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랑이 찢어져도 한 번쯤 미치자
[11기 한겨레포토워크숍/장려상] 최애선-열중
한 밤에 깨어 시간을 확인합니다. 창밖은 가로등마저 꺼진 짙은 어둠입니다. 창을 여니 찬 소주가 몸을 휘감는 듯 기분 좋은 바람입니다. 외로움, 절망, 고통, 비애, 쓰라림..., 이런 단어들을 어둠에 툭 내려놓습니다.
날이 밝으면 갈 곳을 생각합니다. 파도처럼 부지런해서가 아닙니다.
언덕배기 풀잎엔 아직은 찬 서리가 서리겠지요. 시린 풀잎에서 새잎을 돋을 시간만 생각해도 그곳에서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가야할 곳은 천지에 널렸습니다. 낯선 곳이라도 길은 묻지 않고 무작정 가보렵니다. 가다 보면 그곳도 흔적이 남겠지요.
굳이 이름을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길가다 마주친 돌멩이라도 “안녕” 눈인사나 하면 되지요.
어제보다 더 큰 보폭 때문에 가랑이가 찢어지면 어떻습니까. 갑자기 몰아치는 찬 북서풍에 깜짝 놀란다면 그것이 더 인간적이겠지요. 언덕배기 너머로 해가 뜨는 걸 상상해봅니다. 뻘건 해가 쑥 올라온다면 미친 듯이 춤을 춰볼까 합니다. 풀들이 소스라쳐 모가지가 뚝뚝 꺾어지더라도 뭐 오늘 하루, 한 번 쯤, 미쳐도 괜찮지 않겠나 싶습니다.
어제 받은 수상소식 문자를 보는 순간 “좋아라”고 소리쳤습니다. 좋아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사진이 이런 영광을 누릴 자격이 되나 싶더군요. 보낸 사진 열장을 다시 열어봅니다. 우연한 컷도, 수도 없이 많이 찍은 컷들 중에 한 컷도, 짧은 시간이지만 기다리다 찍은 컷도 있습니다. 작가님들께서 큰 열정과 섬세한 터치로 가르치신 사진을 흉내라도 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선정해 주신 것은 앞으로의 제 사진에 열정과 감동이 분명 더 해질 것이라는 “믿음”이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이제부터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작가님들의 열정과 감동, 함께했던 사진마을 동료들의 열망과 감각을 새기렵니다.
부산에서 삼십년을 살았고 지금도 부산을 오고 가며 살지만 부산의 사람들을 한 번도 카메라에 담아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낯설게 보였던 부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낯섦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이제껏 알고 있던 부산과 카메라에 담긴 부산은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사진 찍기의 숙제로 남겨 두려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수상으로 숙제가 많아졌습니다. 아직 사진 찍기에 그리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었는데…….
고향을 찍어 수상한 것에 더 큰 감동이고 기쁨입니다. 다시 한 번 사진 마을 여러분과 함께해서 기쁩니다. 그리고 아직도 갈 길이 먼 제 사진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