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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맞는 방법


 1. 산수유 꽃과 열매의 관계
가을에 붉은 열매를 맺어 겨울을 지내고 봄까지 유지하는 것이 산수유이다. 초봄 산수유 꽃이 피어도 열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고 열매 빈자리에 다시 피는 것이 꽃인데 산수유 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동시에 존재한다. 꽃은 원인이고 열매는 결과인데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한다. 인과동시이다.
 동시에 존재하는 산수유꽃과 열매는 시간적 인과관계가 아니다. 오래된 옷과 새 옷의 관계도 산수유와 유사하다. 오래된 옷은 새 옷의 원인이 아니다. 새 옷은 오래된 옷의 결과가 아니다.
 오래된 포도주도 마찬가지이다. 오래된 포도주와 새 포도주는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2. 인과관계에 대한 선입관
 초콜릿 소비량이 많은 국가와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국가와의 상관관계는 높다. 그렇다고 초콜릿 소비량과 노벨상 수상자 수를 인과관계로 볼 수는 없다. 단순한 상관관계일 뿐이다. 산수유 꽃과 열매나 오래된 것과 새것의 관계도 유사하다.
 현실을 해석하는 가장 쉬운 틀은 원인과 결과의 틀이다. 원인에서 결과를 예측하고 결과에서 원인을 추론한다. 그런데 예측의 적중률은 낮고, 결과에서 추론한 원인은 억측일 가능성이 크다. 예측과 추론의 근거는 선입관이기 때문이다. 선험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살지 못한다.
 
 3. 오늘과 어제의 관계
 어제는 오늘의 원인인가? 어제가 원인이고 오늘이 결과라면 오늘은 어제에 종속된다. 오늘로서의 독립성이 없다. 어제와 오늘이 인과관계라는 말은 종속관계라는 것이고 그에 따라 오늘의 독립성은 제한된다. 자유도가 없다. 오늘은 어제의 노예일 뿐이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인가? 오늘이 어제의 결과라면 오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어제에 있다. 오늘의 모든 것은 어제의 책임일 뿐이다. 어제와 오늘의 책임관계는 막연하고 비합리적인 억측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무의미하다. 오늘의 무책임성이다.
 
 4. 오늘과 내일의 관계
 오늘은 원인이고 내일은 결과인가? 오늘이 원인에 불과하다면 오늘의 존재가치는 오지 않은 미래에 있을 뿐이다. 오늘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도구에 그친다. 오늘이 내일을 위한 도구라는 말은 내일에도 성립해야 한다. 결국 오늘은 없다. 오늘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꼴이 된다.
 
 5. 꽃과 열매의 독립성
 동시에 존재하는 산수유 꽃과 열매는 인과관계도 아니고 종속관계도 아니다. 별도의 존재이다. 꽃은 꽃이고 열매는 열매이다.
 동시에 존재하는 오래된 포도주는 새 포도주의 결과가 아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것일 뿐이고 새것은 새것일 뿐이다.
 우리는 선입관에 의해 이 둘을 무심코 인과관계로 묶어 버린다. 오래된 옷과 새 옷을 함께 묶어 버리고, 오래된 포도주와 새 포도주를 섞어 버린다. 독립적인 존재를 상호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꽃과 열매는 독립적이다.
 
 6. 새해는 작년의 죽음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은 인과관계가 아니다. 독립적이다. 단절해야 할 관계이다. 죽음과 삶의 관계이다. 어제의 죽음이 오늘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정의는 어제의 죽음이다. 어제는 어제이고 오늘은 오늘이다.
 새해의 정의는 작년의 죽음이다. 새해는 새해이고 작년은 작년이다.
 
 7. 오늘을 사는 방법
 시간적으로 죽은 어제와 단절해야 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 아침 밥상은 어제 죽은 나를 기념하는 기쁜 제사상이다. 오늘은 변화이다. 궁즉변이다. 어제가 끝났으니 변해야 한다.
 공간적으로는 통이다. 궁즉변 다음에는 변즉통인 것이다. 통이란 공간적 관계성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다. 관계성이란 상호의존성이며 존중과 인정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연대와 존중이다.
 오늘을 사는 방법은 시간적으로는 어제와 단절하는 것이고, 공간적으로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어제의 나는 죽어서 없고 오늘의 나는 관계성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변화와 관계 속에 있어 정의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공이다.
 궁즉변 변즉통 다음에는 통즉구이다. 통해야만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을 잊는 것이 새해를 사는 방법이다.


 

김원 작가의 여시아견(如是我見)

 

 직장인이다. 틈나는 대로 사진 작업을 한다. kw10001.jpg 쪽방촌과 기독교 수도원을 장기 작업으로 계속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할 것이다.
 
 여시아견(如是我見)은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사진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쪽방촌, 수도원, 소소한 일상, 이 세 가지 주제가 내가 카메라로 보고 있는 것들이다. 내가 카메라로 본 세상, 그것이 여시아견(如是我見)이다.
 
 김원 페이스북 www.facebook.com/won.kim.5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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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공간

2019.01.02 15:43:37

역사는 산자의 것

고맙습니다.

salim40

2019.01.02 20:02:19

맞습니다. 오늘을 사는 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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