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한겨레포토워크숍 연말결선 최우수상 수상 소감
야생화 접사 10여년 찍다 한때 혼돈과 회의
다시 6달, 내 삶 구석구석 스며든 가상현실
제주도에서는 사진을 담는 행위 자체가 그냥 좋았다.
수평과 초점만 맞으면 무엇이든 작품이 될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 그곳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주제를 정해 사진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갑 형에게 제주도의 야생화를 담겠다고 했다. 그러자 가만 나를 바라보더니 “하필이면 누가 찍어도 똑같은 사진이 나올 확률이 높은 사진을 찍으려고 하냐?”고 했다. “그래도 야생화를 담아야겠다면, 당신만의 색깔이 담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사진을 담으라”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두모악 갤러리를 나선 걸음걸이는 무거웠다. ‘나만의 색깔’이 담긴 사진에 대한 고민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야생화 사진을 담으면서 마이크로렌즈를 통해 디테일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디테일을 통해 눈으로 보지 못했던 세상(존재)을 보면서 ‘내가 눈으로 보고 인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다. 디테일이 동반하는 미니멀, 사물의 속살을 보면서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이 뜨였다. 신학을 전공한 나에게 미니멀의 세계는 수많은 영감을 주었다. 사진을 담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시작한 시기에 디테일과 미니멀의 세계를 경험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제주도를 떠나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는 제주도에 없는 육지의 야생화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접사 사진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다른 주제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그러나 풍경, 인물, 사물 등으로 관심의 영역이 옮겨지는 과정은 내게 큰 혼란을 가져왔다. 그 혼란기에는 접사 사진은 물론이요, 다른 사진들도 나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고작 해야 재개발지구의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폐지수집상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정도였다. 사진에 대한 회의,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단 하루라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찍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글을 썼다.
그러던 중 ‘한겨레포토워크숍’을 알게 되었고, 워크숍 2기 안동에 참여했다.
‘사진은 열정이다!’ 혹은 ‘사진은 열 장이다!’라는 구호와 참가자들과 강사들의 열정, 한 주제에 몰두한 결과를 2박3일 만에 열 장으로 내어놓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두어 번 더 참석을 하면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 기다린 끝에 태안에서 열리는 5기 워크숍을 참석할 수 있었다. 그날도 그냥 찍었다. 그러던 중에 가건물 벽면에 붙어 있는 해저사진, 그 사진 안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계량기가 눈에 들어왔다. 행운이었다. 마침 워크숍 참가 한 달 전에 프랑스 철학자 장 보르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읽고 세미나를 한 바가 있었으며, ‘가상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영화 <매트릭스> 비디오를 구해서 다시 보기도 했던 차였다. ‘가상현실’, 그러나 태안 2박3일 동안 그 주제를 완성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줄곧 ‘가상현실’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사진작업을 했다. 6개월여의 시간, 나를 붙잡았던 것은 가상현실이었다. 가상현실은 사진의 영역만이 아니라 내 삶 구석구석에 편만 했다. 혼란스러웠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최우수상이라는 소식을 들은 그날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대략 6시간 정도 지나자 좋았다. 그리고 하룻밤 곤하게 자고 깨어난 아침, 부담이 되었다. 24시간이 넘자, 겁이 난다. 이 땅에서 사진작가로 산다는 것, 그것이 액세서리가 아니라 내 삶의 전부일 때 나는 어떤 사진을 담을 것인가? 그리고 이 글을 주저리주저리 쓰는 이 시간에는 두렵다. 그러나 아주 짜릿한 두려움이다. 셔터를 누를 힘이 손가락에 남아있을 때까지 미쳐보는 거지 뭐. 작가가 별건가? 미치면 되는 거지. 그러나 수상소감을 쓰는 지금까지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중압감 때문이다.
부족한 작품을 좋게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리며, 최종사진을 선택할 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에게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태안 5기 워크숍에서 사진에 대한 영감을 마음껏 불어넣어 주셨던 곽윤섭, 박태희, 신미식 작가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김민수
현실 속으로 들어온 심해사진과 가상으로 들어간 계량기,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 둘은 모두 가상현실이 되었다.
공사장의 가림막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허구를 감추기 위한 가림막 너머의 현실 역시도 가상현실이 되었다.
모녀가 가림막 앞에 서 있었다. 뷰파인더로 바라볼 때에 모녀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줄로 착각했다.
파라다이스와 현실의 괴리감, 술 취한 노인의 축 처진 어깨가 더 무거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폴리스 라인! 아름다운 질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누구를 위한 아름다움일까?
반영된 현실은 가상이다. 그 모사된 현실에서 좌우의 바뀜을 눈치챈다는 것은 쉽지 않다.
거울에 반영된 출연진 중에서 실명은 있을까? 모사의 모사를 거듭하며 가상은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보고 싶어하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의 병은 관음증일까?
현실은 없다. 그들의 싸움은 국민을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거기엔 국민이 없다. 오로지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철저한 가상현실이다.
미래 혹은 꿈 또는 현실이라고 가르친 것들이 그들의 삶을 뒤흔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를 돌아보지 못하도록(현실) 쇠사슬을 묶어두고 동굴 안에 그림자(허구)가 전부라고 가상현실을 주입시킨 결과가 아닐까?
작업노트
고독한 인간의 삶, 카오스의 현실 고발
가상현실, 현실을 모사한 가상이 현실을 살해한 가상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가상은 현실보다 더 치밀하게 현실을 모사하고, 사람들은 가상현실이 실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추구한다.
가상과 현실의 혼재는 카메라로 담기는 순간 하나의 가상이 된다. 인간은 뭔가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 혹은 이데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카오스의 현실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그것을 고발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