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고 있었고 지금은 없는 ‘포토숍된 현실’

곽윤섭 2014. 03. 24
조회수 13320 추천수 0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 '현실같지 않은 풍경'

다른 누구도 찍을 수 없는 그곳 그 순간

지구촌 오지 곳곳 현장을 먼저 ‘후보정’  


 

scalet-000001.jpg » 거북이(Turtle), Madagascar, C-print, 60ⅹ75cm, 2013 ⓒScarlett Hooft Graafland

 
 
네덜란드 출신 작가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개인전 '현실같지 않은 풍경(Unlikely Landscape)'이 4월 19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송파구 방이동에 있으며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 출구에서 가깝다. 

 이번 사진들은 작가가 2004년부터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중국 광시와 푸젠지역 등 세계 각국의 오지에서 설치를 곁들여서 작업한 결과물이다. 전시되는 모든 사진에는 작가가 강력한 의지로 개입한 흔적이 들어있다. 예를 들자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아래엔 흰 스타킹을 입은 사람 9명이 다리를 나무에 올리고 누워있고 중국의 푸젠지역에선 여성 6명이 지붕위에 기마자세로 앉아있으며 아이슬란드의 외딴 집 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이 ‘ㅅ’자 모양으로 엎드려있다. 

 모두 작가인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지시에 의해 연출된 장면이다. 보도자료를 보고 처음엔 덮어버렸다. 그리곤 잊어버렸다가 지난 3월 19일 한미사진미술관에 직접 가서 사진을 보고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보도자료의 한계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외설스럽거나 야한 작품들이 아니라 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전시다. 사막에 푸른 풍선을 놓는다거나 산을 배경으로 바게트가 시가형 유에프오처럼 떠있다. 인디아의 히말라야 산맥 앞에는 플라스틱 빨대가 길게 널려있는데 이건 뭐라고 해야할지 한참을 쳐다봐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scalet-0003.jpg » 돌풍, 제프 월,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공정이용 Fair Use)  
 

scalet-0001.jpg » 에지리, 호쿠사이작

scalet-0002.jpg » 위의 이미지는 낯설어 보일 수 있지만 이 그림은 꽤나 알려졌다. <가나가와해변의 높은 파도>호쿠사이 작

   

 캐나다 작가 제프 월(1945~ )의 유명한 사진 한 장이 뜬금없이 기억났다. 제목은 ‘돌풍’(원제: A Sudden Gust of Wind(after Hokusai). 저 멀리 밭에서 일하는 사람 하나를 논외로 친다면 네 명이 등장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휘어질 듯 휘청거리고 사람들은 모자를 잡거나 서류뭉치를 날려버린다. 공중에 종이가 흩날리고 두 번째 남자의 모자가 하늘 위에 떠있다. 오른쪽 남자의 얼굴에 종이 한 장이 척 달라붙었다. 

 처음 그 사진을 접하고는 경악했다. 저런 순간을 만난 행운과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순발력이 어떻게든 부러웠다. 며칠 지나서 어떤 책자(The Genius of Photography)를 뒤적거리다가 그 사진이 ‘찍은게’ 아니고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배우를 고용해서 촬영했고 여러 장의 다른 네거티브에서 이미지를 따와 합성하는데 5개월가량 걸렸다고 한다. 일본의 목판화 ‘후지산 36경’(원제: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중 하나인 ‘수루가지방의 에지리’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후지산 36경은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작품으로 제프 월은 작품 ‘돌풍’의 원제목에 호쿠사이를 밝혀놓고 있다. 실제가 아니라고 하니 실망이 컸으며  제프 월이 그렇게 운이 좋거나 실력이 좋았던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어 위안도 되었다.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사진과 위에서 언급한 제프 월의 사진은 배우(전자의 경우엔 현지 주민들)를 고용해서 작업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제프 월은 여러 장의 이미지를 포토숍으로 합성하였으나 스칼렛의 작품은 중형필름카메라로 찍고 나서는 아무런 후보정도 하지 않은 사진이다. 

 마틴 도어만이 쓴 스칼렛 사진전 도록의 서문 제목이 흥미롭다. ‘포토숍된 현실(Photoshopped Reality)’. 사진을 ‘포토숍’했다는게 아니라 찍기전에 현장에서 사람과 도구등을 설치해서 현실을 후보정하고 찍었다는 뜻이다. 사진을 찍기 전이니 후보정이 아니라 전보정이 아닐까 싶겠지만 초원, 사막, 산맥 같은 자연이나 집의 지붕 같은 현장의 존재 입장에선 이미 만들어진 것에 뭔가를 뒀으니 후보정이 맞다.
 
