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기 한겨레포토워크숍 심사평]
 무엇을-어떻게-왜 ‘삼각대’ 삼아 테마 재구성 
 최우수상 김한선-우수상 김래희-장려상 최애선 오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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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무엇을 찍느냐는 질문은 대상, 소재, 장소를 말한다. 한라산 오름 자락에 핀 들꽃, 구룡포 호미곶의 일출은 장소이자 소재이며 사진 찍는 대상이다. 이 첫 번째 선택은 우선  사진 하는 사람의 기호에 달려있으며 확장하면 시대에 따라 유행의 물결도 탄다. 사람들은 우포나 주산지의 새벽을 지키기도 하고 순천만의 낙조를 기다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백로를 찍는 붐이 일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중국의 소수민족을, 티베트의 오지를, 몽골의 초원을 찍으러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저런 곳에서 사진을 찍는 소리들이 까치 울음소리처럼 들려온다. 프랑스 어부사진가 장 고미의 말처럼 사진은 낚시와 같아서 한 포인트에서 두 명의 낚시꾼이 같이 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것은 정도가 아닌 것이다. 누가 그 장소를 선점하고 있으면 자리를 피해준다는 뜻인데 이것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비슷한 것을 찍고 싶지 않은 본능 때문이다. 
 
 부산 한겨레포토워크숍을 마쳤다. 29명의 참가자들이 2박 3일 동안 부산의 여러 명소들에서 셔터를 눌렀다. 한겨레포토워크숍의 본질에 따라 아름다운 풍광보다는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골목, 마을, 시장 등을 주로 돌아다녔다. 어디에서 찍느냐의 선택을 워크숍 주최쪽에서 이미 결정해준 셈이다. 그 영역 안에서 참가자들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뭔가를 찾아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시간 같은 동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도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해내곤 했다. 서로 다른 것, 이것이 사진이야기의 첫 열쇳말이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서 완전히 별천지같이 다른 것을 찍어내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어떻게 다르게 찍을 수 있을까?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인 어떻게 찍느냐가 등장한다.
 
 어떻게 찍느냐고 하는 것은 눈앞에 마주친 현상을 보다가 셔터를 언제 누르고 앵글은 어떻게 잡으며 빛과 그늘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말한다. 이런 선택들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물의 차이는 놀랍다. 같은 곳에서 머물렀지만 전혀 다르게 보이게 찍을수도 있다. 우리는 감천동 문화마을에 갔으며 산복도로 언저리의 문현동 산동네에도 갔다.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감천동의 전경을 멀리서 찍으면 “그게 그거”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 대목에서 셔터 찬스와 앵글과 빛의 처리에 따라 “이게 그거?”라는 탄성을 불러일으킨다면 성공한 것이다. 이 정도 설명했으니 이제 상을 받은 4명의 사진을 살펴본다.
 
