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_산판 #21 기다리기
한여름이다. 날이 밝기 시작하는 새벽 5시에 만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찍 시작하는 대신 정오에 끝내기로 했다. 햇볕과 기온 그리고 타오르는 지열 때문에 사실 오전 10시경만 되도 가슴이 불살라지는 듯해서 일이 쉽지 않다. 거의 좀비 수준으로 움직이게 된다.
새로운 현장 첫날이라서 조금 일찍 갔다. 4시 40분쯤 도착해 현장 앞 도로 갓길에서 동료들을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까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차에서 나와 흡연이나 해볼까 하는데 앞 보닛 위에 사마귀가 서있었다. 심심한데 잘 되었다 싶어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이쪽에서도 찍어보고 저쪽을 보며 찍기도 하고 한 십여 분 시간을 보냈다.
짝짓기 후 암컷이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수컷을 잡아먹고 그 후 알을 낳은 후 자기도 죽는다는 사마귀의 세계. 그런 사마귀가 어떤 일로 꼭두새벽에 내 차 보닛 위에 올라와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지만 나의 세계와 사마귀의 세계가 물리적으로 이 시간 이 공간에 겹쳐져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수컷의 입장에서는 번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꺼이 암컷에게 자기 몸을 내준 것이겠지, 그렇겠지? 수컷 사마귀는 고통도 못 느끼나? 그런 생각들에 한 20여분 시간이 지나갔다.
5시 20분이 넘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을 안 지킬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다.
“왜 안 와요?”
“엉? 오늘 쉬기로 했는데. 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잖아. 반장이 전화 안 했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달도 떠 있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내일 봐요.”
두 사람이 서로 연락을 하겠거니 하면서 결국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일이 1년에 두세 번 있다. 그런 날에 사마귀를 본 것이다.
다음날 일을 했다.
그 다음날에도 일을 하려고 같은 시간에 현장에 갔다. 그런데 현장 바로 옆이 캠핑장이었다. 그 마당에 차들이 10여 대 주차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토요일 새벽이었다. 어제 우리 일 끝난 후 오후에 차들이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경험이 있어 알았다. 이른 새벽 민가 근처에서 기계톱을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자다 깬 시뻘건 눈들이 몰려와 손가락질을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주말 휴양 온 사람들이 묵는 곳이다. 결국 우리는 토, 일 멀쩡한 이틀을 쉬었다. 하필 날씨는 한여름 날씨 같지 않게 선선해서 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다음날 하루 일했다.
그 다음날에는 일기예보가 맞았다. 장맛비가 내렸다. 또 쉬었다.
가붕현 작가는
“눈에 보이는 걸 종이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하도 신기해서 찍던 시기가 있었고, 멋있고 재미있는 사진에 몰두하던
시기도 있었고, 누군가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듣기 좋은 평을 해주면 그 평에 맞는 사진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 사진가 위지(Weegee, 1899~1968)의 사진들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노출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진들이었습니다. 지루하고 반복 되는 일상생활 속에 나와 우리의 참모습이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래 촬영하다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 믿고 카메라를 들고 다닙니다. 제가 알게 될 그 참모습이 무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