마 ‘벽’을 제시하면서 많은 벽 중에서 첫 예제로 하필이면 교도소 담장을 택했을까요? 벽의 원래 목적을 생각해보면서 벽 자체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떠올렸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선 벽은 없어지면 더 좋을 만한 것으로 인식을 하는 쪽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벽은 비, 바람, 열, 소리, 빛 같은 자연의 거친 공격을 차단해 인간의 거주공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짐승, 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더해졌습니다.
 
어떤 쪽이든 벽 안을 지키기 위한 것이 원래 의도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란 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대표적인 성벽입니다. 외부 오랑캐의 침입을 막겠다는 방어용 벽입니다. 그러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위압적으로 보이고 공격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부잣집들은 높은 벽을 쌓고 삽니다. 지킬 것이 많을 것이고 노리는 세력도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호화아파트는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성이며 벽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와도 뚫고 들어갈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갈수록 그리고 지금도 시골로 갈수록 벽은 낮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았던 동네의 골목엔 담 너머 풍경이 보일 정도로 집의 벽이 낮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대인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벽을 쌓아두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지킬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곳에 공간의 구분을 위해 무턱대고 쌓아둔 담벼락들이 있습니다. 헛된 권위의식에서 출발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계층을 나누려는 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관공서, 학교,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단지와 단지 사이에 쓸데없는 금긋기 용으로 만들어둔 담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3.jpg

담장을 허물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것도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최초의 담장 허물기 운동은 1998년 대구에서 벌어졌습니다.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바로 곁엔 선교 의료박물관이 있고 담장과 종탑이 있습니다. 이곳에 전국담장 허물기 첫 행사로 의료원 옛건물에서 허문 벽의 일부를 기념으로 세워두었습니다. 선교박물관은 자체로 선과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대구에선 알려진 사진출사장소이기도 합니다.
 
담장 허물기 사업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녹지공간이 늘어나고 경관도 좋아지는 효과가 생겼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소득은 담을 사이에 두고 고립되어있던 거주민들 사이에 신뢰감이 회복되었다는 점입니다. 담 너머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이 얼굴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어렵고 높고 먼 곳으로 인식되던 관공서에서 담과 벽을 없애자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란 원래 취지가 쉽게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맨 앞에 든 영화 속 교도소 담장처럼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벽도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단 한 명의 죄수도 없는, 그런 날이 오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겠습니다. 또한 가정에서도 추위와 열과 소음과 도적을 막아주는 벽은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벽과 필요없는 벽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고 여러 가지 기능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도 있습니다. 대뜸 가수 신형원이 부른 ‘유리벽’이 기억납니다.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네
 나는 느낄 수 있었네 부딪히는 그 소리를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 안에 놓여있었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뜨리지 않네 모두 다 모른 척 하네”

 
아기자기한 예술로 재탄행한 벽화마을도
 
Untitled-2 copy 6.jpg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은 눈에 보이는 실제의 담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사람끼리, 민족끼리, 사상과 신념과 피부색과 종교와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벽을 쌓아두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1989년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독일의 분단시절 서로 대립하던 서독과 동독의 경계였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갖가지 담과 벽과 철조망으로 분리되어있습니다. 이런 지형적인 구분의 실제 벽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고립이 우리 사회 곳곳에 흩어져있습니다.
 
추운 겨울 지하철역으로 밀려들어 온 노숙자들은 겉으로는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있지만 그 곁을 지나는 사회인들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외계어를 쓰면서 바쁘게 엄지를 놀리는 10대 청소년과 기성세대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큰 벽이 있습니다. 신촌로터리 안쪽 현대 백화점 옆에 있는 놀이터는 10대들의 공간입니다. 가끔 그곳을 지나가다 보면 그들과 저 사이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모든 10대와 모든 기성세대 사이에 늘 벽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취재를 위해 10대들을 이따금 만납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이런 표현 자체가 이 글을 읽는 10대들에겐 ‘구린’것으로 받아들여질 법도 합니다만 최소한 대화의 소재는 공유해야 말이 통하는 것은 맞습니다.
 
