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α’인 길냥이, ‘사진+α’로 담담하게

곽윤섭 2014. 11. 25
조회수 29653 추천수 0

   김하연 사진집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
 예쁘게 소비되는 ‘애완’ 아닌 처절하게 살아내는 ‘실존’
 빗자루나 밥주걱으로 성불하듯 고양이로 ‘득도’의 경지

 

 고양이 사진가 김하연씨가 사진에세이집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를 냈다. 혼자서 사진집을 내는 것은 처음이다. 도서출판 이상. 가격 2만원. 김하연씨는 9년째 길고양이를 찍고 있으며 매일 그의 블로그(http://ckfzkrl.blog.me)와 페이스북에 사진을 khy-00001.jpg올리고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지난 9년 동안 찍은 수만장의 사진 중에서 골라낸 것으로 캘리그라피 작가 김초은의 손글씨가 빛난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있는 꿈꾼갤러리에서 김하연의 사진전 <화양연화>도 열리고 있다. 11월 30일까지이니 몇일 안 남았다. 

 

 보도자료에서 몇 군데만 따왔다. 굵은 글씨가 보도자료 본문 인용이다.

 
 그에게 고양이는 하나의 인격체다. 그래서 그는 죽은 고양이를 발견하면 꼭 묻어주곤 한다. 신문배달을 하는 그의 오토바이에는 별이 되어 떠나는 그들을 위해 늘 검은 비닐봉지가 준비되어 있다.
 여러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2008년 매그넘코리아 사진공모전과 2009년 내셔널지오그래픽 국제사진공모전(국내예선)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에는 더 이상 공모전에는 응모하지 않았다.
 
 위 두가지 에피소드만 봐도 김하연 작가의 사진에 관한 철학을 알 수 있다. 고양이를 인격체로 보고 죽은 고양이를 발견하면 묻어준다는 것은 고양이를 사진의 피사체로 보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사진을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중요하다.

  인문학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사진에도 바람이 슬슬 스며들어와서 ‘사진과 인문학’으로 연결된 적이 있다. 혹은 지금도 인문학 열풍은 남아있다. 그런데 인문학이라고 하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강의가 많다.

  사진에 관한 철학은 바로 김하연의 사진에세이집에서 배우면 된다. 내가 사진을 평하기 위해, 나아가 사진가의 사진인생을 평하기 위해 나누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뭘 찍는가”이며 두 번째 단계는 “어떻게 찍는가”이며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왜 찍는가”이다. 김하연은 세 번째 단계이자 사진에서 가장 큰 화두중의 하나인 “왜 찍는가?”, 다시 말하면 “사진 그 까짓 거 찍어서 뭐하는데?”까지 도달한 사진가다.

  청소부는 빗자루로 성불하고 요리사는 밥주걱으로 성불할 수 있다. 김하연은 고양이 사진으로 득도했다. “고양이를 예쁘게 찍지 않는다”는데서 그의 사진철학이 보인다. “예쁘게 혹은 예쁘게 보이지 않게의 선택”은 사진의 세가지 단계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어떻게’가 아니다. 두 번째에 해당하는 ‘어떻게’는 잘 찍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김하연이 “담담하게 찍는것”은 철학이다. 도시의 길고양이들은 어떤 존재이며, 동네 주민들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그 이유는 뭔지, 그리고 어느 쪽이 더 맞는지에 대한 김하연의 의견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고양이에 대한 시선이며 고양이 사진을 찍어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도 정확히 보여주는게 바로 이 대목에 들어있다. 

 

  역시 굵은 글씨가 보도자료에서 인용한 글이다.
 
 애완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고양이가 그저 귀여운 애완동물이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고양이는 처량하고 애처롭다. 고양이는 귀여운 이미지로만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길고양이가 예쁘게 나오는 것을 염려해 망원렌즈로 클로즈업한 사진을 찍지 않는다. 오히려 황량한 도시풍경과 폐기물더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그것이 진짜 길고양이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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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2월에 그를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한 5년만 더 고양이를 기록하면 대단한 작품집이 나올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5년이 지난 2014년이다. 인제 와서 생각하니 5년은 너무 길었나 보다. 그동안 김하연의 작업을 보면 한 3년만 더 찍고 2012년 정도에 책을 냈어도 충분히 훌륭했을 것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싫어하는 행위는 소극적이지만 좋아하는 행위는 적극적이다. 유기동물을 돌보는 단체와 회원들이 많고 그 정성과 동기가 갸륵한 것에 그치지 말고 이런 사진집 좀 사보시라. 나도 보도자료에 나온 글을 읽자마자 바로 시내 서점으로 가서 책을 사서 아는 지인에게 선물로 줬다. 서점이라 추첨으로 고양이 달력을 받을 기회는 양보했다.

  이 책은 김하연의 사진이 들어있는 사진집이지만 김하연의 글도 들어있는 사진에세이집이다. 짧은 글이 여운을 길게 남기는데 글의 내용도 좋지만 사실상 캘리그라퍼 김초은의 손글씨의 덕이 크다. 늘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편인데 이 대목에서 말을 살짝 틀어보겠다. 잘 쓴 글씨는 내용을 더 확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좋지 않으면 공허하다. 사진도 이러하다. 쨍한 사진이 있을 수 있는데 내용이 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래 못 간다. 금방 지겨워진다. 장소의 힘에 묻어간다. 그래서 일상에서 발견한 공간이 더 소중한 법이고 사진도 이러하다.

  샛길로 빠지기 직전에 돌아온다. 사진과 캘리그라피의 병렬배치는 새로운 대안인가? 일전에 나온 김민수 목사의 들꽃사진에세이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 는 사진과 글, 그리고 세밀화를 곁들여서 신선했었다.
 사진집의 구성은 정말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문제이며 진행형이며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야하는 사진계의 화두다. 정통적인 방식으로 하자면 “사진만 좋으면 되니 사진만 들어간” 사진집이 정답이었지만 이제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바뀌었고 사진집을 보는 사람들의 나이와 생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오만불손한 일이다. 사진이 탄생한지 불과 200년도 안 되었는데 전통은 무슨…. 캘리그래피 덕분에 책에 든 사진의 해석에 깊이가 생기면서 사진과 사진집의 가치가 돋보인다. 사진의 한계인 “한눈에 드러나서 상상력이 제한된다”를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대안이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다음엔 또 다른 형식에 도전해보자.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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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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