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기 포항 한겨레포토워크숍]
테마라…, 이야기라…, 도대체 무슨?
풍광 탓이었다, 그것도 빼어난
그냥 눌렀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딴 것 모른다고 당당히 말하리라
그런데 다시 은근히 발목을 잡았다
셔터가 뻑뻑했다
대게한테 물어본들 그들이 뭘 알겠나
콕 집어내 내 사진에서 공포를 봤단다
그런가? 그것도 괜찮을 듯 싶다
말과 술로 사진을 찍으며 날밤을 샜다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강행군이다
새벽처럼 다가온 풍경의 바다
상쾌했다, 눈도 입도 풍요로웠다
줄줄이 꿰어 꾸덕꾸덕 말린 테마 10장
억지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한 분은 칭찬 톡톡, 한 분은 비판 콕콕
어떻게 찍어야 할지 그림이 새벽빛이다
신난다, 기분 좋은 일이다
박태희 사진작가 <과메기 덕장>
지난 11월 25일부터 3일 동안 포항에서 열린 제7기 한겨레 포토워크숍에 참가했다. 요사이 목표 없이 셔터를 누르던 일이 많았던 터라, 내 스스로 사진 찍는 일에 근거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워크숍 안내 자료를 훑어 봤다. 재미있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테마를 정해 사진을 찍고, 그 중 열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여 제출할 것!” 도대체 사진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무슨 테마를 정해 사진을 찍으란 말인가?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어느새 포항에 들어섰다. 처음 향한 곳은 오어사. 신라 진평왕 때 세워졌다 하니, 아주 오랜 시간을 곱게 견뎌 온 절이었다. 주변 저수지에는 가을을 이기지 못한 낙엽들이 가득했다. 이곳의 빼어난 풍광 탓이었을까? ‘이야기’니 ‘테마’니 하는 것들은 까마득하게 잊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목표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몸을 풀었다. 내 앞에 여전히 유효한 역사의 흔적과 청신한 물줄기를 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는 않을까?
죽도시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다시 ‘이야기’니 ‘테마’니 하는 것들이 살짝 떠올랐다. 오어사와 죽도시장의 분위기가 영 딴판인데, 어떻게 테마를 잡고 무슨 이야기를 구성하란 말인가? 은근히 발목을 잡기 시작하는 이 질문 때문에 셔터를 누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밀고 밀치면서 나아가는 사람들 다리 밑에서 탈출을 꿈꾸며 꿈틀거리는 활어나 대게에게 물어본들, 그 녀석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첫날 리뷰 시간 때, 그럴 듯하게 나온 몇 장의 사진을 과감하게 내밀었다. 테마가 뭐냐 물으면, 그딴 것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던 워크숍 강사님은 내 사진에서 ‘공포’를 읽어내셨다. 물론 나는 ‘공포’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강사님이 사진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섬세하게 짚어 내며 공포의 느낌을 설명해 주셨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적지 않았다. 이번 워크숍에서 테마를 ‘공포’로 잡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렇다고 사진으로 엮는 ‘이야기’나 ‘테마’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뒤풀이 시간에 다른 까칠한(?) 강사님을 붙들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나의 집요한 질문에 다소 난처해하는 그 강사님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말’로 찍는 사진 이야기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활어 경매가 열리는 죽도 시장에 다시 갔다. 분명 같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오후와는 또 다른 삶의 열기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신호를 은밀하게 주고받으며 이루어지는 시끌벅적한 거래의 현장은 경이롭게 다가왔다. 새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올 무렵,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과메기 덕장을 찾았다. 강행군이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바닷가 덕장을 보면, 그곳의 먹을거리가 모두 내 것이나 된 듯 마음이 풍요로워지곤 하니까. 그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사진을 찍으니, 이보다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공포’ 따위를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해풍을 받아 가며 건조되고 있는 과메기들 곁에서 연방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인심 좋은 덕장 주인이 과메기를 내왔다. 포항의 자글거리는 햇살과 경쾌한 바닷바람을 잔뜩 머금은 과메기 맛은 과연 잊을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리뷰를 위해 다시 사진을 골랐다. 하지만 아무리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공포’에 어울릴 만한 사진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포’를 테마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았다. 짜증이 치밀었다.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 열 장의 사진을 간신히 제출했다. ‘공포’의 의미를 확장하여 ‘폭력’으로 테마의 가닥을 잡았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둘째 날 리뷰 시간의 분위기는 분명 첫날과 달랐다. 첫날처럼 조별로 리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날은 전체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리뷰를 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긴장된 분위기가 방 안 가득했다.
하지만 나를 ‘공포’로 안내하셨던 강사님은 나의 사진들을 치켜세우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쌓았던 내공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들떠 있는데, 다른 한 강사님이 사진의 문제점을 콕콕 짚어 가며 나의 사진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지난밤 나의 짓궂은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을 했던 바로 그 강사님!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테마’니 ‘이야기’니 하는 것들의 힘을 조금은 깨달았다. 이 때문에 사진 찍는 일에 목표가 생겼고 이제부터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림이 그려졌다. 신난다. 기분 좋은 일이다.
이지훈/제7기 포항 한겨레포토워크숍 참가자·교수
박태희 사진작가 <오어사>
박태희 사진작가 <오어사>
박태희 사진작가 <과메기 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