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틴 실버 인화지의 향기

사진마을 2017.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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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22 개관 4주년 기념 소장전

9명 작가 40여점의 젤라틴 실버 인화


 
스페이스22에서 개관 4주년 기념 소장전이 열리고 있다. 모두 9명 작가의 작품 중에서 40여점의 젤라틴 실버 프린트가 걸린다. 9명 작가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미연, 민병헌, 성남훈, 엄상빈, 이갑철, 이희상, 장숙, 한금선, 한영수(가나다순).
 대표작 1장씩을 받아보고 있는데 가히 9인 9색이라 저물어 가는 2017년에 훌륭한 눈요깃거리가 될 흑백의 향연이다. 작가 본인의 작업노트 혹은 타인의 작품해설이 따라 붙어있으니 감상과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해설이 조금 어려운 작가도 있긴 하지만 어떻게든 참고는 될 것은 확실하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은 휴관한다.


 
미연.jpg   
미연: <Alone Together> - 5점
10여 년 동안 주로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이 10여 년은 철학과 동양사상에 경도한 시기였다.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그리고 빛이 그것을 어떻게 그려주었는지, 무의식이 만난 이미지를 담은 필름을 현상한다.
영상은 암실작업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그 자체의 생명을 얻게 되고
나는 그 작품들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조금씩 알게 된다.
내게 있어 사진은 대답이 아니고 질문이다. ‘언제 어디서’는 이 시리즈에선 중요하지 않다.
'얼론'은 하나의 나. '투게더'는 수많은 나. 하나의 나는 수많은 나를 포함하고 있고,
수많은 나는 하나의 나의 여러 측면이다.  작가 글 중에서
  
민병헌.jpg  
민병헌: <잡초> - 2점, <Snowland> - 2점
젤라틴 실버프린트는 휘발성 있는 디지털 인화 사진과는 차별되는 은염을 이용한 전통적 사진 인화 방식이다. 민병헌의 젤라틴 실버프린트 작업은 늘 절제되고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작가만의 조형성을 고수한다. 극단적으로 밝은 톤으로 연회색의 농담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반대로 진한 회색 혹은 갈색 톤으로 일관함으로써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촉각성을 자아내는 미묘한 계조의 프린트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민병헌 미학’으로 여겨진다.                                                              양지윤 글중에서...



성남훈.jpg  
성남훈: <유민의 땅> - 4점과 밀착 1점
현재를 죽여 소복이 쌓아 놓은 낡은 필름들 틈으로 살며시 기억을 집어 넣어 보면 고정된 그  당시 시간의 나열보다는 셔터를 누르기 위해 잠시 멈춰 놓은 호흡 같은 가쁜 진공의 이미지들이 재조합되어 돌아온다. 
파리, 아이, 집시들의 사진은 기억의 서쪽이다. 불안한 20대의 나를 숨기기 위한 가림막이자 얼어 붙은 나를 깨트려준 작은 바늘 같은 것이다.
                                                                                                                                         작가 글 중에서
                                       
 
엄상빈.jpg   
엄상빈: <또 하나의 경계> - 5점
동해안 사진 속의 풍경은 충견처럼 미련하게 계속 버티는 풍경이다. 달라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달라져야 하고 한시 빨리 사라져야 하는 데도 끄떡도 하지 않아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다. ‘사라져 가기 때문에’ 서둘러 사진으로 찍어 두어야 한다고 열광하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풍경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데 ‘사라질 줄 모르니’ 그  뻔뻔함을 오래 지켜 본 사람의 기록이다. 언제까지 갈지 보겠다고!  이상한 정념으로 기억해 둔 이미지들이다. 희망이 물거품이 될까 봐 초조해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사진이다. 그 바닷가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했을 사진이다.
                                                           정진국 작품해설 중에서
                                                                                                                                                       
