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프 소리에 해가 저무는 럭키 서울

곽윤섭 2014. 09. 23
조회수 44582 추천수 1

모던 걸, 우아한 '50~60' 서울

한영수 사진집 <모던타임즈>

 

 

 

 hys04.jpg » ©한영수,명동,서울1956-1963.jpg

 사진가 한영수(1933~1999)의 사진집 <한영수-서울모던타임즈>가 나왔다. 한영수는 김한용과 더불어 한국광고사진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져있으나 광고사진에 입문하기 전인 1958년에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사진 연구단체인 ‘신선회’의 창립회원으로 이미 거리다큐멘터리사진을 시작했던 인물이다. 이번 책은 한영수 선생의 딸인 한선정씨가 대표인 <한영수문화재단>에서 나왔다. 한선정대표에 따르면 이번 책이 <한영수 전집>의 첫 권으로 앞으로 작품집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10월 12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빈티지사진 브이아이피 1950-60’전시에 한영수선생의 사진 10장도 현일영, 이해선, 이형록, 홍순태, 주명덕 등 다른 작가들의 사진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1950년~1960년대 서울의 옛모습을 담은 한영수선생의 사진을 읽고 이해하려면 먼저 그 시대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반드시 있다. 한동안 ‘70~80’의 복고바람이 거셌다. 그 중심에는 문화가 있다. 통기타와 청바지 세대들이 즐겨불렀던 대중가요, 즐겨보던 영화, 함께 울고 웃던 드라마에 대한 회상과 복기와 재연이 주축을 이루었고 이는 곧 패션까지 이어진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는 70~80 다음 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트렌드였다. 문화를 소비하는 연령층이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0~80의 전 세대였던 50~60은 어떤 시대였던가? 한국전쟁에 휴전으로 쉼표를 찍은 것이 1953년, 4 19혁명이 1960년, 박정희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것이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된 것이 1960년대의 후반이었다. 50년대는 복구의 시대였고 60년대는 재건의 시대였다. 50년대와 60년대는 서로 얽혀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한국은 자유롭고 다양성있는 문화가 움을 틔우고 있었으나 4 19혁명으로 활짝 만개할 것 같았던 시대적 흐름은 5 16쿠데타를 맞아 풀이 꺾여버렸다. 이 무렵 한국 사진은 리얼리즘 운동이 활발했다. 공모전을 노리는 예술풍의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한국의 사진계로서는 1957년 <인간가족>전이 한국에 들어오고 같은 시기에 신선회가 회원전을 열었던 것이 새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해방 후에 첫 개인전을 열었던 임석제의 사진에서 부두노동자같은 리얼리즘의 소재가 이미 선을 보였지만 임석제의 사진에선 여전히 정형화된 살롱풍이 짙게 남아있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현장에 손을 댄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보도사진이 널리 퍼졌고 따라서 1950년대 말의 한국사진은 본격적인 리얼리즘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번 사진집 <한영수-서울모던타임즈>에 실린 사진들에선 임응식, 이형록의 리얼리즘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던, 조형미를 추구하던 예술지향의 분위기가 거의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영수의 이 사진들이 미적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더 세련된 리얼리즘이 보인다. 이제 구체적으로 사진이야길 해보겠다.
 첫째: 정제되었고 세련되었으나 살롱풍은 아니다. 마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깔끔한 구성을 보는 것 같다. 현장에 개입하지 않고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다.
 둘째: 한 장의 사진 안에 당시의 풍속도가 들어있고 인생이 들어있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연결고리가 들어있다. 한 장의 사진 안에도 플롯이 들어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진이 많다. 이 정도라면 사진 한 장이 단편소설 하나와 같다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이상의 이야길 종합하여 칭하자면 바로 사진은 이야기가 있는 기록이다.
 셋째: 힘이 있다. 유난히 세로사진이 많은데 세어보니 삼분의 일이 넘었다. 로버트 카파의 인생을 다룬 전기영화 <로버트 카파의 사랑과 종군(원제: Capa in Love and War)>을 보면 매그넘 창립의 삼총사였던 브레송과 카파와 침 세이무어를 비교하여 평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브레송은 세련되고 안정적인 구성이었다면 카파는 힘이 있는 세로사진이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같은 상황이라면) 세로구성은 가로보다 힘이 있고 도발적이고 웅변적이다. 한영수의 사진은 세련되었으면서도 힘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저서 <밝은 방>에서 사진의 힘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길 했다. 아베돈이 찍은 ‘노예 윌리엄 캐스비’ 사진을 예로 들면서 “역사가는 더 이상 매개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노예제도는 매개없이 전달되었다. 사실(팩트)은 방법없이 확립되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그중에서도 특히 바르트가 언급했던 몇몇 인물사진과 보도사진은 그 특성 때문에 역사가라는 사람들의 해석이나 중개없이 스스로 말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손대지 않은 소수의 다큐멘터리사진이 여기에 속한다. 한영수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50년대와 60년대 서울의 거리와 일상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역사가들의 플롯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왜곡된 근대사에 현혹되지 않게 만든다. 여기서 한가지 동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도 이미 선택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같은 시대 같은 서울에서 뭘 찍을 것이며 어떤 앵글로 어떻게 찍을 것인지는 사진가의 임의적 선택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니 역사가는 사료들을 기본으로 플롯을 구성하지만 사진가가 찍은 것은 현장에 반드시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손대지 않는 사진가의 사진에만 국한된 이야기다.
 
 hys01.jpg » 1©한영수,명동,서울1956-1963.jpg  

1: 주인공은 모자도 안쓴, 안경 쓴 사내다. 다른 이들보다 눈이 많이 쌓인 것은 오래, 느리게 걷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각한다. 임응식의 <구직>보다 이 사진이 더 절실해 보이는 것은 거리에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 걷는 방향이 달라서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hys02.jpg » 2© 한영수,수원 화성 창룡문1956-1963.jpg

2: 이 책에 든 사진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조형미를 더 강조한 사진이다. 너무 절묘한 구성이라 연출했을까 싶었다는 뜻이다. 재단의 한선정대표에게 물었더니 이 장면의 밀착지가 있고 앞뒤로 다른 행인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지나가는 장면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촬영포인트를 먼저 발견하고는 원하는 인물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는 뜻이니 그 노력이 이해가 되었다. 책의 38~39쪽을 보면 비가 와서 진흙탕이 된 길에서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행인을 지켜본 여섯 컷이 나란히 실려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기다리는 것이 사진가다.