 제프 월과 스칼렛의 사진들은 왜 저런 사진을 만들거나 만들어서 찍었을까? 그것은 다른 누구도 만들지 못했거나 만든 적이 없는 이미지들을 작품화시키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것을 창작혼이라고 한다. 제프 월은 합성이니 빼고 말하겠다. 

 스칼렛의 사진은 다른 누구도 찍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산과 바다와 하늘은 그곳에 있겠지만 풍선이나 바게트는 들고 가기 전엔 그곳에 없다. 혹 영화 <부시맨>에서처럼 하늘에서 빈 콜라병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 순간을 기다렸다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볼리비아의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3달을 기다려도 말이 풍선을 뒤집어쓰고 나타날 일은 없다. 태평양을 떠다니는 고목의 뚫린 구멍으로 바다거북이가 얼굴을 내밀, 게다가 그 순간 옆에 있다가 그것을 찍을  확률은 없다. 

 제프 월은 합성이지만 결과물은 사진처럼 보이니 다시 포함시켜 말하겠다. 제프 월과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사진은 유일 무이하다. 그래서 저렇게 만들고 찍었던 것이다.

 

scalet-000002.jpg » 사라져가는 흔적(Vanishing Traces), Bolivia, C-print, 120ⅹ150cm, 2006 ⓒScarlett Hooft Graafland

scalet-000003.jpg » 연속체에서 벗어나(Out of Continuum), Bolivia, Salar desert, C-print, 120ⅹ150cm, 2007 ⓒScarlett Hooft Graafland

scalet-000004.jpg » 야자수(Palm Tree), Canada, Nunavut, C-print, 72ⅹ90cm, 2008 ⓒScarlett Hooft Graafland

scalet-000005.jpg » 갈색집(Brown), Iceland, C-print, 100ⅹ100cm, 2004 ⓒScarlett Hooft Graafland     
 
 우주의 긴 역사에 비하면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와 인류가 만든 문명 같은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지붕에 엎드려있는 저 여인은 사진을 찍고 난 직후에 툴툴 털고 내려와 옷을 입고 돌아갔을 것이다. 지붕은 사람들이 떠나고도 남아있겠지만 그나마 몇 백년을 버티지 못한다.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에서 솜사탕을 든 현지인들도 사진을 찍고나선 솜사탕을 먹으면서 집으로 갔을 것이나 사막은 잠시 더 존재하겠지만 그래야 겨우 몇 천년쯤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진에 찍힌 것은 존재한다는, 존재했다는, 그리고 지금은 없다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속성을 모든 사진들은 가지고 있다. 언어의 유희같은 이야긴데 맨 앞의 존재한다는 것은 사진 속에서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속성으로 이야기한 that-has-been은 그것은 존재했음을 뜻한다. 그리고 지금은 없다는 것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라졌거나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칼렛의 사진들은 마지막 속성인 “지금은 없다”는 것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그가 설치하고 찍었고 찍은 후 치웠을 터이니 지금은 없다. 신이 만든 것이든 사람이 만든 것이든 누군가가 만든 공간에 작가가 숟가락 하나 얹고 찍었다고 뭔 일이 생기지 않는다. 언젠가는 모두 없어질 것이니 작가가 찍고 치우나 풍화에 스러지나 지각 이동에 따라 없어지나 크게 다르지도 않다.
 
 전시장에 가서 직접 봐야 묘미를 알 수 있다. 뭔가 진지하게 쓴 것 같은데 실제 전시는 그렇지 않고 재미있다. 이 글만 보고 전시장에 안 가면 보도자료만 보고 전시를 판단하는 나의 오류를 답습하는 것이다. 전시장에 가보면 스칼렛의 작업하는 광경이 훤히 떠올라서 미소가 배시시 배어나올 것이다. 대형 사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찾아보기만 한다면 늘 이렇게 좋은 전시가 있는데 우리는 모르고 지나가버린다. 둘러보자. 전시장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올림픽공원과 몽촌토성에는 지금 계절에 가장 걷기 좋은 산책길이 있으니 가벼운 카메라를 하나 들고 전시도 보고 봄도 즐기면 좋겠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전시회

있고 있었고 지금은 없는 ‘포토숍된 현실’

  • 곽윤섭
  • | 2014.03.24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 '현실같지 않은 풍경' 다른 누구도 찍을 수 없는 그곳 그 순간 지구촌 오지 곳곳 현장을 먼저 ‘후보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