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계족산에서
가뭄이 길다가도 산이 한번 울면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는 대전 계족산은
육산치고는 꽤 험하게 오릅디다...
서쪽으로는 계룡산이 우뚝 서고
그너머로는 칠갑산이 어렴풋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멀리 대청호가 은은하게 빛나고...
장수 뜬봉샘에서 시작해서
정지용의 실개천과 만나고
신동엽의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에서 만나는 금강으로 흐르고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지던 백마강으로 흐르고
이윽고는 금강하구둑으로 서해바다로 이르는 강물이
대청호수에서 늦봄 오후의 햇살 아래 머뭇거립디다...
삼국시대부터 쌓았다는 계족산성에 오르면
그 높고 험한 산에 육중한 돌을 나르고 쌓은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과 죽음이 산자락에 어른거립디다...
산 정상에서 내려가다보면
시인 고은이 삶과 죽음이 서로 껴안는 걸 보았다는
문의마을이 산아래 멀리 보일락말락하고
대청호수의 물은 금강으로 백마강으로 서해바다로
느릿느릿 제 갈길을 가고 있는듯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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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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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위에서 보이는 풍경들 보며,
늦봄 정처없는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보시길....
201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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