벽과 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공간이며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의 가천마을을 찾았을 때 그 마을의 담장은 어떤 사진가가 찍은 마을의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외에도 전국엔 옛 궁과 절과 건물의 성벽과 담이 많이들 남아있습니다. 고궁의 돌 이끼 낀 벽은 시멘트벽과 비교할 수 없는 아취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엔 하나하나 돌로 쌓아올린 정겨운, 그러나 숱한 태풍을 이겨낸 담이 있습니다.
 
서울 이화동, 부산 문현동 안동네, 청주 수암골을 비롯해 우리나라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마을이 생겼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색과 질감의 거친 시멘트나 블록 담장에 아마추어, 프로 가릴 것 없는 솜씨로 벽화를 그려두자 그 마을들은 각각 고유한 곳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몇 년 지나자 비바람에 물감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지만 그런 풍화작용 또한 그 벽화와 마을의 모습을 규정짓는 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금주의 미션 ㅣ 벽을 찍어라
 
이번 미션 ‘벽’은 복합적인 테마입니다. 사람이나 사회에 필요한 벽, 필요없는 벽, 눈에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을 찍어보십시오. 새로 생겨나는 벽과 무너지고 있는 벽을 찾아보십시오. 담을 사이에 둔 두 공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관찰해보면 그 담과 벽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가 보일 것입니다.
 
담과 벽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인 곳이 있고 이를 활용해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 둔 곳도 있습니다. 대학교 건물의 담쟁이 벽은 대학을 더 아카데믹한 장소로 보이게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솜씨를 부린 벽은 예술작품입니다.
 
(※ 사진을 올릴 때 ‘미션-벽’이라고 표시해주십시오). 기한은 2월 24일까지.
▶ 출사미션 바로가기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취재

양심 버리는 곳

  • 곽윤섭
  • | 2010.03.24

점심을 먹고 서부지원 뒷길을 걸어나오다가 담장에 꽃을 걸어둔 것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꽃도 한 송이가 아니라 화환처럼 장식을 ...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들이거나 내치는 소통 여닫이로 ‘안-밖 두 얼굴’

  • 곽윤섭
  • | 2010.03.18

<제5강> 문 닫힌 문-열린 문, 나오거나 들어가는 장면 달라 문 넘어 문, 또 넘어 문, 문…, 생의 마지막 문은? 199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로마에...

취재

대자연의 예술 ‘렌즈구름’ 순간포착, 마치 UFO

  • 곽윤섭
  • | 2010.03.12

기상사진공모전 기기묘묘한 찰나의 선물…상상력의 원천 ‘합성한 것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 ▲ 최우수상, 양필호 <하늘의 전령사>. 2010년 ...

강의실

애정과 섬세한 관찰력이 관건

  • 곽윤섭
  • | 2010.03.11

[1~4강 클리닉] ▣ 1강 길을 찍어라 그림자가 만드는 길, 그리고 인생의 길 최옥선님과 김옥희님의 사진을 선정합니다. 두 분 다 길의 중의적 ...

강의실

경계하는 앙칼진 몸짓, 애정을 담아 다가간다

  • 곽윤섭
  • | 2010.03.04

<4강> 고양이 눈동자서 풍기는 ‘묘한’ 매력, 쉽게 안잡히는 애인같아  골목, 자동차 밑… 마음 다친 길냥이들 누가 만져 줄까 어떤 테마를 정해...

취재

깐깐한 사진가들과 안동 갑시다

  • 곽윤섭
  • | 2010.03.03

하니포토워크숍 2기 18일부터 안동에서 열려 이갑철 신미식 임종진 등 강사진 ‘거물’ 한겨레가 주최하는 하니포토워크숍 2기가 오는 3월 18일부터 ...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장소·지위·마음 따라 일과 쉼이 머물고 떠나고

  • 곽윤섭
  • | 2010.02.26

<제3강> 의자 임자 따로 있기도 하고, 앉으면 주인이기도 하고 나무토막·깡통이면 어떻고 맨바닥이면 어떠한가 지난해 연말 아도비사에서 주최한 포토...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 끊고 막는 담은 필요 악일까 악의 필요일까

  • 곽윤섭
  • | 2010.02.18

<제1강> 벽 옛 돌담은 꼬불꼬불, 지금의 콘크리트는 일직선 우리 삶에 금 그은 모습, 또 그 안과 밖은 어떨까 영화 ‘거룩한 계보’를 보면 운동...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세월은 가도 풍경은 남아 삶이 흐른다

  • 곽윤섭
  • | 2010.02.11

<제1강> 길 가야할 길, 가지 말아야할 길, 가지 않은 길… 선 따라, 형태 따라 느적느적…정이 따라온다 지난해 11월 말에 사진강의실 시즌1을 끝...