 
김한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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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으로 선정된 김한선은 제10기 영월 제천 단양 워크숍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스타일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던 김한선은 이번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긴했다. 영월과 그 인근 동네는 낯선 곳이어서 낯선 것을 찍어낼 수 있었다면 부산은 그가 사는 곳이어서 그랬는지 이국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었는지 셔터를 슬슬 누르지 못한 흔적이 보였다. 누르려고 하다가 망설인 흔적이 보였다. 찍고 자리를 뜨고 또 찍고 자리를 뜨고 하질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부산의 사진들은 제천 단양의 사진과는 형식이 달라보이지만 눈썰미는 여전하다. 예를 들어 다섯 번째 사진을 보라. 감천동에 가면 누구나 찍곤 하는 다닥다닥 붙은 파랗고 노란 타일 같은 작은 집들을 이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싶다. 빨래 사이로 보이는 마을 전경은 동네 사람의 시선이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첫 번째 사진부터 지붕 사이의 골목이 보이는 여섯 번째 사진까지에 모두 빨래가 보인다. 게다가 첫 사진의 고양이가 세 번째에 또 나타난다. 하지만 여섯 사진은 중복되지 않는다. 고양이, 빨랫줄에 걸린 티셔츠의 문양, 창밖으로 몸을 내놓은 남자가 털고 있는 잠옷, 빛을 받아 반짝거리면서 널려있는 ‘빤스(팬티라고 말하면 이상할 것 같다)’, 빨래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집들, 그리고 홀로 등장한 담요까지 모두 다른 외형을 가진 사진들이다. 그런데 한목소리를 낸다. 
 빨래라는 소재의 관점에서 이 여섯 장을 다시 분석해보자. 1번에서 빨래는 고양이가 서식하는 골목에서 배경으로 흐릿하게 보인다. 2번에서 빨래로 널린 티셔츠는 사진의 주요소다. 3번에서 잠옷은 고양이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도구다. 4번에서 ‘빤스들’과 양말은 풍경을 형성한다. 5번에서 빨래는 프레임 속 프레임을 만든다. 6번에서 빨래는 시선을 잡아채서 주변을 보게 만든 포인트다. 7번은 맥락이 끊어진다. 8번은 걸작이다. 창문속으로 보이는 노랑과 녹색이 시선을 잡아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집과 무덤의 공존이다. 9번과 10번도 묘하다. 9번은 포인트 역할을 하는 보라색의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시장을 돌고 있는 풍물패를 찍은 10번에도 또 보인다. 순간 나의 미간은 찌푸려졌지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보라색의 상인은 소외된 것이다. 있긴 있는 데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수상을 받은 김래희의 ‘어떤이의 꿈’을 보자. 아시다시피 꿈이란 것은 잠 속에서 보이는 것이므로 찍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꿈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유리문 너머로 보여주거나(1번), 셔터를 느리게 해서 살짝 흐릿하게 보여주거나(2번), 물웅덩이에 비친 풍경으로 대상을 변형시키거나(3번) 한다. 4번에서 꿈을 꾸는 사람이 누군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다시 꿈이 이어진다. 고양이가 비척거리면서 비스듬한 골목을 걸어가고 도롱이를 쓴 것 같은 실루엣의 노인이 레이저 빔처럼 난무하는 전깃줄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산동네를 배경으로 힘겨워한다. 7번은 한 장으로 멋지지만 전체와 맞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이 꾸는 꿈에서 깨도 꿈을 꾸는 것은 중복이자 이탈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흐름이 깨졌다. 즉 10장을 관통해서 끌고 가는 힘이 떨어졌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 정도의 스토리텔링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어떻게 찍는지에 대해선 완전치 못하다. 하지만 이 총평의 마지막에 이야기할 “왜 찍느냐”의 대목에서 김래희의 사진들은 어느정도 감을 잡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장려상을 받은 최애선은 어떻게 찍는지를 배우고 있는 단계다. 1, 4, 5, 9번이 잘 배우고 있는 단계를 보여주는 사진이며 기분에 따라서는 6번도 좋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나머지 사진들은 억지스럽고 거칠다. 그렇지만 전체의 구성력이 있다. ‘열중’이란 테마를 잘 끌고 갔다. 왜 찍는지 본인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장려상은 오기봉에게 돌아갔다. 무미건조하게 보일수도 있을만큼 담담하고 객관적이며 거리를 두고 있다. 1, 3, 5, 8, 9번에서 모두 시선을 끄는 포인트를 주목하고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나머지도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같은 시도를 하곤 있다. 사실상 4, 7번을 빼고나면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자 그런데 왜 더 나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무엇을 찍느냐는 질문에서 흔들려버린 탓이다. 찍는 대상이 너무 들쭉날쭉, 이동이 심했다. 같은 것을 찍어도 다르게 보이게 하면 성공이다. 다른 대상을 여럿 찍어도 같은 톤을 유지하면 성공이다. 그렇지만 다른 것을 여럿 찍으면서 톤이 흔들려버리면 성공하기 어렵다. 
 
 마지막 단계는 왜 찍느냐의 문제다. 사진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를 묻는 것이다. 사진이란 것은 사진을 하는 사람이 사진을 통해서 주장하거나 호소하거나 묘사하는 이야기다. (내가 보기에) 김한선은 아련해보이고 퇴색된 삶의 풍경 속에서 흘러나오는 일상을 관찰했다. 거기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삶이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하게 그럭저럭 살아갈 만하다는 것에 대한 묘사다. 그러나 맘이 편하진 않다. 
 김래희의 작품들은 김한선과 달리 본인의 관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시도다. 그렇다고 해서 4번에서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 시장상인 한 명의 꿈이란 것은 아니다. 이 꿈은 그 동네, 그 시장, 그 골목에 있는 장삼이사의 꿈이다. 
 최애선은 아직 왜 찍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냥 사진찍기에 막 취미를 붙여서 열심히 이것저것을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 찍는지 모르고서도 사진 잘 찍는 사람 많이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오기봉은 왜 찍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앞서나간 경우다. 생각이 많다보니 사진이 안 보이고 고민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하는 사람들 중에선 이런 방식으로 찍는 이들도 왕왕 있으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즐겁게 찍는 사람과 비교하면 옆에서 볼 때 너무 힘들어 보이곤 한다. 
 
 심사란 것은 주관적이다. 상을 받은 사람들 외 다른 참가자들의 사진도 모두 언급하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이 한 가지는 기억해주길 바란다. 총평을 달았던 네 명의 참가자의 사진은 나머지 20명의 사진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머니 속에 스물네 개의 공을 넣고 무작위로 꺼냈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띠고 있는 네 명을 골랐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좋다고 했든 나쁘다고 했든 위 네 명의 사진에 대한 이 총평은 전체 스물 네명의 사진에 대한 총평이라고 봐도 된다. 이게 바로 포토워크숍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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