 

 

 hys03.jpg » 서울 종로3가 단성사, 1956~1963 ©한영수  
 3: 단성사 앞의 한순간이다. 왼쪽에 있는 까까머리 학생의 표정이 기가 막히다. 다음 장면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사진이야말로 진정 단편소설 하나와 맞먹는 내러티브를 내포하고 있다. 책엔 이런 사진이 수두룩하다.

 

  hys04.jpg
 4: 책의 말미엔 평론가 이영준이 쓴 해설이 실렸다. 그 중 <미인들의 도시>라는 장에서 이영준은 패션사진가 한영수의 안목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맞다 사진가라면 당연히 아름다운 대상에 반응을 보인다. 책엔 유난히 세련된 ‘모던 걸’이 많이 실려있다. 당시의 풍속도이기도 하고 훗날 광고사진의 대부가 되는 한영수가 오버랩되는 사진이다.

 

 hys05.jpg » 서울 1956~1963 ©한영수

 5: 최소한 다섯 가지 이상의 탈 것들이 거리에 포진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50년대말 60년대초 서울의 모습을 역사가라는 매개체 없이 있는 그대로, 있었던 그대로 전달하는 사진이다. 이런 사진도 잔뜩 들어있다.
 

 

 hys06.jpg » 서울 종로6가, 1956~1963 ©한영수

6: 힘이 있는 전형적인 세로 사진이다. 셔터속도, 운동감, 프레이밍이란 기본기가 순간적으로 발휘되어야만 가능한 사진들이다. ‘흥’이란 글자는 학교의 이름일까, 아니면 어떤 캐치프레이즈의 한 글자일까?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보이스카우트처럼 보이는 옷차림의 각반”이다.


 

 hys07.jpg » 서울 한강 백사장 1956~1963 ©한영수

7: ‘패셔니스타’의 사진이다. 샌들을 손에 들고 고운 백사장을 건너가는 저 여인은 영화배우 못지않다. 영화배우일 수도 있다.

 

 hys08.jpg » 8©한영수,서울1956-1963.jpg

8: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뒤로 보이는 간판들에서 우리는 50 60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대중가요는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앞서간다. “타이프소리에 해가 저무는” 현인의 <럭키서울>은 1948년에 만들어졌으니 50년대엔 이랬을 것이다. “예뿌다”

 

 

 hys10.jpg » 서울 정동 성공회서울대성당 근처, 1956~1963 ©한영수
9: 어디서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동력은 인문학에 있고 영화와 음악과 회화에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누르지 못한다.
 

 

 hys11.jpg » 서울 태평로 아카데미극장 1959, ©한영수

10: <3인의 신부>가 상영되는 아카데미극장 앞의 군상들이다. 20명이 넘는 인물들이 마치 감독의 큐 사인 직후의 배우와 엑스트라 같다. 이 중에 주인공은 누구로 할까? 재주 있는 글쟁이라면 거뜬하게 소설 한 편 쓸 수 있을 것이다.

 

 hys12.jpg » 서울 명동 한국은행앞 1956~1957, ©한영수

11: 손님을 기다리다 지겨워진 개장수의 오른발과 고무신이 이 소설의 주요 플롯이다.

 

 

 

   한영수
 1933 경기도 개성출생
 1958 ‘신선회’ 입회(한국 최초 사진연구회) OM540016.jpg
 한국사진작가협회 입회
 일본 ‘세계사진연감’에 <계시>수록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한국미술가협회 사진부 회원
 1960 일본 ‘세계사진연감’에 <소녀>수록
 1961 영국 ‘국제사진연감’에 <골목소녀>수록
 1962 한국창작사진가협회 대표위원
 한국상업사진가협회 창립위원
 1966 광고사진스튜디오 ‘한영수사진연구소’설립
 1985 사진라이브러리 ‘포토뱅크’창업
 1990 동아일보사 주최 국제사진전 심사위원장
 1991 대한민국사진전 심사위원장
 1999 올해의 문화인상 수상                                                                        책구입바로가기
 별세
 
 개인전
 1986 ‘아름다운 우리강산’, 디자인포장센터 / 서울, 한국
 1988 ‘우리강산’, L.A 한국문화원 / L.A, 미국
 1999 ‘MESTER’, MAI MANO(Hungarian House of Photography)/ 부다페스트, 헝가리
 hys09.jpg
 그룹전 다수
 2006 ‘Korean New Days’, 슬로바키아사진축제 /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 
 2012 ‘삶의 궤적’, 코리아 소사이어티 / 뉴욕, 미국
 
 사진집
 1986 ‘우리강산’ / 열화당
 1987 ‘삶’ / 신태양사
 1990 ‘내가자란 서울’ (글.어효선 사진.한영수) / 대원사
 
 컬렉션
 헝가리 사진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한국사진사연구소
 동강사진박물관


  

곽윤섭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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