강의실

사진강의 개설 안내

  • 곽윤섭
  • | 2010.02.09

다음주 토요일 2월 20일부터 새로운 강의를 시작합니다. 기존에 해왔던 사진클리닉 수업은 지난 1월 말에 17기를 졸업시켰고 잠시 휴지기를 가집니...

취재

사진의 주인은 '찍힌 사람들'

  • 곽윤섭
  • | 2010.02.03

주영욱 인도에서 찍은 사진을 되돌려주러가는 주영욱씨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주영욱(49·한국마크로밀코리아 대표)씨는 4일 인도 바라나시로 사진전을...

취재

낯선 땅에서 빛으로 쓴 시, 마음 찰칵

  • 곽윤섭
  • | 2010.01.29

사진전 연 시인 박노해 중동 분쟁지역 돌며 찍은 4만 컷 중 37장 전시 가까이 더 가까이, 아이들 울음소리까지 쟁쟁  1991년 3월12일 ‘노동의 ...

취재

‘버려졌기에’ 아름다운 대륙 눈앞에서 영화로…

  • 곽윤섭
  • | 2010.01.18

‘다큐멘터리 사진 전설’ 살가도의 아프리카전 리뷰 2012년 전시 ‘살아남은 자연’ 제네시스 미리 맛봐 대형 프린트 100장엔 ‘사회 문제’ 섬세하...

사진책

윤미네 집-복간

  • 곽윤섭
  • | 2010.01.07

<윤미네 집>구매하러가기 복간된 '윤미네 집' 전몽각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이 20년 만에 복간됐다. 지난 1990년 전몽각씨의 동명사진전 '윤미네...

전시회

박노해 첫 사진전 ‘라 광야’전

  • 곽윤섭
  • | 2010.01.06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의 첨예한 분쟁 현장에서, 인류 문명의 시원지 알자지라와 쿠르디스탄에서, 카메라를 든 ‘사진가 박노해’를 만납니...

전시회

세바스티앙 살가도 ‘아프리카’전

  • 곽윤섭
  • | 2010.01.06

▲ 루에나시 교외의 학교. 학생 각자가 의자 대용의 물건을 가지고 온다. 앙골라, 1997.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세바스티앙 살가도...

취재

제사상에 김치? 아차! 족집게 편집자에 ‘꾸벅’

  • 곽윤섭
  • | 2010.01.05

한겨레 섹션 ‘건강 2.0’ 사진취재 후기 (3) 부랴부랴 후보정…자칫 ‘대형사고’ 터질뻔 같은 값이면 맛있게, 예쁜 그릇 빌려 ‘찰칵’ 9월1일치엔...

취재

내 이름은 이혜수, 한국사람입니다

  • 곽윤섭
  • | 2009.12.31

이 사진과 글은 사진가 이기태씨의 작품입니다. 아래쪽에 이기태씨에 대한 소개글이 있습니다. [포토스토리] ‘과거 자신’ 돕는 이혜수씨 베트남...

취재

모유 먹이는 엄마 찍으러 갔다가 ‘대략 난감’

  • 곽윤섭
  • | 2009.12.18

한겨레 섹션 ‘건강 2.0’ 사진취재 후기 민망함도 잠시, 4명의 엄마와 아기 절묘한 포즈 손 사진, 그래픽으로 어수선 ‘편집 위해서라면…’ 8월4...

취재

‘맛이 간’ 고등어 찍었는데 왜이리 싱싱해 보여?

  • 곽윤섭
  • | 2009.12.11

한겨레 섹션 ‘건강 2.0’ 사진취재후기 (1) 연기에 심취한 꼬마 모델 인상 써…모기는 그림으로 ‘뚝딱’ 편집자·취재기자들과 머리 맞대고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