이갑철.jpg  
이갑철: <충돌과 반동> - 5점
나의 사진적 관심은 우리 것에 있다.
우리 땅, 우리 정신, 우리 사람 ... 초기의 사진은 현실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감정의 변화에 충실한 주관적 시각으로.
이런 과정의 사진을 오랫동안 촬영하면서 국토의 구석구석을 다니게 되었고,
우리의 전통적 모습과 정신을 만나고 느끼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인의
정신적 삶의 뿌리에 대한 정신적 탐구가 시작되었다. 내 가슴을 두드리고
순간에 포착된 이미지는 결코 평온하지가 않다. 사진에 나타나는 한국인의 얼과 한의 모습은 자연에 귀속된 무력한 평온함이 아니라, 긴장감이 극대화된 것으로 비춰진다.
거친 입자, 기울어진 프레임, 흐트러진 포커스.
이것은 나의 가슴 깊숙이 내재된 무의식의 즉각적 반응의 결과이다.
이런 이미지를 만나기 위해서, 나는 많은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의 깊고 깊은 가슴과 정신에서 이성을 떠난 감성의 순간적 무의식에서
아직도 알 수 없는, 나타나지 않는, 나와 우리의 혼과 민족 정서의 근원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작가글 중에서
 


이희상.JPG  
이희상: <적막> - 3점, <배회> - 1점, <사선> - 1점
이 작품들은 1987년에 시작하여 2016년을 끝으로 각각의 테마별로 발표한 작품이다.
첫 발표작 <배회>는 당시 불확실한 현실의 불안감과 외로움에 맴도는 상황을 표현.
두 번째는 <적막>으로, 공포와 허무감이 뒤섞여 버린, 그것들이 끝나기 직전의 허망함.
세 번째는 <사선>으로, 타인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독백의 선’.
흑백의 톤으로 현실을 초감각으로 극대화시키고, ‘쉬르리얼리티’의 세계로 유도시켰다.
 

장숙.jpg
장숙: <늙은 여자의 뒷모습> - 5점
오래된 나무껍질 같은 늙은 여자의 주름과 점은 몸 전체가 된다. 늙은 여자의 몸이 살고 있는 집은 그 몸과 하나이자 집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들풀과 꽃들, 수많은 벌레들과 같은 생명체와 함께 더 커다란 집을 이룬다. 수몰지역은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없애버려 ‘빈 공간’으로서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예전에 살던 집, 일구던 논과 밭, 그리고 과거의 삶과 추억을 물 밑에 묻어둔 채 이를 품고 가는 것처럼, 늙은 여자의 주름과 점, 뒷모습에서 시작된 세계는 이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어느새 커다란 집이 되어 우리를 감싼다. 
 
그 몸의 점, 늙은 여자의 몸이라는 얼룩은 점점 커지고, 이는 우리의 집, 우리의 세계, 우리의 우주로 커다랗게 확대되어 우리 모두를 품어 안는다. 그래서 죽음이 이미 우리와 함께임을 아는 늙은 여자의 등은 쓸쓸하지만, 여기에서의 삶이 ‘살아볼만 한 인생’이었음을 나직이 읇조린다.
 
우리는 그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집의 뒷모습을 내 몸인 듯 보고 있다.
늙은 여자의 몸이 곧 집이고, 집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작가 글 중에서
 
한금선 집시-1.jpg   
한금선: <집시> - 4점과 밀착 1점
강요된 방랑의 길을 시작한 집시는 기억 속에 자기 역사를 가진다.
문자가 없는 그들은 구전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역사를 함께 한다.
집시는 자신들의 영혼을 방랑하던 그 곳, 그 곳에 꽃 피우곤 다시 길을 떠난다.
플라맹고가 그랬고 집시 음악의 선율이 그랬다.
낭만의 대상으로 자신들은 분해되어 버리고 문명의 잣대로 바라보면 가난하고 천하기 그지없는 생활로 언제나 돌아간다.
 
유럽의 집시 강제 정착화는 바람새 바람꽃 전설을 앗아갔다.
애초 강요받은 방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제 그 반대로 정착이 강요되면서
오랜 세월 그들의 기억 속에 만들어진 역사는 파괴되고 소외된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영수.jpg
한영수: <Seoul, Modern Times> - 5점
 한영수는 리얼리즘 사진으로 출발해 광고사진, 풍경사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진 분야에 걸쳐 활동하면서 동시대의 다른 사진가들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작품을 남겼다. 이 모든 것들은 천부적인 미술에 대한 재능과, 많은 사진 서적을 탐독하면서 얻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한 결과였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스페이스2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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