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포토워크숍, 태안 해안국립공원 3박4일
 
   


 그날 밤 낯선 객지의 방
 카메라는 밤새 잠을 설쳤다
 새 살 돋은 상처
 그 맨살의 유혹에 설레었다
 
 렌즈가 아침을 열었다
 수목원은 생명의 바다였고
 갯벌은 삶의 숲이었다
 나비와 꽃, 갈매기와 조개
 상생의 이야기에 초점이 꽂혔다
 
 그리고 잔치는 끝났어도
 렌즈 뚜껑은 닫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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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논 EOS 1Ds-Mark Ⅲ, EF 28~300mm, 셔터속도 1/4000 조리개 F 5.6 신미식 사진작가


 지난 7월 29일부터 3박 4일간 태안에서 열렸던 5기 워크숍의 시작은 가벼웠으나 갈수록 무거워졌다. 가장 최근에 열렸던 워크숍이 2010년 10월 호주였으니 9개월만이라 마치 처음 접하는 행사처럼 몸과 마음이 설렜다. 한번 시작하면 끝도 없이, 게다가 아무 때나 내리는 비 때문에 날씨 걱정이 컸지만 그야말로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상 ‘우기’에 강행한 워크숍이었음에도 다행스럽게 비를 맞은 것은 반나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7살짜리 여고생부터 ‘7학년 5반의 어르신’까지 총 34명의 참가자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지난밤 유리창에 해를 그리고 잤을지 알 수 없으나 좋은 날씨는 그분들 덕택일 것이다.

 

17살 여고생에서 75살 어르신까지

 

 첫날밤엔 잠만 잤다. 29일 금요일 밤 태안 천리포 수목원의 숙소에 여장을 푼 참가자들은 대부분  초면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청했는데 누구는 짧게 했고 또 누군가는 길게 했지만 아무 허물이 없었다. 집 떠나와 객지에서 낯선 방에 모여 앉았으나 몇 십 년 만에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 상기된 얼굴빛이 서로 보기에 좋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실력 발휘를 다짐하며 칼,  아니 카메라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요일 아침의 첫 행선지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수목원. 미국인이었지만 이 땅을 사랑해 한국인으로 귀화한 고 민병갈선생이 1970년부터 가꾸기 시작한 천리포 수목원은 13,2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사시사철 꽃과 푸른 잎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 카메라를 잡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꽃을 첫 모델로 삼는다. 그러니 천리포수목원의 홍보담당 최수진씨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참가자들은 익숙한 자세로 꽃에 렌즈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살랑살랑 나비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날개에 점 하나가 찍힌 배추흰나비는 크기도 작거니와 촐싹거리면서 옮겨다녀 찍기가 여의치 않았던데 반해 얼룩무늬가 돋보이는 호랑나비와 짙은 청색에 날개 끝이 제비꼬리를 닮은 제비나비는 덩치가 커서 접사렌즈 없이도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의 촬영이 가능했다.
 지켜보던 최수진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나비들은 모델 끼가 있나 봐요. 잘 도망가지 않으니 편하게 찍으세요” 작은 것을 크게 보려 허리를 숙이니 나비뿐만 아니라 벌, 잠자리, 개구리, 거미 등 온갖 생물들이 수목원에서 더불어 살고 있었다. 2010년 안동워크숍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 김민수(50)씨는 접사렌즈로 보석같이 반짝이는 거미줄의 이슬을 찍어 다른 참가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이름을 절대 밝힐 수 없는 강사의 직격탄


 유람선에서 새우깡으로 갈매기와 수작을 벌이는 마음도 가벼웠고 파도 따라 배가 찰랑찰랑 흔들리는 기분도 가벼웠다. 그래서인지 토요일의 첫 리뷰에서 만난 사진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조금 후한듯한 박태희 강사의 칭찬에 참가자들은 의기양양해졌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강사는 서슴없이 직격탄을 날려 그 넓은 강의실을 이따금 싸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별도의 장소에서 진행된 기초반의 첫 리뷰에선 신미식 강사의 친절함이 비단결 같았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법산리 갯벌에서 시작한 31일은 시작부터 무거웠다. 장화를 빌려 신은 이도 있고 그렇질 못해 본의 아니게 맨발의 투혼을 불사른 대학생 등의 참가자도 있었는데 모두가 갯벌에선 몸놀림이 신중해졌다. “당최 발이 움직여야 말이지….” 비틀거리는 이, 넘어지는 이도 있었지만 카메라만은 하늘 높이 들어 지키려는 자세가 아름다웠다. 걷기도 하고 경운기 마차를 얻어 타기도 하면서 갯벌 깊숙한 곳까지 흘러들어갔다. 간간이 빗방울도 떨어졌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바지락을 캐러 나온 주민들을 찍다 보니 참가자들의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에겐 고소득을 보장해주는 ‘금고’라고 불리는 갯벌이긴 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허리를 펴지 않고 노동에 몰두한 고령의 주민들의 모습에선 엄숙하고 경건함이 떠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편, 그 곁에선 잠시 카메라를 비껴매고 같이 바지락잡이에 나선 참가자도 몇 있었다. 카메라를 구입한 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워크숍에 참가한 허순임(45.제주)씨는 주민들에게 말을 건네가며 바지런히 바지락을 캤다. 그 땐 몰랐지만 허씨는 워크숍이 끝나고 열흘 뒤 열린 심사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참가자들의 반격에 분위기 후끈
 
 오후에 일행은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있는 해변길을 걸었다. 삼봉에서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최현진씨의 안내를 받으며 시작한 해변길 탐방은 기지포를 거쳐 창정교까지 이어졌다. 해변과 나란히 개발된 산책로는 바다에서 날아온 고운 모래와 소나무가지의 낙엽으로 이루어져 무척 부드러웠다. 맨발로 걸어도 좋은 산책길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오전부터 간헐적으로 떨어지던 빗방울이 마침내 줄기가 되어 쏟아져 사진 찍기가 힘들 정도에 이르렀다. 시원한 비를 맞으며 소나무 숲 사이로 난 해변길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참가자도 있을 것 같다.
 일요일의 오후는 그렇게 저물었고 숙소로 돌아온 참가자 일행은 다시 사진리뷰를 위해 사진을 골랐다. 세 명의 강사와 전체 참가자들이 한자리에서 리뷰를 했다. 과연 사진은 감성의 산물이기 때문일까? 무거웠던 이날의 분위기 탓인지 첫날 리뷰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참가자들이 많았다는 것이 강사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뒤풀이 자리로 옮긴 참가자들은 사진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갔다. 전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참가자가 “강사들의 사진도 한번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군데군데 찬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 같은 후끈한 분위기와 함께 말로 찍는 사진이야기의 성찬 속에 워크숍의 짧은 여름밤은 금방 깊어져 갔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신미식 사진작가의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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