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림이 되니 막 눌렀다, 근데 왜 찍지?

사진마을 2016. 03. 01
조회수 6412 추천수 1

[쿠바는 쿠바다] <3>

오래된 거리 오래된 차, 관광객에게는 낭만이지만...

헤밍웨이의 그 단골집 그 술, 그에겐 구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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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일어났다. 일찍 잠이 깬 것인지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 눈이 뜨진 것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젯밤에 봐두었던 말레콘 해변길에서 달렸다. 운동이 목적이니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폰으로 거리 간판을 찍어두었다. 지난 연말 수녀님 따라 필리핀에 갔을 때 바닷가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길을 잃어버렸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아가 되지 않고 아침운동을 잘 마쳤다.
 
  올드카(Classic Cars, 또는 Vintage Cars라고 불러야 정확하다)를 타고 혁명광장 나들이를 갔다. 쿠바가 사진이 되는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빈티지카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멋있다. 배경으로도 멋지고 주인공으로도 멋지다. 쿠바를 찍으면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1962년 미국의 대 쿠바 엠바고(금수조치) 이후 경제적으로 고립이 된 쿠바는 새 차를 수입할 길이 없었다. 그 바람에 옛날 미제 차들을 어떻게든 수리해서 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겉과 속이 다른 빈티지카가 많다고 한다. 어쨌든 올드카를 낭만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택시로 사용되고 있고 쿠바의 명물이 된 셈이다.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언젠가 통상도 자유로워진다면 새 차가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관광 수입을 위해서라도 쿠바가 이 오래된 승용차들을 쉽게 버리진 않을 것 같다. 내가 탄 차는 1956년산 뷰익이었다. 탈황처리가 안 된 고약한 기름 냄새가 온 거리에서 진동했다.
 
   혁명광장엔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체 게바라와 또 다른 혁명동지인 시엔 푸에고스의 얼굴이 건물에 크게 조각되어 있다. 체는 Hasta La Victoria Siempre!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고 말하고 있고 시엔푸에고스는 Vas bien Fidel (피델 카스트로! 잘하고 있네)라고 말하고 있다. 체는 1967년에 세상을 떴고 까밀로 시엔푸에고스는 쿠바 혁명이 성공한 1959년에 비행기사고로 실종되었으니 피델 카스트로는 세상을 뜬 두 혁명동지의 덕담을 듣고 싶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장기간 투숙하면서 소설을 쓴 암보스 문도스 호텔을 구경했다. 옥상 카페에서 관광객들은 헤밍웨이가 즐겨 마신 다이키리를 마신다. 사진가 유서프 카쉬가 헤밍웨이의 초상사진을 찍기 전날 헤밍웨이의 단골집에서 미리 마셔봤다는 그 다이키리다. 다이키리는 쿠바에 있는 럼주를 생산하는 지명에서 따온 칵테일로 럼주에 라임주스 등을 섞어 만드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발표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던 헤밍웨이는 바닷가에서 낮엔 낚시를 즐기고 밤엔 이 다이키리를 차갑게 해서 마시며 심신을 달랬다고 한다. 그 후 불후의 명작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게 되었다고 해서 헤밍웨이를 구원한 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서프 카쉬와 헤밍웨이 http://photovil.hani.co.kr/45659
   이로서 쿠바의 대표 키워드 중 굵직한 몇 개가 모두 나왔다. 체 게바라, 헤밍웨이, 올드카.
 

0301.jpg 0302.jpg 0304.jpg 0305.jpg 0306.jpg 0307.jpg 0308.jpg 0309.jpg 0310.jpg 0311.jpg 0312.jpg 0313.jpg 0314.jpg 0315.jpg » 양해를 구하지 않고 찍은 사진중 하나. 0316.jpg 0317.JPG 0318.jpg 0319.jpg » 쿠바엔 CDR이란게 있다. 혁명수호위원회라고 해석되는데 몇 집 마다 하나씩 정해져서 주민들의 교화도 담당하고 친목도 도모한다는데 동시에 감시도 한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다. 0320.jpg 0321.jpg 0322.jpg
   올드 아바나(Havana Vieja)로 다시 건너와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오래된 거리다.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남아 있어서 문화유산처럼 변했고 그대로 관광자원이 되었다. 정체를 알 것 같은 모호함과 불안함이 거리 전체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흑인 한 명과 말을 섞게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쿠바로 온 지 12년 되었다는 넬슨(37)이란 청년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바나 대학에서 스와힐리어와 아프리카 역사를 가르친다고 했다. 미국과 수교하고 난 쿠바의 미래에 대해 물었더니 “별 차이가 없다. 달라진 게 아직 없다. 쿠바에선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평양이냐 서울이냐고 묻길래 서울이라고 했더니 반색을 했다. 쿠바는 미국의 봉쇄 탓에 가난해졌고 지금도 가난하다. 공산당원들은 잘 산다라고 영어로 말했다. 눈이 좀 풀려있는 것으로 봐서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처럼 보였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어쨌거나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사진을 걸어놓은 가게가 있어 들어갔더니 칠레사진작가의 작품을 판매한다고 했다. 펠라 할머니는 사진 한 장 찍어보라며 포즈를 취했다.
 
  이날부터 쿠바의 마지막 날까지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왜 사진을 찍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뭐 작가로서 전시를 열 생각도 계획도 없고 한 번 다녀와서 쿠바사진집을 낼 일도 없다. 그런데도 본능만 살아남아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일단 그림이 되니까…. 허 참 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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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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