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경, Wedding Hall, The Galleria Wedding Hall, 2005
신은경의 사진전 <당신의 필요와 요구(Needed and Desired)>가 부산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4월 30일까지. 전시는 지난 2월 15일에 시작되었으며 개막행사는 3월 8일 오후 6시에 열린다. 고은사진미술관은 한국사진계의 40대 작가 중에 한 명을 선정해 “작가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여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길 기대하는 의미”에서 <중간보고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3년 박진영 작가의 <방랑기>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며 해마다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2014년 <중간보고서>인 신은경의 <당신의 필요와 요구>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공간’에 대한 작업으로 ‘웨딩홀’, ‘스튜디오’, ‘사적경관’등의 연작이 포함되어있다. 지난 14일 전화로 부산의 전시장에 있는 신은경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을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가?
=4년제 대학의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그 대학 사진동아리에서 활동하다 “사진을 공부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백제예술대학에 입학했다. 최초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가마미해수욕장’은 대학 졸업 후인 1998년도 작업이다. 전남 영광에 있는 이 해수욕장은 원전주변에 살지 않는 이상 체험하기 힘든 공간이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우연히 놀러갔다가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을, 겨울까지 여러 차례 방문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공개된 작품은 주로 여름철 한 달에 걸쳐 찍었는데 계속 머물면서 동네 주민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찍을 때 불편하거나 하진 않았고 그들도 내게 경계심을 가지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1990년 후반까지는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까진 험악하지 않았던 것 같다.
» 가마미해수욕장, 1998
» 가마미해수욕장, 1998
» 기장풍경, 1999
» The Interior, 2001
» 공간의 모의, 2002
-‘가마미해수욕장’, ‘기장풍경’과 그 후가 너무 다르다. 무슨 영향을 받았나?
=학부 때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찍던 교수님들의 영향을 받아 가마미해수욕장 같은 사진을 찍게 된 것 같다. 대학원 시절을 겪으면서 내 사진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공간 작업이야말로 나의 생활에서 나온 테마다. 따라서 대학원 교육의 영향으로 사진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나에 맞는 사진을 대학원에서 찾아가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내 사진에 누군가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면 로버트 아담스를 들 수 있다. 대형 마트작업 같은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심각하지 않고 일상적이며 은유적이란 측면에서 그렇다.
-대학원 이후로 사진의 내용이 바뀌었다는 것인데 뭘 천착하는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대도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도시의 공간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공간의 사람들에 집중했으나 가만 보니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노출로 사람을 없애기 시작했고 나중엔 공간만 찍게 되었다. 공간의 문제란 것은 이게 어디로 연결되느냐하면 “우리에게 (공간은) 무엇을 주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공간의 의미도 대형공간에서작은 공간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주체적인 인간인)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간다. 내가 원하지 않았고 내가 개입하지 않았으나 소비하게 되고 욕망하게 되더라. 공간의 구조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조금 더 보충설명을 하겠다. 내가 찍는 공간의 변천을 보면 나의 생활, 나의 나이와 일치하며 따라간다. 20~30대에는 친구들 결혼식에 자주 가다 보니 웨딩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후 ‘포토스튜디오’, 나이가 들면서 ‘더 샵(The Shop)’, 사적경관, 전원의 변모, 하루 필요량 등으로 변하게 되었다. 전시 제목 ‘필요와 요구’는 이렇게 붙여졌다. 사람들은 사진에 등장하는 공간을 “사고 싶어”한다. 필요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 생활이 윤택해진 것이 아니라 40대가 되니 (20대와) 관심사가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하루 필요량은 건강에 관한 40대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50대가 되면?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다. 현재 신은경은 공간이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당분간은 ‘전원의 변모’, ‘사적 경관’, ‘하루 필요량’을 더 작업할 것이다.
-후보정을 한 작업도 있다. 얼마나 하는가?
=‘더 샵’ 작업만 후보정을 많이 했다. 색을 바꿨다. 상품 그 자체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작업하여 색을 바꾼 것도 사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초기의 다큐멘터리작업은 내 안에 있는 추상이야기가 아니라 밖을 본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공간과 현실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자율성을 가지고 싶었다. 사진가로서 작업의 정체성에 한계를 짓지 말자는 주장이다. 작업 방식에 여지를 열어두고 싶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이 기본(베이스)이란 것엔 변함이 없다.
-이영준씨가 전시서문을 썼다. 마음에 드는가?
=곤란한 질문이다. (웃음) 마음에 들긴 하는데…. 내가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친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나의 성격을 잘 짚어낸 것 같다. 내 사진은 뭔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멀리서, 조용히,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점…. 뭔가가 보이지 않으니 소리가 들린다는 점 등에 공감한다. 나의 스타일이 맞다.
-사진을 관객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좀 더 친절하면 좋겠다.
