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부 한국 첫 회고전
매그넘 1세대 중 유일 생존작가…한국 관객만을 위한 전시
브레송의 깔끔함과 카파의 자유로움 접점에 ‘우아한 일상’
전시장에 걸린 에펠탑의 페인트공
전시장 게시판. 관람객들을 위해 만들어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과 더불어 매그넘의 1세대를 구성했던 사진가들 중에 유일한 생존작가인 마크 리부(1923~ )의 첫 한국 회고전 <에펠탑의 페인트공>이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시작됐다. 오로지 한국 관객들만을 위해 준비된 이번 전시는 마크 리부의 감수 아래 그의 아들과 문하생들이 직접 고른 190여 점이 걸리는 대형기획전이다.
마크 리부를 사진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에펠탑의 페인트공(1953년 작)’은 그 뒤로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그의 사진 세계를 규정하는 한마디 표현, ‘우아한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수 백 미터 상공에서 단 한 줄의 안전장치도 없이 편안하게 작업을 즐기는 듯한 페인트공은 한 마리 나비처럼 보인다. 팔다리와 철골구조가 만든 선과 면 덕택이다.
저우언라이와의 인연으로 1957년 유럽사진가들 중 처음으로 폐쇄된 공산국가 중국에 들어가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 유력 지도자를 찍었던 마크 리부는 그 외에도 수많은 걸작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반전이미지로 남아있는 ‘꽃을 든 여인’이다. 1967년 10월 미국 펜타곤 앞에서 열린 베트남전 반대시위에서 찍었다. 꽃무늬 옷을 입은 젊은 여성, 얀 로즈 카시미르는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행렬 앞에 버티고 서서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이 사진은 반전시위의 포스터나 피켓으로 반복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 개봉한 ‘맨인블랙3’에서도 악당에게 꽃을 주는 장면이 패러디로 등장할 정도로 자주 전유되고 있다.
마크 리부는 그를 이끌어준 두 스승의 접점에 있는 것 같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작품을 완성했다는 브레송의 깔끔함과 거침없이 세상과 조우했던 카파의 자유로움을 모두 간직한 그의 작품은, 그래서 세련된 아름다움과 더불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사진집 서문에서 “뷰파인더를 통해 각운과 리듬을 발견해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나는 마치 음악을 듣거나 시를 읽는 것처럼 거리의 정경이나 아련한 풍경을 찍는다”라고 밝힌 마크 리부는 “당신 사진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 뭐냐?”고 물어오면 “바로 내일 찍을 예정이다”라고 답하곤 한다. 전시는 8월 5일까지 열린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한국에서 언제 또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상하이 항만노동자 1965 ⓒ마크 리부
베이징 1957 ⓒ마크 리부
에펠탑의 페인트공-밀착인화 1953 ⓒ마크 리부
나이지리아 1960 ⓒ마크 리부
마크 리부는 누구
마크 리부는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 시절 기하학을 잘하던 청년이었으므로 공과대
학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에 엔지니어로 공장에서 근무했다. 1953년 사진을 찍으려고 파리로 갔다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만나게 된다. 이때가 에펠탑이 페인트칠 복원작업을 하고
있었던 무렵이란 점, 그리고 필름 한 롤로 페인트칠 복원작업을 찍었다는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매그넘에 가입했고 매그넘 창단멤버들의 조언을 듣게 된다. 마크 리부는 그가 쓴 에세이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브레송은 나에게 데이비드 시무어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말라고 했고, 시무어는 카파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말라고 했으며, 카파는 브레송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말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조지 로저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내 말을 잘 듣게. 매그넘은 가족일세!’
그제야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크 리부는 1975년 매그넘의 회장으로 선임되어 4년간 역임했고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