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추위를 벗삼아 피어나는 꽃- 비파
가히 십 년은 족히 넘은 일이다.
필자가 제주도에 살 적에 한겨레신문사 이모 기자(지금도 재직 중이라 익명으로 처리함)로부터 전화가 왔다.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는 데 혹시 아느냐는 것이 전화의 요지였다.
뭐 양지에 바보꽃은 수두룩하고, 수선화는 12월 첫날부터 피었고, 동백은 기본이고, 바다로 가면 사스레피나무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찾는 것은 흔한(?) 꽃이 아니었다.
“꽃 이름이 뭐래요?”
“비파라는데요?”
동네 어르신에게 혹시 비파를 아시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시더니만,
“저그 이장집에 가믄 거기 담벼락에 나무 하나 있을건데 지금쯤 꽃이 피었을게우다.”
달려가 보니 정말 나뭇잎 사이에 올망졸망 털목도리를 두른 듯한 녀석들이 피어있다.
일단 보니까 보이기 시작한 것이겠지만, 비파나무는 바로 내가 사는 이웃집 담벼락에도 고개를 내밀고 피어있었다.
“열매가 달고 맛있어서 밭에도 하나씩 심어두었수다게. 열매를 먹고 씨를 뱉으면 거기서 싹이 나서 나무가 되기도 하고.”
열매가 맛있다는 말에 비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길 5개월, 이웃집 돌담 너머로 팔을 뻗쳐 식구의 숫자, 딱 다섯 개만 땄다.
열매를 보니 영락없이 현악기 비파를 닮았다. 그래서 비파구나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열매도 열매지만 이파리도 차로 우려 마시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란다. 한겨울 추위를 벗삼아 피어나는 꽃이니 그 안에 어찌 신성한 기운이 들어있지 않을까?
물론, 민간에서 전해지는 말이다.
김민수작가는
서울생으로 현재 들풀교회 목사, 문화법인 ‘들풀’ 대표.2003년 ‘Black&White展’, 2004년 ‘End&Start展’2004, 2005년 ‘여미지식물원 초정 ’제주의 야생화 전시회’
2005년 북제주군청 초청 ‘순회전시회’
2011년 한겨레포토워크숍 '가상현실‘로 연말결선 최우수상, 한겨레등용작가2013년 지역주민을 위한 ‘들풀사진강좌’ 개설저서로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하나님, 거기 계셨군요?>,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 생겼다?>, <달팽이 걸음으로 제주를 걷다>,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 등이 있다.각종 매체에 ‘포토에세이’를 연재했으며, 사진과 관련된 글쓰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