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한라산 지킴이 강정효
제주에서 찾아낸 신의 얼굴들
강정효의 사진전 ‘할로영산 ㅂㆍㄹㆍㅁ 웃도’가 3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스페이스선+에서 열린다. 전시에 맞춰 같은 이름의 사진집도 나왔다. 도서출판 디웍스.
전시의 제목이 어렵다. 할로영산은 무속에서 한라산을 신성시해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하고 ㅂㆍㄹㆍㅁ 웃도는 바람 위 청전한 곳에 좌정한 한라산신을 이르는 말이다. 토요일인 8일 오후 4시에는 전시장에서 제주자연과 제주인의 신앙, 제주의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되어 있다.
강정효는 전시되는 사진에 대해 작가노트에서 “20여 년 한라산을 담당하는 기자 생활과 더불어 산악활동, 각종 학술조사를 위해 백록담과 수많은 계곡, 오름, 해안선 등 제주의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모습의 형상석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중략) 우리 주변의 자연 대상물,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라 할지라도 그 의미를 부여할 때 가치는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중략) 나아가 제주의 정신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것입니다. 제가 일만 팔천 신들을 모두 찾는 그날까지 이 작업을 계속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제주도에서 찾아낸 신의 얼굴을 전시하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1만 8천 신이 있다고 한다. 강정효는 갯깍, 중문천, 수월봉, 백록담 등 제주의 곳곳에서 ‘신의 표정’을 찾아낸 것이다. 사진에서 어떤 식이든 얼굴을 찾아내는 것이 관객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사람들이 산이나 계곡에서 얼굴 형상을 찾아내는 것은 누군가가 바위에 얼굴을 새겨둔 형상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이스터섬의 석상은 사람이 새겨둔 것인데 강정효의 사진작업에서 찾아낼 수 있는 형상은 사람이 새긴 것이 아니다. 또는 누군가가 볼 때 바위에서 얼굴을 못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같은 바위를 보고 다르게 생긴 형상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이 사진에서 각자 찾아낸 것은 누구의 작품인가? 이것이 강정효 사진전에서 관객들이 두 번째로 해야 할 고민이다. 고민이라 표현했다고 해서 정말 고민하라는 것이 아니다. 편하게 상상해보라. 사람이 새긴 것이 아니고 작가 강정효가 끌과 망치로 새긴 것도 아니면 누가 하는가.
신이 한 작업이다. 몇 천년 몇 만년 동안 지질의 변화로 바위가 형성이 되면서 저런 얼굴이 나왔으니 사람이 아닌 신이 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신의 얼굴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마치 지구인이 상상해낸 외계인의 형상이 사람과 비슷한 꼴을 띠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의 신이니 사람처럼 생긴 것이다.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신이(자연이) 빚은 형상인 것은 맞지만 사진가 강정효가 찍어서 우리에게 보여주니 사진이다. 눈썰미 없는 사람이라면 같은 장소를 지나가도 못 보거나 안보게 되었을 것이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이니 저런 형상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형상들은 대체로 찡그린듯하거나 우수에 잠겨있는 듯하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파헤치는 인간들의 폭력에 화가 잔뜩 난 표정이다. 나는 그에 못지않게 느긋한 표정을 많이 찾아냈다.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이 없다는 표정도 있고 귀엽고 발랄한 표정도 있다. “니들이 살아봤자 기껏 백 년이다. 니들이 이 땅을 파괴한다고 해봤자 기껏 천년이다. 바위는 그 후로도 살아남는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바위를 깨어 얼굴 표정이 바뀐다 하더라도 닳고 닳아서 빤질빤질해진 바위는 달관한 듯 편안히 누워서 세상을 관조한다.
강정효의 ‘할로영산 ㅂㆍㄹㆍㅁ 웃도’ 사진전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시간 많이 걸렸을 것이다. 작가가 20여 년 다리품을 팔아 이런 사진들을 보여주니 고맙지 아니한가. 삼청동파출소에서 2분 만 걸어가면 되는 곳에 있는 스페이스선+찾아가서 감상하여 작가의 노고에 응답하자.
(전시 제목 ㅂㆍㄹㆍㅁ의 실제 표기는 아래아 로 이루어져있다. 중점이 아니라 아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