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피디스크의 기적

사진마을 2018.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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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수필 #28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야 했다. 대략 90년대 말과 00년대 초반의 글이다. 당시 디지털의 초창기에 가까웠던 신문사에선 기자들이 쓴 글을 뉴스메일이란 형태로 회사 온라인사이트에 올리곤 했다. 구독자가 제법 많아서 글을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종이 없이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만 있으면 검색해서 글을 읽을 수 있었으니 “편하다. 머지않아 종이 매체는 다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20년이 지났다. 검색하면 금방 찾을 것 같았다. 어라? 국내외의 어떤 포털에도 없었다. “프린트라도 해둘 것을”. 낭패였다. 10여 년 전 회사가 서버를 바꾸면서 온라인의 예전 글들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쓰린 속을 붙들고 끙끙거리다 며칠 후 사무실의 쓰레기더미 같은 책장 구석에서 못 보던 것이 튀어나왔다. 플로피디스크. 일명 디스켓. 용량이 1.44Mb짜리인 컴퓨터 보조 기억장치. 

다음 문제는 디스켓을 읽는 것이었다. 주변에다 ‘플로피디스크 리더기’를 수소문했다. “무슨 리더기라고?” 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디스크를 보여줬더니 빵 터졌다. “웬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냐?” 곡절 끝에 리더기를 빌렸고 마치 석기 시대의 정보기록 장치였던 동굴벽화를 흰 장갑 끼고 솔질하며 새롭게 발굴하는 심정으로 내가 발견한 디스켓을 리더기에 조심스레 넣어보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5개 중 1개가 살아있었다. 거기서 한글파일을 여럿 건졌다. 지구 어디에도 없던 20년 전 나의 글이 무사히 돌아왔다.

이 사진은 2005년 여름, 전북 부안의 바닷가 마을에 취재하러 갔을 때 만난 꼬마들을 찍은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붙이다가 “아저씨가 사진 찍어줄게”했더니 “잠깐 기다려보세요. 저도 카메라가 있어요”하고는 집에 묵혀두던 필름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하나둘셋” 하면서 서로 찍었다. 내 손에 든 것은 디지털카메라다. 저 카메라에 필름이 들었다면, 그리고 인화까지 했다면 내가 찍은 디지털 파일과 꼬마가 찍은 필름이나 종이사진 중에 뭐가 더 오래 살아남을까?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저장하기’와 ‘인쇄’를 눌렀다. ‘저장하기’의 아이콘이 디스켓이었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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