=어려운 문제이지 않은가? 예를 들어 작가가 점을 하나 찍어서 작품이라고 발표했다고 하자. 관객들이 그것을 작품으로 생각했고 인기가 솟는다고해서 계속 그런 작품을 내야하나? 아니라고 본다. 관객을 따라다닐 수는 없다. 관객을 의식하고 계획적으로 나갈 순 없는 것 아니냐. (만약 작가가 안 좋을 일이 있어서) 정물만 찍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진이 다 마찬가지다. 나의 웨딩홀 사진을 보고 다소 엉뚱하게 “이런 공간에서 결혼하고 싶어”라는 반응이 나왔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중의 시선에 맞춘다기보다는 “작가 신은경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에 주목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사진찍기가 쉬워보인다. 이 사진들이 당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마추어들도 이런 사진을 한 두장 찍을 수 있다. 누가 찍어도 가능할 수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작가들끼리도 하는 여담이 있다. “당신 ‘공간 작업’ 그거 너무 쉬운거 아냐?”라고 우스개 비슷하게 한다. 그러나 ‘웨딩홀’ 같은 것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지속적으로 작업할 때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니냐? 공간을 섭외하는 것도 갈수록 어렵다. 쉬운게 하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뭘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의 문제이며 이것이 바로 프로와 아마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웨딩홀 공간을 찍는 것도 맥락 전체를 봐야 한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찍는지 짚어주시기 바란다. 필요와 요구….
-(웨딩홀 같은, 사람 없는 공간사진을 다른 사람이 찍은 것과) 섞어 두었을 때 당신의 사진을 골라낼 수 있을까?
=한 장짜리라면 못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신은경거야”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 장의 연작을 보고, 이런 작업이 지속성을 가지면 ‘사진관? 웨딩홀……? 이거 신은경거 아냐?’라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 게다가 한 장의 사진이라도 차별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슷한 웨딩홀을 찍은 광고사진과의 형식적 변별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웨딩홀, 포토스튜디오, 더 샵, 사적 경관 같은 공간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사람이 있을 때만 그런 곳을 찾게 된다. 그런데 당신의 사진에선 그 공간에 사람이 없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접하는 그 공간과 당시 사진에 들어있는 공간 사이엔 괴리가 있다. 누가 빈 웨딩홀을 경험할 것인가 묻는 것이다.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결혼식 할 때 20~30분만 그 공간에 머문다. 그리고 끝이 나면 빠진다. 그런데 사람이 들어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다르게 흘러간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본 그 (웨딩홀, 스튜디오, 리조트) 공간들을 제대로 본 거냐?”
사람들이 매일 가는 공간은 아니지만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공간의 실체를 제대로 보느냐고 묻는다. 나의 공간 작업은 시간성을 갖고 있다. 사진 속의 웨딩홀 풍경은 이제 서울엔 없고 지역으로 내려갔다. 오래된 풍속이다. 웨딩홀, 카페, 펜션 등도 마찬가지다. 유행따라 변한다. 민박->게스트하우스, 예식장->웨딩홀로 바뀐다.
-키치적이란 표현에 동의하는가?
=그런 면이 있다. 인테리어, 카펫 등 조악한 면이 있다. 잘 보면 부서진 것도 있다. 내 사진을 본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다. 키치적으로 보이는 이면엔 그 공간은 소비되는 곳이란 지점이 있다. 그 자리에 서있을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싶어했을 것이다. 욕망이 실현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웨딩홀 같은 곳의 선택은 유행에 따라가는 것이니 ‘주체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누구든 결혼에 앞서 예식장을 두 세곳은 둘러보고 선택하지 않을까? 키치적 공간에서 이젠 호텔식으로 변했다. 선택이다. 사회전체의 트렌드 변화는 개개인의 욕망의 총합에 따라 변하는……. 하루, 잠시라도 고기 썰면서 결혼식을 하고 싶은 욕망….
-(원론으로 돌아와서) 사진을 왜 찍는가?
=사진으로 얘기를 하고 싶다. 사진을 택한 이유…. 초기엔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다. 현실에 대해 사진으로 발언하고 싶었다. 지금도 사진으로 말하고 싶은 생각은 같다.
» ⓒ신은경, 사적경관, 경포 에메랄드 비치 호텔, 2014
» ⓒ신은경, 사적경관, 영월 시스타, 2014
» ⓒ신은경, 사적경관, 정동진 하슬라아트월드, 2014
» ⓒ신은경, 전원의 변모, 2013
» ⓒ신은경, 하루필요량, 2013
» ⓒ신은경, Photo Studio-chair, 2006
» ⓒ신은경, The Shop 3 , 2008
» 하루필요량, 2013
독립큐레이터 최연하가 2008년에 낸 책 ‘사진의 북쪽’은 한국의 여성사진가 18명을 인터뷰한 것이다. 신은경도 그 중에 포함되어있다. 전화인터뷰를 하기 전에 ‘사진의 북쪽’ 신은경편을 다시 봤다. 지금 봐도 친절하게 글을 잘 썼다. 최연하는 글에서 “욕망하며 복제되는 공간시리즈에 대해 이야길 하고 있는 사진이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하는 현상, 시각적 전유를 기다리면서 특정 목적을 위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모델하우스, 웨딩홀, 포토스튜디오, 서구적 근대를 표상하는 부르주아의 공간 인테리어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공간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닌지 지적하는 것이다. 최연하는 글의 마지막에서 “공간을 자율적으로 향유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향후 그녀는 어떤 공간으로 이동할 것인가”라고 마무리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