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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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가는 날
 
불치병 남자가 장애 여자를 만나 오랜 노숙을 끝내고 쪽방에 정착한 것은 오 년 전의 일이다. 두 사람의 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빠듯하게 살면서도 남자는 여자를 위해 화장실 있는 방으로 가는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했다. 2년 전 교회 합동결혼식에서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주위의 도움으로 오백만 원이라는 큰돈을 모을 수 있었다. 가고 싶은 영구임대주택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 번번이 선정되지 못했다. 고민 끝에 원룸으로 옮기기로 하고 2주 전에 월세 계약을 마쳤다. 보증금 오백만 원짜리 원룸이다. 작은 주방도 있고 화장실도 딸려있어 두 사람은 무척 맘에 들어 했다.
 
 이사하는 날이었다. 드디어 쪽방촌을 벗어나는 것이다. 18년 동안의 노숙과 쪽방촌 생활을 끝내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가는 남자는 설레는 마음에 밤잠도 설치고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걸어 나에게 빨리 오라고 했다.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것이었다. 이삿짐이라고 해야 작은 트럭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삼십 분 남짓 가는 차 안에서 남자는 과거 이야기를 끝도 없이 했다. 쪽방촌은 우물 안 같아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이를 악 물었다고 했다. 쪽방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팬티 한 장, 양말 한 켤레라도 자기 노력으로 사고 싶다고 했다. 여자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여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이 소망이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며 한강을 건넜다.
 
 처음 만난 집 주인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안색이 바뀌었다. 남루한 남자와 전동 휠체어 탄 여자를 보더니 장애인이냐고 물었다. 여자가 건네는 오백만 원 돈봉투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부동산으로 가 버렸다. 왠지 불안했다. 삼사십 분이 지나서야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돌아온 주인은 월세를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직업이 뭔지, 어느 동네에 살다 왔는지, 수입은 있는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냐고 물었다. 이삿짐을 싣고 온 두 사람은 집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성실하게 대답했다. 나라에서 매달 20일에 수급비를 꼬박꼬박 주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주인은 보증금을 받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에게 어떤 관계인지 물었다. 보증을 서라고 하면서 계약서에 주민번호, 이름,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적어 주었다. 그래도 불안해했다. 명함을 건넸다. 그제서야 나를 믿고 방을 준다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라고 했다. 월세를 못 내면 나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돈을 받아들고 싱크대로 가서 여러 번 손을 씻어가며 오만 원짜리 돈 백 장을 세었다. 그러더니 이번 달 월세도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허를 찔렸다. 보증금과 이사 트럭 비용만 생각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는 월세 낼 돈이 부족했다. 두 사람은 당황했다. 다행히 내가 가진 돈을 대신 내면서 상황은 끝났다.
 
 짜장면을 먹으며 남자는 우울해졌다. 자기가 왜 월세도 못 낼 사람으로 보이냐는 것이다. 장애 때문에, 돈 때문에 또 하나의 깊은 상처가 생겼다. 쪽방촌을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은 높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주인 여자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왜 쪽방촌 사람들이 쪽방촌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다시 쪽방촌으로 돌아가는지…. 짜장면 값을 내면서 알게 되었다.
 

 

김원 작가의 여시아견(如是我見)

 

 직장인이다. 틈나는 대로 사진 작업을 한다. kw10001.jpg 쪽방촌과 기독교 수도원을 장기 작업으로 계속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할 것이다.
 
 여시아견(如是我見)은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사진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쪽방촌, 수도원, 소소한 일상, 이 세 가지 주제가 내가 카메라로 보고 있는 것들이다. 내가 카메라로 본 세상, 그것이 여시아견(如是我見)이다.
 
 김원 페이스북 www.facebook.com/won.kim.5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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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d

2018.03.31 18:48:05

너무나 만연한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외모나 사회적 지위로 너무 쉽고 빠르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거기서 상처받은 약자들은 더욱 열등감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salim40

2018.04.06 13:48:08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주인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모습이겠지요...

Chad

2018.04.09 10:10:48

저도 주인이 나쁜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도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의심이 늘어난 것이겠죠. 언젠가 집주인도 세입자 부부도 서로 믿고 사이좋게 지내는 좋은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물섬

2018.04.06 11:52:30

이 일로 그분들 마음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이 곁에 계시니 안심이지만 ... ^^

salim40

2018.04.06 13:48:52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그 분들 필요를 제가 채워드릴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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