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공화국’ 이전의 서울 그때 그곳들

사진마을 201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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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첫 사진전 ‘기억의 풍경’

 1981~83년 40여개 변두리 동네 기록

 산꼭대기 무허가 집들 소외·박탈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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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씨의 첫 사진전 ‘기억의 풍경’이 1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증산동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린다. 때를 맞춰 같은 이름의 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 20번째로 출간된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한 김정일씨는 1984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방송공사 영상사업단에서 근무했으며 2014년 12월에 정년 퇴임했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사진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데 그 직업이 사진 찍는 것이 아니라면 사진가로선 치명적인 결함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제약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운이 좋게도 사진 찍는 직업이라 하더라도 생업으로 찍는 사진과 작가의 작업으로 하는 사진이 일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다. 대부분은 그 괴리의 좁고 넓은 간극에서 고민을 하고 방황을 한다. 고민은 행복한 경우이며 방황은 불행한 일이다.
 
   상업사진가들의 성공에 대해 좋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다. ‘상업’사진가도 여러 종류가 있겠다. 결혼사진이나 아기 돌 백일사진스튜디오를 하는 전업사진가도 있겠고 패션사진도 있으며 광고사진도 있다. 여기서 하는 사진들도 모두 ‘사진’이고 테마를 꾸려 발표한다면 사진집도 낼 수 있고 사진전시도 할 수 있다. 그 가치가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의 사진과 다르다고 단언할 수 없고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안 되는 사진”을 하는 사진가들과 사진 자체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사진을 구분하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 없다.
 
  유명한 연예인을 찍어서 유명해진 광고나 상업사진가들이 돈도 벌고 사진가로 이름을 획득하는 것에 대해 내가 배 아파 할 일은 없다. 사진의 분야가 다르니 서로 존중할 뿐이며 존중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단 한마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구렁이 담 타 넘듯, 슬쩍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른 분야의 가치를 훼손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리처드 아베돈(1923~2004)은 가히 세계적 패션사진가였다. ‘인 더 아메리칸 웨스트’를 통해 사회적 약자계층의 인물사진을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왔지만 그의 정체성은 상업사진이다. 리처드 아베돈이 패션사진을 통해 사진사에 남을만한 큰 족적을 남긴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만 그를 다큐멘터리사진가라고 부르는 데 대해선 반대한다. 리처드 아베돈 본인도 다큐멘터리사진의 세계를 동경했으나 선을 넘어가진 않았다. 정체성의 차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한국의 이름난 상업사진가들이 그 명성으로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선을 넘어서 ‘다큐멘터리사진’을 한다고 이름을 끼워넣진 않았으면 좋겠다. 돈도 있고 ‘가오’도 세우고 싶은 모양이나 ‘다큐멘터리정신’까지 들먹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진가들에게 염치없는 짓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의 상업사진가들을 겨냥해서 하는 이야기다. 새겨듣길 바란다.


kji01.jpg » 덕성여고/김정일

kji02.jpg » 명동/김정일

kji03.jpg » 남양주, 1982/김정일

kji06.jpg » 목동, 1982/김정일

kji07.jpg » 봉천동, 1981/김정일

kji05.jpg » 대신동, 1981/김정일  

 

 

    
 그건 그렇고 김정일씨의 첫 사진전 ‘기억의 풍경’은 그가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찍은 서울과 서울 외곽의 거리 풍경 사진들이다. 전시가 시작되면 한 번 가보기로 하고 우선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사진을 전공했는데 1984년에 KBS 영상사업단에 들어갔다. 사진과 관련된 일이었는가?
 “당시 KBS엔 출판부가 있었고 사진기자로 일했다. 방송에 나온 프로그램의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지구촌영상음악’이란 책도 있었는데……. 이게 IMF 때 경영난으로 폐간되었고 그 후 KBS 국제사업부와 방송아카데미에서 일하다. 정년 퇴임했다.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에 관해 묻는 것 같은데……. 대학 다니면서 사진클럽활동을 했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찍고 있다.”
 
 -나이 60에 첫 전시다. 많이 늦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게 되었나?
 “발표는 지금 하지만 대학 때부터 계속 찍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전시를 할 생각은 있었지만 내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다. ‘해도 되나? 이거 해도 될까?’ 하면서 멈칫했고 직장에 다니다 보니 전시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있었는데 눈빛출판사쪽에서 본 모양이다. 연락이 왔고 책을 내자고 하더라. 너무 고마운 일이다.”
 
