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기 전주 한겨레포토워크숍 심사평]

   시각적인 근사한 이미지 만으로는 부족
 관찰과 감수성이 포착한 불가사의한 힘
  
 최우수상 장진숙 ‘여자들의 시간’
 우수상 조기옥 ‘머뭇거림의 경계에서 내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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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훈 전북생활사진가협회 부회장


 

 이 세상에 잘찍는 사진가는 많은데 뛰어난 사진가는 많지 않다. 왜일까?
 
 가령 6주 정도 사진을 배우면, 거의 모두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은 쉽다. 그런데 멋진 사진에서 위대한 사진으로 넘어가려면, 훌륭한 시, 훌륭한 그림, 훌륭한 음악이 나오는 것과 똑같이 남다른 노력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시각적인 것, 근사한 이미지 만으로는 부족하단 얘기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유독 사진에서만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쟁점이 될 만한 이슈 혹은 흥미로운 얘기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유리 박스 안에 누드로 남녀를 가둬놓고 찍어야 독보적인 예술이란 식이다. 벽면을 채울 정도로 크게 인화한 사진이어야 비로소 예술로 등극한다는 식이다. 온통 얼굴 표정들을 왜곡시키고 불편하게 만들어 과장시켜놓아야만 현대 사회의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표현으로 인정받고, 권위 있는 사진상 수상자가 내용은 물론이고 제목조차 외국 작가 베껴놓고 여기저기서 전시회 벌여도 말 한 마디 꺼내는 자가 없다. 잘 나가는 사진가로 대접받으려면 사업 마인드는 물론이려니와 무엇보다 잘 떠들어대야 한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위험한 방법 
 
 그러니 언제부턴가 나는 예술 운운하는 사진들에 관한 관심을 잃기 시작했다. 오히려 사진 발명 초창기에 예술과는 거리를 둔 사람들이 그저 사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경험의 증거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 매체만이 지닌 불가사의한 힘을 깨닫고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어떤 것을 정밀한 관찰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한 사진들에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반응과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대상을 다루는 즉물적인 사진이 사진가의 영혼과 정신을 담아낸다는 건 경이로운 일 아닌가. 촬영이란 측면에서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인 것 같은데 사실은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도 하다. 오직 보는 것을 담는 것 만으로 자신을 100% 노출 시켜버리니까.
 
 그래서 누군가의 사진이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사진 속에서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을 보기 때문이고 그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지난한 삶의 과정을 통과하는 한 인간이 사진으로 펼쳐내는 “자기만의 세계” 앞에서 고개는 절로 숙여진다.

 

인간 사이의 따스하고 생생한 관계망 
 
 한겨레포토워크숍의 우수상 수상자는 조기옥이고 최우수상 수상자는 장진숙이다. 심사위원들 (곽윤섭, 임종진, 박태희)의 공감대는 사진가와 대상과의 교감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가에 모아졌다. 조기옥의 사진들에서 우리가 본 것은 전주 남부시장의 독특한 정경 이전에 시장 사람들과 사진가를 다리처럼 연결하고 있던 교감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사진가의 자세는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인간 사이의 따스하고 생생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자신 안의 삶을 성찰하는 조기옥의 사진들이 수많은 시장 사진들 가운데 수상작으로  결정된 이유다.
 
 최우수 수상작인 장진숙의 사진을 보자. 젊은 여자의 꿈결같은 눈빛이 한없이 감미로운 첫 사진부터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의 밀도로 인해 사진의 강렬함이 생성될 때 시간은 멈춰버린다. 대체 그녀의 사진들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 
 
 이제 막 소녀의 틀을 벗은 숙녀의 시선은 아련하게 창문 밖의 세상을 향한다. 다음 사진도 유리창 너머 여자가 보인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은 이제 안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오픈’ 팻말이 달린 세상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여인의 뒷모습엔 설렘이 교차하고 진열장 안에 반듯이 걸린 울긋불긋한 결혼 예복을 거쳐 카메라에 등을 돌린 남자 옆에 펼쳐진 어두운 방을 따라가면 역시 등을 돌린 여인이 보인다. 남의 머리를 손질 하듯 이제 그녀는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다음 사진에서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자의 당당한 모습은 반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무장한 여자는 이제 막 문 밖으로 나오고 있다. 만개한 꽃과 강렬한 햇살이 거침없이 화면을 메운 빛나는 삶의 한 순간이 지나가고 다시 창 너머로 한 여인이 등장한다. 잔잔한 햇살이 비추는 실내는 평화로운데 벽에 몸을 기댄 여인의 표정은 피로하고 애잔하다. 움직임이 없는 조각상처럼 그 표정 그 자세로 늘 그곳에 붙박혀 있었던 것만 같다. 마지막 사진은 시장에서 허리를 굽힌 노인네의 엉덩이다. 하얀 실밥을 드러낸 바느질 자국은 마치 수많은 자식들을 뱉어내다 찢겨진 할머니의 자궁을 기워놓은 것 같다. 좌판에 놓인 싱싱한 채소 옆엔 자궁에서 흘러나온 검은 양수가 고여 있고 곧 증발하거나 땅 밑으로 스며들어 흔적조차 사라져갈 물 속엔 고요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열 장 가운데 여덟 장의 사진에 서로 다른 여성들이 나온다. 사진의 편집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여자의 일생을 따라가고 있다. 열 장의 사진들마다 절제된 프레임과 간결한 외양은 서로 다른 인물들을 공통의 삶으로 엮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곧바로 사진 속 인물들의 내면 세계와 교감하게 만든다.
 
 장소는 전주였고 촬영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전주라는 공간 안에서 주어진 장소의 특성들을 시각적으로 구성한데 반해 장진숙은 자신만의 얘기를 전주라는 공간 안에서 풀어냈다. 온전히 한 개인의 통찰력으로 전주라는 한정된 장소를 모든 장소에서 이뤄지는 삶의 얘기로 관통해 낸 이 열장의 사진들은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질문을 던진 자만이 답변처럼 찍어낼 수 있는 자화상이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내가 인생의 어디쯤에 와있나를 짚어보게 만드는 사진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의 핵심 아닌가. 그러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박태희/사진작가·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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