 -뭘 찍은 사진들인가? 보도자료를 보니 대략 알 것은 같은데 설명을 해달라.
 “서울의 이곳저곳 40여 개 동네를 기록했다. 가다 보니 산꼭대기에 있는 무허가 집들이 많았다. 사라지기 전에 찍고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거기 사는 거주민들은 입장이 달랐다. 아하! 기록만이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개발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들이 느끼는 사회에 대한 박탈감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하는 것이다. 81년~ 83년은 서울의 주거 형태가 변하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지금 서울은 ‘아파트공화국’이다. 지금의 서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바뀌고 난 현재 서울도 꾸준히 찍고 있다. 이 사진들도 발표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 이야기를 좀 더하자. 서대문구 대신동, 목동도 있고 명동, 남양주도 있다. 사람이 있는 것도 있지만 없는 사진도 있다.
 “앗제의 파리를 아는가? 그 작업을 차용했다. 개발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박탈감을 이야기하자니 사람이 없는 공간을 찍게 되었다. 이번 전시엔 사람들이 있는 사진도 몇 있지만 사람 없는 풍경은 그래서 그런 것이다. 다시 가보니 옛날 장소가 커져서 몰라보게 달라진 곳도 있다. 책 표지사진이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리다. 너무 바뀌어서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태다.”
 
 -80년대 초반에 서울을 찍은 다른 사진가들도 있는데 이번 전시의 사진은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방법이 다르다. 종로나 명동, 계동 등 시내 작업들보다는 나는 유명한 곳 사진이 아니고 주변이고 외곽이며 개발로 사라질 곳이 많다. 수색의 사진은 현재 상암동이 되었다. 봉천동 공동화장실 같은 사진들……. 다른 분들의 사진은 이런 게 별로 없더라. 그래서 많이 다르다.”
 
 -서울 출신인가? 그렇다면 서울 사람이 본 서울은 어떤 느낌인가? 질문이……. 이상하다.
 “서울 서대문 출신이다. 무슨 질문인지 알겠다. (서울이 아닌) 지방이 고향인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을 나도 받는다. 소공동 한국은행이 있는 곳을 지날라치면 고향 같은 기분이 든다. 교보문고 옆에 있던 피맛골이 없어진 게 정말 아쉽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거기 책방이 있었는데……. 배문중학교 나왔다. 지금 한겨레신문사가 있는 만리동 고갯길은 새로 난 길인 거 아시나? 그 아랫길이 원래 만리동 길이다. 내가 배문중 3학년 때 1학년으로 유력자의 아들이 입학했는데 그 덕분에 만리동 새 길이 뚫렸다나 어쨌다나…. 하하”kji0001.jpg » 눈빛사진가선 20, 기억의 풍경
 
 -기록 말고 다른 사진도 생각하고 있는지?
 “기존에 하던 사진에 한계가 있는 것 같고 벽이 느껴졌다. 퇴직하기 3년 전부터 사진 공부를 좀 했다. 현대사진이란 것을 접해보니 이거 등한시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면 생각이 변하는 것 아니냐? 새로운…. 그런 작업도 해볼까 싶다. 파인아트? 그쪽으로 틀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거주민들의 박탈감이란 주제는 이어간다. 지금은 자본만능주의시대가 아닌가? 이 시대의 박탈감은 청년들이 느끼는 고민이다. 청년실업 같은 주제도 다루고 싶다. 다만 현대적인 방식을 찾고 있는 중이다.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세계사진의 조류에 처질 순 없다. 두루 고민중이다.”
 
 -전시되는 사진 중에서 특히 애정이 가는 것은?
 “(지금의 타워팰리스가 서게 되는) 도곡동 그곳, 수색……. 이런 곳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인간 소외, 박탈감이 잘 표현된 사진들이다. 덕성여고 졸업식 사진? 아…. 그게 아마 마지막 교복세대였을 것이다.
 
 -80년대 초반과 비교했을 때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바뀌지 않은 곳이 있다면?
 “음…. 신당동이 아직 옛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음식값도 착한 편이고…. 얼마 전에 갔더니 오후 4시에 낮술 드시는 할아버지도 있더라. 하하. 자주 가서 찍고 있다”
 
 -정년퇴임하고 난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는가? 앞으로 계획은?
 “이따금 잡지나 사보 같은 곳에서 원고 의뢰가 온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이 첫 전시이니 나머지는 모두 미발표작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쓴 것이 2년밖에 안되었다. 나머진 다 필름이란 소린데 파일로 정리되어있다. 스캔작업 했고 분류까지 되어있다. 셀렉팅까지 해둔 상태이다. 이번 전시와 사진집은 ‘기억의 풍경’인데 앞으로 할 작업은 이름이 달라져야겠지? 기억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웃음)”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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